내 몸에 새싹 풀물이 들다
내 몸에 새싹 풀물이 들다
by 권영상 작가 2020.04.23
이 나이에 마음을 빼앗기기 쉬운 일이 있다. 자식의 자식을 바라보는 일이다. 그 말고 또 있다면 씨앗이 돋아 자라는 걸 보는 일이다. 새싹이 막 돋는 걸 보고 있으면 마음에 봄이 오는 걸 느낀다. 청년처럼 마음이 들뜬다. 없던 꿈이 생긴다.
지난 3월 24일, 새로이 온상을 만들고 씨앗을 뿌렸다. 꽃씨앗과 봄채소 씨앗이다. 살비아, 프렌치메리골드, 백일홍, 해바라기, 로즈마리, 수레국화. 해마다 심는 상추류와 치커리, 쑥갓, 비트. 그리고 또 하나 호박씨. 주로 지난 해 뜰안이나 텃밭에서 받은 씨앗들이다. 쑥갓은 금단추 같은 쑥갓 꽃에서, 치커리는 잉크빛 파란 꽃에서 씨앗을 받았다. 지난해에 실패했지만 올해 또 도전하는 씨앗이 있다. 로즈마리다.
이들을 촘촘히 뿌리고 난 뒤부터 나의 봄 씨앗 사랑은 시작됐다. 여느 해 같으면 안성에 사나흘 머물다 서울로 돌아갔을 일을 올해는 아예 눌러앉았다. 해가 거듭할수록 내가 그 어린 것들 편에 서 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 때문이다. 내륙의 이른 봄추위는 별나다. 추위에 민감한 나처럼 씨앗들도 나같이 추울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걸 나는 이제야 안다. 돌진하듯 세상을 살아왔으니 타인에게 마음 쓰지 못하고 살았다.
행동거지가 조신하고 말씨가 바르고, 마음이 고요한 젊은이들을 볼 때면 나는 그들을 그렇게 키워온 그들의 부모를 부러워한다. 앞으로만 달려가는 나와 나를 닮은 딸아이를 위해서 좀 늦었지만 내가 먼저 작은 것을 보살피는 마음을 배우고 싶었다.
씨앗을 넣고 나는 그들이 깨어나기를 차분히 기다린다. 아침에 알맞게 물을 주고, 물 준 모판 위에 신문으로 빛을 가려주고, 저녁엔 춥지 말라고 부직포를 덮어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인인 내가 그들 곁에 머물러 있다는 안도감을 주어야 했다. 나는 하루에도 대여섯 번씩 그들에게 내 발소리를 들려주느라 온상을 찾았다.
그 탓일까. 닷새가 지나면서 씨앗들이 흙을 뚫고 나왔다. 제일 부지런하기는 호박씨다. 세상에 나오자마자 햇빛 충전을 위해 떡잎 두 장을 펼친다. 호박 떡잎의 연둣빛 충전판은 햇빛에 예민하다. 충전할수록 초록빛으로 가득 차오른다. 호박순은 어쩌면 지금 충전한 에너지로 본밭에 나가 돌각서리를 타고 오를 것이다.
대개 씨앗이 돋는 순서는 큰 씨앗부터다. 호박과 해바라기가 나오고 백일홍, 메리골드, 상추, 청오크. 채송화씨처럼 작은 로즈마리는 무려 20일이 지나야 돋는다.
물을 주기 위해 한낮에 온상의 비닐을 반쯤 연다. 열기가 훅 몰려오는 눈앞에 쪽 고르게 난 새싹들은 자식의 자식을 돌보는 만큼 귀엽다. 나는 어린 새싹들을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앉은 채 몸을 한껏 구부린다. 마치 내 눈에 쏙 넣을 것처럼, 아니 내가 연둣빛 새싹 속에 쏙 빠져들어 갈 것처럼 엉덩이를 치켜들고 눈을 맞춘다. 그들과 한 몸이 되고 싶은 거다. 나도 봄처럼 새로워지고 싶고, 꿈을 갖고 싶은 거다.
처음 어린 새싹이 돋을 때엔 종묘 구분이 잘 안 된다. 어린 것들은 다 예쁘다. 다 연두고, 다 잎 모양이 같다. 하지만 젖살이 빠지면 아기의 본 얼굴이 드러나듯 새싹도 씨앗 영양 공급이 끝나면 비로소 제 모습을 드러낸다. 잎이 둥글거나 길쭉하거나 톱니모양이거나 색깔이 붉거나 청록이거나 청회색이거나 하는.
4월 햇빛이 덥다. 점심을 먹고는 그늘진 땅에 산미나리 씨앗을 뿌리고, 생강 몇 점을 심고, 오후엔 차분히 서울에서 가져온 일을 마쳐야겠다. 오늘로 눌러산지 한 달이다. 나는 잘 못 느끼겠지만 어쩌면 내 몸에 연한 새싹 풀물이 들었지 싶다. 그 힘으로 4월을 난다.
지난 3월 24일, 새로이 온상을 만들고 씨앗을 뿌렸다. 꽃씨앗과 봄채소 씨앗이다. 살비아, 프렌치메리골드, 백일홍, 해바라기, 로즈마리, 수레국화. 해마다 심는 상추류와 치커리, 쑥갓, 비트. 그리고 또 하나 호박씨. 주로 지난 해 뜰안이나 텃밭에서 받은 씨앗들이다. 쑥갓은 금단추 같은 쑥갓 꽃에서, 치커리는 잉크빛 파란 꽃에서 씨앗을 받았다. 지난해에 실패했지만 올해 또 도전하는 씨앗이 있다. 로즈마리다.
이들을 촘촘히 뿌리고 난 뒤부터 나의 봄 씨앗 사랑은 시작됐다. 여느 해 같으면 안성에 사나흘 머물다 서울로 돌아갔을 일을 올해는 아예 눌러앉았다. 해가 거듭할수록 내가 그 어린 것들 편에 서 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 때문이다. 내륙의 이른 봄추위는 별나다. 추위에 민감한 나처럼 씨앗들도 나같이 추울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걸 나는 이제야 안다. 돌진하듯 세상을 살아왔으니 타인에게 마음 쓰지 못하고 살았다.
행동거지가 조신하고 말씨가 바르고, 마음이 고요한 젊은이들을 볼 때면 나는 그들을 그렇게 키워온 그들의 부모를 부러워한다. 앞으로만 달려가는 나와 나를 닮은 딸아이를 위해서 좀 늦었지만 내가 먼저 작은 것을 보살피는 마음을 배우고 싶었다.
씨앗을 넣고 나는 그들이 깨어나기를 차분히 기다린다. 아침에 알맞게 물을 주고, 물 준 모판 위에 신문으로 빛을 가려주고, 저녁엔 춥지 말라고 부직포를 덮어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인인 내가 그들 곁에 머물러 있다는 안도감을 주어야 했다. 나는 하루에도 대여섯 번씩 그들에게 내 발소리를 들려주느라 온상을 찾았다.
그 탓일까. 닷새가 지나면서 씨앗들이 흙을 뚫고 나왔다. 제일 부지런하기는 호박씨다. 세상에 나오자마자 햇빛 충전을 위해 떡잎 두 장을 펼친다. 호박 떡잎의 연둣빛 충전판은 햇빛에 예민하다. 충전할수록 초록빛으로 가득 차오른다. 호박순은 어쩌면 지금 충전한 에너지로 본밭에 나가 돌각서리를 타고 오를 것이다.
대개 씨앗이 돋는 순서는 큰 씨앗부터다. 호박과 해바라기가 나오고 백일홍, 메리골드, 상추, 청오크. 채송화씨처럼 작은 로즈마리는 무려 20일이 지나야 돋는다.
물을 주기 위해 한낮에 온상의 비닐을 반쯤 연다. 열기가 훅 몰려오는 눈앞에 쪽 고르게 난 새싹들은 자식의 자식을 돌보는 만큼 귀엽다. 나는 어린 새싹들을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앉은 채 몸을 한껏 구부린다. 마치 내 눈에 쏙 넣을 것처럼, 아니 내가 연둣빛 새싹 속에 쏙 빠져들어 갈 것처럼 엉덩이를 치켜들고 눈을 맞춘다. 그들과 한 몸이 되고 싶은 거다. 나도 봄처럼 새로워지고 싶고, 꿈을 갖고 싶은 거다.
처음 어린 새싹이 돋을 때엔 종묘 구분이 잘 안 된다. 어린 것들은 다 예쁘다. 다 연두고, 다 잎 모양이 같다. 하지만 젖살이 빠지면 아기의 본 얼굴이 드러나듯 새싹도 씨앗 영양 공급이 끝나면 비로소 제 모습을 드러낸다. 잎이 둥글거나 길쭉하거나 톱니모양이거나 색깔이 붉거나 청록이거나 청회색이거나 하는.
4월 햇빛이 덥다. 점심을 먹고는 그늘진 땅에 산미나리 씨앗을 뿌리고, 생강 몇 점을 심고, 오후엔 차분히 서울에서 가져온 일을 마쳐야겠다. 오늘로 눌러산지 한 달이다. 나는 잘 못 느끼겠지만 어쩌면 내 몸에 연한 새싹 풀물이 들었지 싶다. 그 힘으로 4월을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