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어디 있을까? ‘행복’이

어디 있을까? ‘행복’이

by 정운 스님 2020.04.07

“나에게 행복이란
내가 원하기만 한다면, 늘 그 자리에 서 있다.”
따라서 모든 고난이나 역경은
내 마음먹기에 따라 행복으로 바뀔 수도 있다.”

위의 내용은 이탈리아 로마 제정 시대 노예출신 철학자인 에픽테투스(Epiktetos)의 말이다. 우리는 늘 행복을 추구한다. 종교를 믿는 것도 남들보다 행복하기 위해서고,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직업을 구하고자 하는 것도 행복을 위해서며, 좋은 배우자를 만나고자 하는 것도 행복하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그 행복이란 어디에 있을까? 구태의연하고, 뻔한 질문에 독자님들이 웃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행복의 반대인 불행은?… 현재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고통받고 있는 현실이 아닐까? 경제적인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체육계ㆍ예술계까지 도탄에 빠져 있다. 현 상태가 제 2차 세계대전에 비견할 정도로 전시 상태와 다름없다고 한다. 6개월 전만 해도 바이러스 감염증이 전 세계 사람을 위협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아닌가?!
코로나19 바이러스 발생을 우리가 어찌 막느냐고 하겠지만, 솔직히 따지면 인류의 자만과 자고병自高病으로 발병된 인재이다. 몇 년 단위로 발병하는 바이러스는 조류ㆍ어류ㆍ축생들을 인간의 피조물로 여기고, 생명을 함부로 해친 데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곧 현재의 바이러스도 인간이 스스로 만든 불행이다.
며칠 전에 친동생이 찾아왔는데, 잠깐 대화하고 헤어졌다[동생을 만나는 일이 1년에 한두번]. 바이러스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거리두기를 하다 보니 따스한 인간의 정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사회적인 모임이나 단체 활동이 모두 stop된 상태이다. 바이러스로 죽은 이들 중에는 산자의 배웅도 없이 이승을 떠나는 고인들이 있고, 바이러스로 죽은 부모의 장례조차 치루지 못해 고뇌하는 자식들이 있다. 또한 평생을 함께 한 배우자의 죽음조차 배웅하지 못하는 부부도 있으며, 멀쩡한 자식의 죽음을 앞세우고도 눈조차 감기지 못하는 부모들이 있다. 눈앞에서 생이별하고 사는 피붙이 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한 많은 사람들의 아픔이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글 서두에서 말한 행복이란? 바로 인간과 인간의 인연이라고 본다. 행복은 바로 가족이었고, 사람이었다. 행복은 밖이 아니라 집안에 있었다. 우리는 이 점을 잊고 지내다 이번 바이러스를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인간과의 관계가 행복이라는 것을 이번 기회에 알게 된 것이다. 행복이 늘 옆에 함께 하고 있는데, 우리는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 바이러스 병균이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이로 인해 흔하고 흔한 일상의 삶ㆍ가족ㆍ사람과의 인연이 참 행복임을 알게 되었으니, 그 행복을 발견하는데 비싼 수업료를 치루고 있다. 현 코로나 바이러스에 비관만 하지 말자. 곧 행복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