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지의 봄
저수지의 봄
by 권영상 작가 2020.04.02
텃밭에 감자와 토란을 심고는 일어섰다. 겨울 내내 마음에 품었던 저수지를 향해 차를 몰아갔다. 시골은 봄이 늦다. 목련도 벚꽃도 아직 멀다. 도시의 봄이 이를 뿐이다. 그래도 들판으로 난 길을 달리는 기분만은 좋다. 가득 물이 차 있는 논과 따뜻한 볕과 먼데 푸른빛 도는 산이 아지랑이를 먹은 듯 어지럽다.
저수지라 해봐야 집에서 그리 멀지 않다. 차로 10여 분 거리다. 가끔 면사무소나 우체국에 볼일이 있을 때면 들른 김에 찾아가곤 했다. 안성 읍내로 나가는 길에서 이내 우측으로 접어들면 벚나무길 끝에 저수지가 있다. 수문 옆 빈터에 차를 세웠다.
둑방에서 바라보는 저수지 물빛이 파랗다. 둑방을 내려가 저수지 물가로 난 길에 들어섰다. 물가 버들숲이 푸르고 건너편 산과 마을이 물 안에 맑게 내려와 있다. 한적하다. 오후의 좁은 봄길을 따라 걷는다. 볼만한 건 저수지 가장자리에 일구어놓은 올망졸망한 쌈지밭들이다. 우묵진 밭엔 밭미나리가 파랗고, 밭둑엔 소루쟁이들이 한창이다. 요즘 같이 밝은 세상에 뭐 별것 아닌 것들인데 볼수록 그들이 반갑다.
저쯤 빈 밭엔 파 한 줄이 큰다. 한 고랑 남겨둔 파가 홀로 겨울을 났다. 혹독한 시련을 넘긴 사내처럼 겨울을 이겨낸 파밭 골의 파빛이 독한 초록이다. 다가가 만져본다. 터질 듯이 통통하다. 이 파들이 혈통 좋은 파씨를 지금 만들어내고 있겠다. 불끈불끈 솟구쳐 올리는 파꽃이 보고 싶다. 누구네 쌈지밭인지 스프링클러가 혼자 돌아가고 있다. 마늘밭이다. 마늘밭 마늘이 빈자리 없이 촘촘촘 물에 젖는다.
어떤 이에겐 겨울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춥고 냉혹한 계절이지만 마늘이나 파에게 겨울이란 살아낼 만한 계절이다. 달래 나리 백합 마늘 수선화 글라디올러스 등은 모두 백합과인데 추위와 맞설 줄 아는 풍습이 있다.
스프링클러의 물을 비켜 걷다 보니 저쪽에서 보던 버드나무숲이 내 곁에 바짝 다가와 있다. 동요 속 가사처럼 버들강아지 눈떴다. 마을의 봄과 달리 저수지의 봄아가씨는 이미 오셨다. 뽀얀 털옷을 벗고 연두색 꽃을 터뜨렸다. 잎보다 꽃이 먼저다.
물가 버들숲을 따라 걷는다. 이제 보니 내가 혼자가 아니다. 나를 따라오는 녀석이 있다. 노랑턱멧새다. 목에 노랑 스카프를 한 봄아가씨다. 물가 버드나무 낮은 가지를 폴짝풀짝 건너뛰며 나를 따라온다. 그의 노래에 봄빛이 노랗게 묻어있다. 멈추면 혹시 달아날까봐 곁눈질을 하며 벗 삼아 함께 걷는다.
한참 따라오더니 홀짝 날아간다. 저쪽 저수지 물이 낮아져서 드러난 마른 모래바닥 돌부리에 가 앉는다. 이번에는 내가 새를 따라간다. 저수지 안으로 쑥 들어온 곳이라 저수지가 판하게 보이고 물 위에 비친 건너편 마을 그림자가 한결 가깝다. 집들의 지붕이며 창문이며 울타리며 그 앞으로 난 길이며 길을 달려가는 자전거까지 유리같이 선명하게 보인다. 물속 풍경이 진경 같고, 물밖 풍경이 한갓 덧없는 그림자 같다.
납작한 돌멩이를 주워 물수제비를 떠본다. 몇 번인가 잠방거리며 날아가던 돌이 깜물 물 아래로 잠긴다. 저수지 속 꿈 같은 풍경이 잠시 흔들리더니 이내 고요해진다.
그러고 보니 돌부리에 날아와 앉아 있던 노랑턱멧새가 안 보인다. 돌부리만 동그마니 남아있다. 저수지 안길로 다시 돌아가 봄길을 걷는다. 민들레꽃이며 꽃다지 광대나물꽃이 한창이다. 쇠뜨기 뱀눈도 마른 풀 사이로 돋았다. 다른 데는 몰라도 저수지는 봄이다. 집에서 이만한 거리에 나와 봄을 만난다. 봄과 사회적 거리를 둘 사이가 아니라서 좋다.
저수지라 해봐야 집에서 그리 멀지 않다. 차로 10여 분 거리다. 가끔 면사무소나 우체국에 볼일이 있을 때면 들른 김에 찾아가곤 했다. 안성 읍내로 나가는 길에서 이내 우측으로 접어들면 벚나무길 끝에 저수지가 있다. 수문 옆 빈터에 차를 세웠다.
둑방에서 바라보는 저수지 물빛이 파랗다. 둑방을 내려가 저수지 물가로 난 길에 들어섰다. 물가 버들숲이 푸르고 건너편 산과 마을이 물 안에 맑게 내려와 있다. 한적하다. 오후의 좁은 봄길을 따라 걷는다. 볼만한 건 저수지 가장자리에 일구어놓은 올망졸망한 쌈지밭들이다. 우묵진 밭엔 밭미나리가 파랗고, 밭둑엔 소루쟁이들이 한창이다. 요즘 같이 밝은 세상에 뭐 별것 아닌 것들인데 볼수록 그들이 반갑다.
저쯤 빈 밭엔 파 한 줄이 큰다. 한 고랑 남겨둔 파가 홀로 겨울을 났다. 혹독한 시련을 넘긴 사내처럼 겨울을 이겨낸 파밭 골의 파빛이 독한 초록이다. 다가가 만져본다. 터질 듯이 통통하다. 이 파들이 혈통 좋은 파씨를 지금 만들어내고 있겠다. 불끈불끈 솟구쳐 올리는 파꽃이 보고 싶다. 누구네 쌈지밭인지 스프링클러가 혼자 돌아가고 있다. 마늘밭이다. 마늘밭 마늘이 빈자리 없이 촘촘촘 물에 젖는다.
어떤 이에겐 겨울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춥고 냉혹한 계절이지만 마늘이나 파에게 겨울이란 살아낼 만한 계절이다. 달래 나리 백합 마늘 수선화 글라디올러스 등은 모두 백합과인데 추위와 맞설 줄 아는 풍습이 있다.
스프링클러의 물을 비켜 걷다 보니 저쪽에서 보던 버드나무숲이 내 곁에 바짝 다가와 있다. 동요 속 가사처럼 버들강아지 눈떴다. 마을의 봄과 달리 저수지의 봄아가씨는 이미 오셨다. 뽀얀 털옷을 벗고 연두색 꽃을 터뜨렸다. 잎보다 꽃이 먼저다.
물가 버들숲을 따라 걷는다. 이제 보니 내가 혼자가 아니다. 나를 따라오는 녀석이 있다. 노랑턱멧새다. 목에 노랑 스카프를 한 봄아가씨다. 물가 버드나무 낮은 가지를 폴짝풀짝 건너뛰며 나를 따라온다. 그의 노래에 봄빛이 노랗게 묻어있다. 멈추면 혹시 달아날까봐 곁눈질을 하며 벗 삼아 함께 걷는다.
한참 따라오더니 홀짝 날아간다. 저쪽 저수지 물이 낮아져서 드러난 마른 모래바닥 돌부리에 가 앉는다. 이번에는 내가 새를 따라간다. 저수지 안으로 쑥 들어온 곳이라 저수지가 판하게 보이고 물 위에 비친 건너편 마을 그림자가 한결 가깝다. 집들의 지붕이며 창문이며 울타리며 그 앞으로 난 길이며 길을 달려가는 자전거까지 유리같이 선명하게 보인다. 물속 풍경이 진경 같고, 물밖 풍경이 한갓 덧없는 그림자 같다.
납작한 돌멩이를 주워 물수제비를 떠본다. 몇 번인가 잠방거리며 날아가던 돌이 깜물 물 아래로 잠긴다. 저수지 속 꿈 같은 풍경이 잠시 흔들리더니 이내 고요해진다.
그러고 보니 돌부리에 날아와 앉아 있던 노랑턱멧새가 안 보인다. 돌부리만 동그마니 남아있다. 저수지 안길로 다시 돌아가 봄길을 걷는다. 민들레꽃이며 꽃다지 광대나물꽃이 한창이다. 쇠뜨기 뱀눈도 마른 풀 사이로 돋았다. 다른 데는 몰라도 저수지는 봄이다. 집에서 이만한 거리에 나와 봄을 만난다. 봄과 사회적 거리를 둘 사이가 아니라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