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산수유 앞에서

산수유 앞에서

by 김민정 박사 2020.03.23

따뜻함이/ 아련하게 묻어나는 햇살
그 햇살 속에서/ 한참을 서성인다
훈풍의 바람결 같은 그대 기척 소리에

열아홉/ 그때처럼 아무 말도 못하는데
온기를 기억하는/ 심장은 북을 친다
붉은 피 꽃꿈을 꾼다 애벌레 허물 벗듯
- 이명희, 「산수유 앞에서」 전문

여러 가지 꽃들이 봄을 만나 한창 피고 있다. 동백, 매화, 산수유, 진달래, 개나리, 할미꽃, 제비꽃 등 저마다 고유의 향기와 색깔로 계절이 봄임을 알리고 있다. 땅속에선 어김없이 풀들이 솟아나고, 봄비도 자연스럽게 내리고 있다. 저렇듯 식물들도 움츠렸던 몸을 펴며 강하게 움트고, 움직이고 있다.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 등도 슬슬 봄을 맞아 오랜 동면에서 깨어나 활동을 시작하고 있다. 생명이 활기차게 움직이는 아름다운 계절임이 분명하다. 인간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이 시조처럼 ‘온기를 기억하는/ 심장은 북을 친다/ 붉은 피 꽃꿈을 꾼다 애벌레 허물 벗듯’이라며 봄을 맞는 인간도 아름답게 피어난 산수유를 보며 열아홉 처녀처럼 들뜨고 설레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심장이 뜨거워짐을, 그래서 꽃꿈을 꾸게 됨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 인간도 자연의 순리대로 돌아가는 생명의 하나이기에 따뜻한 봄이 되면 활동하고픈 에너지가 솟구치는 것이 당연지사이고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다.
그런데 올해의 봄은 인간들에겐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코로나19로 난리가 난 세상이다. 인간은 너무나 나약한 존재라는 느낌도 들었다. 며칠 전 국내에선 확진자 수치가 조금 낮아지기 시작하여 고비를 넘기는가 싶었다. 지방마다 집단 감염자와 해외에서 유입되는 사람들로 확진자 수가 늘어나고 있다. 사람들의 마음이 조금 풀려서, 그런 것은 아닌가 싶다. 나이 든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17세 소년의 죽음은 안타깝고 슬프기 그지없다. 젊은 사람도 제때에 치료받지 못하면 위험하다는 것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는 ‘젊으니까 괜찮을 거야’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경고가 아닐 수 없다. 유럽의 소식, 특히 이탈리아의 소식은 우리를 암울하고 슬프게 한다. 그렇게 확산되기 전에 각자가 조심해야 했는데, 가볍게 생각하고 집단모임 등을 피하지 않았기 때문에 걷잡을 수 없이 퍼져 간 것 같다. 어디쯤에서 끝이 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라 불안한 하루하루이다.
물론 자유롭게 활동하다가, 제재가 많고 조심해야 하는 삶은 조금, 아니 많이 불편하다. 그러나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그렇다. 모든 계획이 매일매일 바뀌고 있고,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많은 소식으로 들끓고 있다. 조금씩 양보하고 협동하고 봉사하는 마음으로 인내심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어차피 이 세상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기에 그런 것이다. ‘날씨가 좋아지면, 온도가 올라가면 조금 나아지겠지’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라고 한다. 더운 지방에서도 감염자 수가 늘고 있고, 온도가 올라가도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 모임 등을 자제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고, 건강에 유의하여 확진자를 줄여가는 수밖에 없다. 나의 몸은 나 한 사람의 건강 외에도 많은 사람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느끼며 살아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