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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없는 사회로 가는 길목

현금 없는 사회로 가는 길목

by 이규섭 시인 2020.02.21

시중은행에서 동전을 환전하려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한국은행에선 동전 발행에 드는 세금을 줄이기 위해 잠자는 동전을 교환하도록 장려하고 있지만 시중은행에선 엇박자다. 동전 교환 요일과 시간을 제한하고 있는데다, 동전계수기가 고장 난 채 방치된 곳도 있다. 계좌 개설 등 조건을 내걸기도 한다.
소비자 손에 들어간 동전은 회전율이 낮다. 저금통이나 항아리에 넣어둔 채 유통시키지 않는다. 설문조사 결과 잔돈으로 받은 동전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46.9%나 된다.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소지 불편(62.7%)이다. 동전주머니가 사라진지도 오래됐다. 돌아오지 않는 동전을 계속 찍기만 하니 주화 제조비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10원짜리 경우 액면가 보다 제작비가 더 든다. 2017년 경우 주화 발행액은 138억 원인 데 주조비는 501억 원으로 배 보다 배꼽이 크다.
‘돌지 않는 동전’을 순환시키려 한국은행은 2017년 4월부터 ‘동전 없는 사회’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있지만 효과는 미미하다. 시범사업 핵심은 잔돈 적립서비스로 현금 결제 때 발생하는 거스름돈을 동전 대신 전자지급수단으로 되돌려주는 것이다. ‘동전 없는 사회’ 사업이 지지부진한 가장 큰 이유는 사업구조가 소비자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공급자 편의 중심으로 짜여 진 탓이다. 사업에 참여하는 업체마다 이용 가능한 적립 수단이 각각 달라 활성화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가맹사업 공급자가 거스름돈 대신 지급하는 사이버머니를 현금으로 환급받으려면 수수료가 발생하는데 환급 수수료를 받지 말라고 강제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한국은행은 2단계 시범사업으로 현금IC카드와 모바일카드 기반의 계좌 적립 방식으로 적립 수단을 일원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국정감사자료에서 밝혔다. 은행권 공동사업으로 전용카드를 만들어 현금 거래 후 잔돈을 고객이 제시한 카드나 모바일카드 계좌로 입금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2단계 사업에서 발생하는 수수료는 가맹점과 소비자에게 부과하지 않고 은행과 금융감독원이 부담할 예정이라고 밝혀 추진 동력은 확보된 상태다.
‘동전 없는 사회’라는 명칭이 붙었지만 발행을 중단하거나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전자지급 결제 수단을 활용하여 동전 사용을 줄여보자는 취지다. 유럽 국가들은 동전 없는 사회를 넘어 현금 없는 사회로 빠르게 이행하고 있다. 현금 없는 사회란 화폐를 사용하지 않고 신용카드, 모바일 지급 수단 등의 사용이 90% 넘는 사회를 말한다. 동전이나 화폐발행 비용을 절감하고 강도나 소매치기 등의 범죄예방에도 효과가 있다. 뿐만 아니라 지하경제 양성화에도 도움이 된다. 스웨덴과 벨기에는 이미 정착됐고, 영국, 뉴질랜드는 보완책을 마련 중이다.
정책이란 동전의 양면과 같아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우선 보안 문제가 대두된다. 소매치기는 사라져도 해킹과 정보 유출 등 신종 사이버범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고령층, 장애인, 저소득층, 벽지에 살고 있는 주민 등의 금융소외와 소비활동의 제약 문제가 심화될 수 있다. 신중한 접근과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