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겨울의 소리쟁이와 개나리꽃

겨울의 소리쟁이와 개나리꽃

by 강판권 교수 2020.02.03

세상은 한순간도 변하지 않는 때가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간혹 변하지 않는 것을 원한다. 사람들은 살면서 힘들 때 매일 변하는 것을 목격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것을 바란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삼삼오오 모여 옛날을 추억한다. 그러나 옛날을 추억하면 할수록 변화를 감지하는 능력은 떨어진다. 변화를 감지하는 능력이 떨어질수록 삶은 힘들다.
나는 식물의 삶을 통해 세상의 변화를 감지한다. 식물은 그 어떤 생명체보다 변화를 잘 읽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팔거천에는 각종 풀과 오리, 왜가리 등 다양한 생명체들이 살고 있다. 그중에서 소리쟁이와 개나리는 겨울철의 변화를 읽는 데 아주 유용하다. 갈잎 소리쟁이는 겨울철인데도 잎이 파릇파릇하다. 가만히 곁에 가서 귀를 대고 소리쟁이의 삶을 들여다보면 겨울 날씨에 익숙한 모습이다. 린네가 학명을 붙인 마디풀과의 여러해살이 소리쟁이는 오염 상태를 가늠할 수 있는 잣대다. 소리쟁이는 산성을 아주 싫어하고 오염된 곳에는 잘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살고 있는 하천에 소리쟁이가 많이 살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토양이 건강하다는 뜻이다. 소리쟁이의 열매가 바람에 부딪히면 내가 좋아하는 아쟁이 연주하는 것 같다.
개나리는 봄을 알리는 대표적인 나무다. 특히 개나리는 우리나라의 특산이기 때문에 식물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물푸레나뭇과의 갈잎떨기나무 개나리의 학명은 일본 출신의 나카이가 붙였다. 겨울철에 개나리꽃이 핀다는 것은 그만큼 기후가 따뜻하다는 뜻이다. 가만히 곁에 가서 귀를 대고 개나리의 삶을 들여다보면 기후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네 개의 꽃잎에 귀를 대면 마치 황금 종소리가 들리듯 하다. 일상에서 황금으로 만든 종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산책하다가 길을 걷는 사람들 중 어떤 사람은 파릇파릇한 소리쟁이와 꽃 핀 개나리를 보면서 철이 없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소리쟁이와 개나리는 철이 없는 것이 아니라 철을 잘 아는 존재다. 오히려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들이 철이 없다. 변화가 있으면 변화 그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자신들도 하루하루 변화의 삶을 살면서도 변화를 수용하지 않으면 불만 가득한 삶을 살아야 한다. 변화를 만나면 우선 가만히 들여다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변화가 왜 일어나는지에 대한 현상을 정확하게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현상을 정확하게 살피지 않고서는 변화의 본질을 이해할 수 없다. 세상의 소리를 잘 듣는 사람이 ‘어른’이다. 그래서 어른 노릇을 하려면 세상의 변화를 정확하게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모든 생명체의 삶은 일정하게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변화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변화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수용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단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세상은 언제나 변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소리쟁이와 개나리의 변화를 통해 미래를 읽을 수 있다. 아무도 미래를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변화를 수용하는 자는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자는 어떤 경우에도 두려움 없이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