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공명지조

공명지조

by 정운 스님 2019.12.26

대학교수들이 2019년 올해의 사자성어로 ‘공명지조共命之鳥’를 발표했다. 이 사자성어는 <불본행집경>과 <잡보잡경> 등 불교경전에 있는 말이다.
이 새는 아름다운 목소리를 갖고 있으며, 히말라야 기슭인 극락에 산다. 몸은 하나인데, 머리가 두 개인 새로 두 생명이 서로 붙어 있어 상생조相生鳥ㆍ공생조共生鳥ㆍ생생조生生鳥라고 한다. 두 머리를 가진 새의 한 머리는 낮에 일어나고, 다른 머리는 밤에 일어나는 등 일상패턴이 다르다 보니 다투는 일이 잦았다. 한 머리가 몸을 위해 항상 좋은 열매를 챙겨 먹는데, 다른 머리는 질투심을 갖고 있었다. (시기심에 가득 찬) 머리의 새는 언제고 보복하기 위해 벼르고 있다가 독이 든 열매를 몰래 먹었다. 결국 독이 온몸에 퍼져 두 머리를 가진 새는 죽게 되었다. 시기심으로 심술부렸다가 상대방은 물론이요 자신까지 함께 죽게 된 것이다. 함께 죽음을 자초한 공멸共滅이라고 볼 수 있는데, 혹 그 반대로 상대에게 양보ㆍ배려했다면 공생共生이 되었을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님께서 무슨 의미인지 금방 파악했을 것이다. 앞의 새처럼 현 우리 중생도 이와 유사하다. 살면서 남 잘되는 꼴을 보지 못해 상대를 시기 질투해서 상대를 해한다면, 결국 자신도 똑같은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필자가 원고를 쓰면서 가장 많이 언급하는 연기설로 보면,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서로서로 주고받는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서로의 유기적인 관계로 연결되어 있는데, 자신이 상대를 해하면 그 과보는 반드시 자신에게도 미친다. 이 점은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도 일어날 수 있고, 국가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불교에서 지옥을 상징하는 그림에 이런 그림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길이가 매우 긴 젓가락으로 음식을 먹으려고 한다. 그런데 음식을 집을 수는 있는데, 젓가락이 길어 아무리 노력해도 입에 넣지 못했다. 결국 음식을 앞에 두고, 젓가락질이 어려워 배를 곯는다.
그런데 극락[천국]을 표현하는 그림에 이런 내용이 있다. 젓가락이 길어 자기 입에 음식을 넣을 수가 없자, 긴 젓가락으로 다른 사람 입에 음식을 먹여준다. 또 그 상대방도 긴 젓가락으로 자신의 입에 넣어준다. 곧 긴 젓가락으로 서로가 서로를 먹여주니, 즐겁게 웃으면서 행복하게 밥을 먹는 장면이다. 곧 상대에게 심려心慮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 배려配慮를 하는 것이 극락의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원고 맨 앞에서 거론했던 공명지조로 돌아가 내용을 정리해보자. 지옥과 극락은 환경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 상태[심려ㆍ배려]를 어떤 마음에 머물러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내 시기심 때문에 상대를 해한다면, 그 상대의 고통만큼 자신도 똑같이 받는다. 그러니 심려가 아닌 배려하는 여유를 가져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