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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 팥죽과 팥의 건강학

동지 팥죽과 팥의 건강학

by 이규섭 시인 2019.12.20

올해 동지(22일)는 노동지(老冬至)다. 음력 동짓달 스무엿새로 하순에 들어 붙여진 이름이다. 중순에 동지가 들면 중동지(中冬至), 초순에 들면 아이를 뜻하는 애동지다. 애동지 땐 팥죽 대신 팥 시루떡을 먹으며 섭섭함을 달랬다. 예전엔 팥죽을 쑨 뒤 집안 곳곳에 뿌렸다. 팥의 붉은 색이 액운을 물리친다고 믿었던 풍속이다.
예전엔 이사를 가거나 새 집을 지을 때도 팥죽을 쑤어 집 안팎에 뿌렸다. 이사를 하면 이웃에 팥죽을 돌렸으나 차츰 팥 시루떡으로 바뀌었다. 백일상에 붉은색 수수팥 경단을 놓는 것도 무탈하게 무럭무럭 잘 자라라는 의미다. 팥죽은 겨울철 별미다. 은은한 향과 부드럽고 달달한 맛이 혀끝을 감친다. 먹거리가 귀한 기나긴 동짓달 밤, 따뜻하게 데운 팥죽에 얼음 둥둥 뜬 동치미를 곁들이면 환상의 궁합이다.
팥은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 잡았다. ‘콩쥐팥쥐’와 ‘팥죽할멈과 호랑이’ 전래동화에도 등장하여 어린이들에게 상상력을 일깨워 준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속담은 뿌린 대로 거둔다는 생활의 덕목이 담겼다.
팥을 이용한 먹거리는 차고 넘친다. 어린 시절 ‘풀빵’은 귀한 주전부리다. 풀빵 사 먹는 재미에 장날이 오기를 기다렸다. 나중엔 꽃문양을 넣어 국화빵이란 고상한 이름이 붙었다. 말랑말랑하고 달콤한 팥소 맛이 일품이다. 요즘도 붕어빵과 함께 겨울철 대표적 길거리 간식의 대명사다. 구멍가게 호빵이 편의점으로 들어가면서 팥소 대신 고기와 야채를 넣는 등 다양하게 변신하여 호빵의 아련한 향수는 사라졌다. 한 겨울 구성진 목소리가 담긴 찹쌀떡의 팥소도 잊히지 않는다. 한여름 팥빙수는 얼얼하고 달콤 상큼한 맛으로 무더위를 식혀준다.
예전 완행열차의 먹거리 삼종 세트는 삶은 계란, 카스텔라와 연양갱이다. 연양갱은 팥 앙금의 2차 가공으로 도시적 기품이 서렸다. 팥 앙금의 달콤함은 치명적인 맛이다. 1945년에 태어났으니 일흔 세 살 연륜에도 옛 맛을 지키며 건재하다. 지역 명물에도 팥의 역사가 담겼다. 경주 황남빵은 80년 넘었다. 지난가을 경주에 들렀더니 3대를 이어온 원조집이 여전히 건재하다. 황남빵은 얇은 껍질 속에 담백하고 부드러운 단맛이 특징이다. 천안 호두과자, 군산 단팥빵, 안흥 찐빵의 관록도 팥소가 맛을 좌우하며 생명력을 유지한다.
팥은 예부터 건강식으로 즐겨 찾았다. 팥에는 비타민 B군이 함유되어 탄수화물의 소화흡수를 도와준다. 신체에 활력을 주고 피로감 개선이나 기억력 감소 예방에 좋다고 한다. 팥에 들어 있는 사포닌은 이뇨작용을 돕는다. 붉은 팥에는 안토시아닌이 풍부하여 체내 유해 활성산소를 제거해 준다니 건강보조식품과 다름없다.
팥은 곡류에 부족한 성분을 보완하여 영양학적 가치를 더욱 높여준다. 찹쌀 새알이 든 팥죽, 찹쌀떡, 시루떡, 두텁떡은 곡류와 팥의 환상적 조합이다. 팥에는 지방 성분이 거의 없어 콩기름은 있어도 팥 기름은 없는 게 특징이다. 팥이 몸에는 좋지만 수익성은 낮아 팥 재배면적이 크게 줄었다. 대부분 중국에서 수입하여 쓰고 있다는 게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