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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기념물 나무에 대한 예의

천연기념물 나무에 대한 예의

by 강판권 교수 2019.11.18

천연기념물 나무는 문화재청에서 관리하는 국가문화재다. 따라서 자연생태의 천연기념물도 인문 관련 문화재처럼 보호해야 한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천연기념물 나무는 죽으면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상실한 것으로 판단해서 지위를 해제한다. 나무가 천연기념물에서 해제된 후에는 살아 있을 때와는 대우가 전혀 다르다. 돌아가신 충북 괴산군의 왕소나무의 예에서 보듯이 죽은 시신에 대한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얼마 전 태풍 13호 링링 탓에 천연기념물 제541호인 ‘합천 해인사 학사대 전나무’가 돌아가셨다.
2012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학사대 전나무는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나무 중 2 그루 밖에 없는 전나무 중 한 그루였다. 이제 천연기념물 전나무는 2008년 495호로 지정된 전북 진안군의 천황사 전나무가 유일하다. 전나무의 이름에 ‘학사대’를 붙인 것은 신라시대 고운 최치원의 지팡이에서 태어난 나무이자 그의 관직이 ‘한림학사’였기 때문이다. 30미터에 달하는 학사대 전나무는 다른 천연기념물과 달리 심은 기록이 적잖이 남아 있다. 그 중에서도 대구 동구 둔산동에 고택이 남아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최치원의 후손인 최흥원(1705~1786)의 시문집 『백불암집』에 그가 1757년 해인사를 둘러본 후 심은 기록이 남아 있다. 따라서 학사대 전나무는 현재 이 자료에 근거해서 나이를 250살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학사대 전나무는 세계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판을 보관한 수다라장 옆 독성각 근처에 살고 있었다. 이곳의 전나무는 우리나라 조계종의 사찰 중 법보사찰인 해인사의 위상을 더 높인 나무였다. 특히 학사대 전나무는 해인사에 서려 있는 최치원의 상징이었다. 해인사 주변에는 최치원의 흔적이 적잖이 남아 있지만 학사대 전나무는 최치원을 살아 있는 존재로 이해할 수 있는 상징이었다. 나는 전나무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곧장 문상하러 갔다. 내가 쓰러진 나무에 문상한다는 얘기를 듣는 사람들은 나에게 의아한 눈길을 보낸다. 나무에게 문상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천연기념물 나무에게 문상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나의 부모와 더불어 나를 존재케 한 은인이기 때문이다. 모든 나무는 인류가 지구상에서 살 수 있는 필수 조건을 제공한다. 이런 점에서 나무는 나의 은인이다. 아울러 나무는 내가 가장 어려울 때 먹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일등공신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먹고 살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나무를 대상으로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천연기념물 나무가 돌아가시면 전국 어디든 문상을 통해 예의를 표한다.
학사대 전나무는 살아 계실 때와 돌아가셨을 때의 모습이 전혀 다르다. 당연한 얘기지만 돌아가신 모습은 살아 있을 때의 당당한 자태를 찾아볼 수 없다. 전나무의 시신을 보노라면 돌아가신 부모님의 시신을 보는 것처럼 마음이 무척 아프다. 내가 문상한 당시만 해도 문화재청에서는 학사대 전나무의 시신을 수습하지 않고 그냥 방치해두었다. 나는 문화재청이 학사대 전나무의 시신을 어떻게 수습하는 지를 지켜볼 것이다. 학사대 전나무를 어떻게 수습하느냐는 곧 문화재청의 천연기념물 나무에 대한 보존 수준을 파악할 수 있는 기준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