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빠삐용 순이

빠삐용 순이

by 한희철 목사 2019.10.23

영월 김목사님네 개 이름은 순이입니다. 지극히 평범하고 순하게 생긴 진돗개지만, 사실은 순하지 만은 않습니다. 얼마 전까지 김목사님이 작고 외진 시골마을에서 목회할 때만해도 순이는 놀라운 재능을 발휘하곤 했습니다. 아침과 저녁으로 하루에 두 번 목줄을 풀어주면 맘껏 사냥을 즐겼던 것입니다.
쥐를 잡는 것은 기본, 야생 고라니를 잡은 것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고라니를 잡을 정도이니 순이의 끈기와 집념은 알아줄 만한 것이었습니다. 필시 범을 만났어도 물러서지 않고 맞장을 뜨지 않았을까 싶은 순이입니다. 이름만 순해 보였을 뿐 순이 안에는 야생의 본능이 꿈틀거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동네 이웃집 닭까지 물어 죽여 점잖은 목사님이 거듭 머리를 조아리며 물어준 돈이 이미 제 몸값을 훌쩍 뛰어넘은 것이 결정적인 흠이었지만 말이지요.
그런 순이에게 최근 새로운 별명이 하나 생겼습니다. 빠삐용 순이입니다. 순이가 빠삐용이란 이름을 얻게 된 내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순이는 몇 달 전에 이사를 했습니다. 목회지를 영월 읍내로 옮긴 목사님을 따라 거처를 읍내로 옮긴 것입니다. 이사를 온 순이는 꼼짝없이 갇히고 말았습니다. 순이에게 주어진 집은 다른 개들의 부러움을 살만한 집이었습니다. 전임자가 개를 두 마리 키워 제법 넓은 울타리 안에는 개집이 두 개나 마련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널찍한 울타리 안에 집이 두 채, 세상 어느 개가 그런 호강을 누리겠습니까? 날이 더운 날엔 그늘진 집에서 지내고, 추운 날엔 볕 잘 드는 곳에서 지내니 여름 별장과 겨울 별장을 따로 가지고 있는 셈이었지요.
그러나 그것이 순이를 만족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순이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숨이 멎도록 마음껏 뛰는 것이었습니다. 바람처럼 강가를 달리며 쥐와 고라니를 잡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꼼짝없이 갇혀 있어야 하니 순이로서는 견딜 수가 없는 노릇이었던 것입니다.
땅을 파기도 하고 울타리를 뛰어오르기도 하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던 순이가 마지막으로 택한 것이 탈출이었습니다. 울타리에는 유일한 구멍이 있었는데, 밥과 물을 넣어주는 공간이었습니다. 어느 날 순이는 그 구멍을 통해 울타리에서 빠져나왔습니다. 철망 사이로 난 구멍은 결코 큰 것이 아니어서 도저히 순이가 빠져나올 만한 공간이 못 되었지만, 순이로서는 필사의 탈출을 감행한 것이었습니다.
읍내를 뛰어다니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일, 어렵게 순이를 잡아 울타리에 넣은 목사님은 순이가 빠져나온 구멍에 철사를 둘렀습니다. 철사를 이빨로 끊기도 하고 철사를 한쪽으로 밀어내는 지혜를 발휘하기도 하며 순이의 탈출은 몇 번 더 계속됐습니다. 그럴 때마다 구멍을 막는 철사는 굵어졌고 구멍은 촘촘해졌지요.
순이는 다른 개들의 부러움을 살 만한 조건에서 살지만 즐거워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순이는 자유의 의미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는. 속박의 의미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렇게는 살 수 없는. 밥보다도 자유가 있어야 사는 것임을 빠삐용 순이는 일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