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시리도록 아름다운 우리말 시어

시리도록 아름다운 우리말 시어

by 이규섭 시인 2019.10.04

청소년시절 읽은 서정시에 담긴 우리말은 시리도록 아름답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시는 님에게 진달래꽃잎을 따다가 뿌리며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라’는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이별 미학의 절창이다. ‘즈려밟고 가시라’는 우리말은 진달래 꽃잎처럼 소년의 마을을 붉게 물들였다. 서정성 짙은 청록파 시인들이 빚은 우리말에 깊은 울림을 받았다.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조지훈 시 ‘승무’의 ‘나빌레라’는 ‘나비’와 ‘-ㄹ레라’를 합쳐서 ‘나비 같다’는 의미로 맛깔스럽게 빚어낸 우리말 신조어다. ‘파르라니’ 깎은 여승의 머리는 요즘 정치권의 삭발(削髮)과는 다른 고와서 서러운 고뇌다. 박목월의 시 ‘청노루’ 시어엔 색채감이 도드라진다. 제목부터 푸른빛 감도는 ‘청노루’에 절 이름도 ‘청운사’다. 푸르름을 품은 사찰이 자주색 자하산(紫霞山) 자락에 안긴 풍경은 색깔의 대비와 원근의 비교가 절묘하다. ‘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은 하얀 뭉게구름 일 것이다.
1988년에 해금되어 햇빛을 본 정지용의 시 ‘향수’는 향토색 짙은 토속어로 고향의 풍경을 정감 넘치게 그렸다. 충북 옥천 그의 고향 생가를 찾아 옛 흔적을 더듬어 보기도 했다. ‘향수’의 다채로운 시어는 고향의 이미지를 이어 붙인 조각보 같다. 옛 이야기는 나긋나긋하게 ‘지즐대고’, 얼룩배기 황소는 ‘금빛 게으른 울음’으로 청각과 시각을 자극한다.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서 겨울밤은 깊어가고 텅 빈 밭이랑사이로 바람은 말발굽 소리로 스쳐간다. 풀 섶 이슬 함초롬 휘적시고, 하늘엔 성근별이 반짝이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는’ 그 곳은 내 어릴 적 고향 풍경과도 닮았다. 그 시절에 읽은 시어들이 새삼 그립다.
국립국어원은 우리글과 우리말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를 조사하여 ‘숫자로 살펴보는 우리말’자료집을 지난 8월 펴냈다. 한글을 떠올렸을 때 연상되는 느낌은 ‘아름다운 문자’(92.1%), ‘과학적인 문자’(91.8%)라고 응답했다. 분야별 관심도는 맞춤법·띄어쓰기(78.%), 한글교육(70%), 창제 원리(64.9%) 순이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인구는 2017년 기준 7720만 명으로 세계 언어 사용 순위 l3위다. 전 세계 세종학당 수강생은 한류 열기에 힘입어 지난해 6만 명을 돌파했다.
아름답고 과학적이라는 문자가 현실에서는 지나친 축약으로 일그러지고, 과학성은 뒤틀렸다. 댓글과 채팅, 트위터와 카톡을 통한 문자의 축약과 줄임말은 해독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하다. 텔레비전 오락프로 자막에도 버젓이 내보내 축약과 줄임말을 부추긴다. 문자 축약의 경제성과 편의성을 이해하지 못하는바 아니지만, 버카충(버스 카드 충전),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를 이해못한다고 꼰대 취급받는 건 억울하다. 지나친 문자 축약은 세대 간 의사소통을 가로막고 한글을 훼손하고 파괴하는 행위다. ‘노잼’처럼 영어와 한글을 섞어 만든 국적불명의 외계어도 나랏말을 좀먹는 행위다. 일기나 자신만의 메모장에서만이라도 제대로 된 문장으로 우리말을 쓰는 습관을 길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