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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대교육, 왜 좋은가

격대교육, 왜 좋은가

by 이규섭 시인 2019.05.03

언론계 지인은 초등학교 들어가기 두 해 전 할아버지에게 한문을 배웠다. 교재는 조선 후기 장혼이라는 분이 어린이 교육용으로 지은 ‘계몽편’이다. 1년 만에 떼고 1년은 복습했다. 학창시절과 사회생활을 하면서 한자와 한문에 관심이 많았고 동양고전을 즐겨 읽게 된 것은 순전히 한자를 가르쳐 준 할아버지 덕분이라며 지금도 고마워한다. 나는 초등학생 때 아버지에게 천자문과 동몽선습(童蒙先習)을 배웠다. 문장을 이해하기보다 큰 소리로 읽고 외웠다. 선친은 마을 공동제사 때 축문을 짓고 동네 아이들 이름도 지어주었으니 당시로서는 식자층이다.
손자가 일곱 살 때 한자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교재는 동영상 세대에 걸맞게 다양하다. 한자를 노래에 맞춰 그림으로 설명한 뒤 음과 훈을 구분하고 선긋기를 한다. 일이삼사, 동서남북 등 쉬운 한자부터 묶어 다루고 연관 단어도 소개한다. 서당식 교육과는 확실히 다르다. 8급 한자 50자까지는 곧잘 따라 하더니 7급으로 접어들자 “어려워진다”며 힘들어한다. 6급 한자까지 초등학생이 알아야 할 300자 정도는 알려주고 싶다.
한자를 가르치려는 게 목표는 아니다. 손자와 함께 있는 시간을 통해 자연스럽게 사랑과 지혜를 느끼게 해주고 싶은 거다, 손주와 같이 살던지, 자주 만나던지 하는 경우는 그렇지 않는 경우보다 인지 능력, 사회성이 월등하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요즘 아이들의 육아는 돌봄 기관에 의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바람직한 육아는 부모지만 맞벌이로 바쁘다. 부모가 자식을 직접 가르치다 보면 기대 심리가 지나쳐 윽박지르거나 화를 내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조부모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절제된 마음으로 손자를 대하니 학습효과가 크다. 한 세대를 건너 뛴 관계인만큼 이른바 격대교육(隔代敎育)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손자를 가르칠 수 있다. 육아는 부모와 조부모가 함께 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조선시대 묵재 이문건(1494∼1567)은 손자바보다. 손자가 태어나 열여섯 살 되던 해까지 성장 발달 과정을 시간적 순서에 따라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우리나라 최초의 육아일기 ‘양아록(養兒錄)’을 남겼다. 퇴계 이황(1501∼1570)은 손자가 성균관 등 집을 떠나있는 동안 편지로 손자를 훈육했다. 공부에 정진하면 칭찬했고 도리에 어긋나면 준엄하게 꾸짖었다. 손자에게 보낸 편지가 16년 동안 150통이 넘는다니 손자 사랑이 넘치는 할아버지다. 두 분에 비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에 불과하다.
겸재(경북 성주)와 퇴계(경북 안동)가 태어난 경상북도는 2014년 매월 마지막 토요일을 ‘할매·할배의 날’로 지정했다. 손자·손녀들이 할머니·할아버지를 찾아뵙고 삶의 지혜를 배우는 기회로 삼는다. 조부모와 손자손녀의 교감을 통해 손자의 인성을 함양하고 무너져 내리는 가족공동체를 회복하자는 취지다. 어린이날 손자에게 용돈을 주고 장난감을 사주는 대신 놀아주는 것만으로도 격대교육의 효과는 크다. 고기를 잡아주기보다 고기 잡는 지혜를 가르치는 것과 같은 이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