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들은 옛이야기 두 커리
내가 들은 옛이야기 두 커리
by 권영상 작가 2019.03.07
요즘 아이들도 옛날이야기 좋아할까? 옛날에 옛날에 호랑이가 살았는데, 그딴 이야기 좋아할까. 아이들을 통 볼 수 없으니 나는 요즘 아이들을 우리와는 전혀 딴판인, 별에 사는 우주소년쯤으로 생각할 때가 많다. 쓰는 말은 물론 소통도 안 되고, 낯선 어른 곁엔 절대 오지 않는다고 믿었다. 적어도 내가 그 아이를 만나기 전까지는.
봄날 같은 오후, 아파트 마당 놀이터에 나갔다. 마른 풀 사이로 개미들이 가고 있다. 나는 잔뜩 허리를 구부리고 앉아 그들을 보았다. 그들 가는 곳이 어디인지, 이 겨울 한낮 무얼 찾아가는 건지, 정말 그들 가는 길 끝에 보리 한 알 떨어져 있는 건지, 죽은 벌레가 있다면 대체 어떤 벌레인지. 엉덩이걸음으로 개미를 따라가고 있을 때다.
“뭐하는 거예요?” 작은 그림자 하나가 내 곁에 다가왔다.
서너 살쯤 되는 사내 아이다.
“개미 가는 길 끝에 뭐가 있는지 궁금해서.”아이도 궁금한 지 내 앞에 쪼그려 앉았다. 나처럼 고개를 잔뜩 숙여 개미떼를 들여다보았다. 서로 머리가 닿을 듯 고개 숙여 엉덩이걸음질을 치다가 툭 머리를 부딪혔다.
“아저씨, 개미 좋아해요? 개미 옛날이야기 하나 아는 게 있는데.”
아이가 부딪힌 머리를 만지며 나를 쳐다봤다. 귀엽다. 어디서 흙놀이를 하다가 왔는지 손가락에 모래흙이 묻어있다. 내 눈길이 모래 묻은 제 손으로 가자, 손뼉을 치듯 짝짝 손에 묻은 모래를 떨어냈다.
“개미 옛날이야기, 아저씨한테 해주지 않을껴?”
내 말에 아이가 쑥스러운 듯 제 입을 막았다가 떼더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옛날에 개미가 있었는데요.” 까만 눈을 깜박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살려준 사람한테 매일 쌀을 물어다 주었대요. 그래서 그 사람이 부자가 되었대요. 끝.”
그의 옛날이야기는 고대 끝났다.
“재밌는데! 또 없니?”
나는 어머니 무릎을 베고 듣던 그 옛날의 나처럼 옛날이야기 한 커리를 또 졸랐다. 내 말에 아이가 잠깐만! 하고 어디론가 달아났다. 등나무 벤치에 저의 엄마가 있었다. 엄마와 뭐라 뭐라 하던 아이가 다시 내게로 왔다.
“엄마가 그러는데, 옛날에 커다란 호랑이가 살았대요. 호랑이는 아빠를 잡아먹고, 엄마를 잡아먹고, 나를 잡아먹고. 그래서 우리가 여기 와 있대요.”
아이가 내가 좋아하는지 아닌지 내 표정을 살폈다.
“여기가 어딘데?” 내가 물었다.
“여기가 거기랬어요. 호랑이 뱃속!”
그러고는 즈이 엄마한테로 달아났다. 나는 달아나는 아이 등에다 대고 옛날이야기 들은 값을 던졌다. “굉장히 재미있는걸!” 하고.
어쩌면 우리 살고 있는 이 세상이 호랑이 뱃속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맨날 들끓고 분탕질 치는지도. 봄날 같은 오후, 소통이 전혀 안 될 거라 생각했던 우리 동네 아이에게 호랑이 뱃속 같은 옛이야기 두 커리를 재미나게 들었다.
봄날 같은 오후, 아파트 마당 놀이터에 나갔다. 마른 풀 사이로 개미들이 가고 있다. 나는 잔뜩 허리를 구부리고 앉아 그들을 보았다. 그들 가는 곳이 어디인지, 이 겨울 한낮 무얼 찾아가는 건지, 정말 그들 가는 길 끝에 보리 한 알 떨어져 있는 건지, 죽은 벌레가 있다면 대체 어떤 벌레인지. 엉덩이걸음으로 개미를 따라가고 있을 때다.
“뭐하는 거예요?” 작은 그림자 하나가 내 곁에 다가왔다.
서너 살쯤 되는 사내 아이다.
“개미 가는 길 끝에 뭐가 있는지 궁금해서.”아이도 궁금한 지 내 앞에 쪼그려 앉았다. 나처럼 고개를 잔뜩 숙여 개미떼를 들여다보았다. 서로 머리가 닿을 듯 고개 숙여 엉덩이걸음질을 치다가 툭 머리를 부딪혔다.
“아저씨, 개미 좋아해요? 개미 옛날이야기 하나 아는 게 있는데.”
아이가 부딪힌 머리를 만지며 나를 쳐다봤다. 귀엽다. 어디서 흙놀이를 하다가 왔는지 손가락에 모래흙이 묻어있다. 내 눈길이 모래 묻은 제 손으로 가자, 손뼉을 치듯 짝짝 손에 묻은 모래를 떨어냈다.
“개미 옛날이야기, 아저씨한테 해주지 않을껴?”
내 말에 아이가 쑥스러운 듯 제 입을 막았다가 떼더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옛날에 개미가 있었는데요.” 까만 눈을 깜박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살려준 사람한테 매일 쌀을 물어다 주었대요. 그래서 그 사람이 부자가 되었대요. 끝.”
그의 옛날이야기는 고대 끝났다.
“재밌는데! 또 없니?”
나는 어머니 무릎을 베고 듣던 그 옛날의 나처럼 옛날이야기 한 커리를 또 졸랐다. 내 말에 아이가 잠깐만! 하고 어디론가 달아났다. 등나무 벤치에 저의 엄마가 있었다. 엄마와 뭐라 뭐라 하던 아이가 다시 내게로 왔다.
“엄마가 그러는데, 옛날에 커다란 호랑이가 살았대요. 호랑이는 아빠를 잡아먹고, 엄마를 잡아먹고, 나를 잡아먹고. 그래서 우리가 여기 와 있대요.”
아이가 내가 좋아하는지 아닌지 내 표정을 살폈다.
“여기가 어딘데?” 내가 물었다.
“여기가 거기랬어요. 호랑이 뱃속!”
그러고는 즈이 엄마한테로 달아났다. 나는 달아나는 아이 등에다 대고 옛날이야기 들은 값을 던졌다. “굉장히 재미있는걸!” 하고.
어쩌면 우리 살고 있는 이 세상이 호랑이 뱃속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맨날 들끓고 분탕질 치는지도. 봄날 같은 오후, 소통이 전혀 안 될 거라 생각했던 우리 동네 아이에게 호랑이 뱃속 같은 옛이야기 두 커리를 재미나게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