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독일보다 6배

독일보다 6배

by 한희철 목사 2019.03.06

이야기를 듣고는 나도 모르게 한숨부터 나온 소식이 있었습니다. 헤어진 여자 친구를 닮았다는 이유로 20대의 남자가 여고생의 머리를 벽돌로 내리친 사건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단지 헤어진 여자 친구를 닮았다는 이유로 집으로 돌아가던 여고생을 뒤따라가 벽돌로 치다니, 소식을 접하는 마음이 어지러웠습니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분노 조절을 못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싶었습니다.
독일에서 살았던 경험 때문일까요, ‘독일보다 6배’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았을 때 이내 관심이 갔습니다. 독일보다 6배라니 무엇이 그럴까, 궁금했습니다. 내용을 읽기 전에 잠시 생각해 보았지만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습니다. 혹시 미세먼지 이야기 아닐까 싶은 생각은 들었지만 아니었습니다. 기사에 담긴 내용은 전혀 짐작하지 못한 것이었는데, 중증 이상의 울분 느끼며 사는 한국인이 독일보다 6배 많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서울대 행복연구센터에서 지난해에 공개한 <한국 사회와 울분>이라는 제목의 연구 결과를 보면, 한국 성인남녀 14.7%가 일상생활에서 장애를 일으킬 정도의 중증도 이상의 울분을 느끼며 사는 것으로 조사가 됐습니다. 독일은 2.5% 정도였습니다. ‘생각할 때마다 아주 화가 많이 나게 하는 일’, ‘내가 보기에 정의에 어긋나고 아주 불공정한 일’, ‘상대방에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일’ 등 19가지 항목에 대해 질문하고 대답을 들은 결과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노력이 보람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무효 취급’을 받는데 따른 울분도가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응답자들은 ‘때때로 나는 정말 열심히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라는 질문에 66.7%가 동의했는데, 동시에 ‘노력은 인정받지 못하지만 한 번의 실수는 즉각 비판받는다’는 항목에도 64.1%가 동의를 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나 기여를 평가해주지 않는 ‘무효 취급’을 받으면서 억울한 감정이 생기고 이에 따른 울분이 커진다는 것인데, 연구팀은 이를 ‘무효 사회’라고 개념화했습니다.
울분이 심해지면 ‘외상후 울분장애’로 발전하기도 하는데 외상후 울분장애는 부정적인 사건을 경험한 뒤 정신 건강에 문제가 생기는 만성적 반응 장애로써, 사건을 떠올릴 때마다 그 사건을 불공정하게 여기며 무력감이나 절망에 사로잡히게 되는 질환입니다. 특히 외상후 울분 장애를 겪은 이들은 현실이 공정하다는 믿음이 깨지면서 지속해서 울분을 호소하게 되는데, 심각한 경우 공격성이 표출되며 폭력을 휘두르거나 자살을 시도하기도 합니다.
연구를 맡은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사람들이 ‘무효 취급’을 받으면 ‘무력함’이 생기고, 이는 부정적 시너지를 내며 울분 장애를 만든다.”며 “울분의 근원에는 ‘무효 사회’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무효 사회’라는 말이 무겁게 다가옵니다. 우리 사회가 무효 사회가 되어 적지 않은 이들이 울분 장애를 앓고 있다는 말도 아프지만 공감이 됩니다. 마음을 다해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 그것만이 깊어진 우리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약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