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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에 대한 단상

법정스님에 대한 단상

by 정운 스님 2019.02.19

법정스님은 종교를 떠나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 스님이 돌아가신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데도 불자들뿐만 아니라 한국 사람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친 작가이다. 필자는 스님을 고교시절부터 알았다. 나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아니었다. 학교 수업보다는 책 읽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시詩를 쓴다고 어지간히 끄적거렸다. 헤르만 헤세나 알베르 까뮈, 이문열 소설을 즐겨 읽었고, 알지도 못하는 철학책을 읽으면서 폼 잡다 보니 친구들로부터 철학자라는 별명을 듣기도 했다. 어린 나이에 사는 일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 필자의 솔직한 심정이다.
당시 2학년 담임 선생님이 기독교인이었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최근에 법정스님 책 <영혼의 모음>을 보고, 감명받았다.’는 말씀을 하셨다. 선생님 말씀을 기회로 법정스님을 알게 되어 당시 범우사 문고판으로 나온 <무소유>를 사서 읽었다. 이후 교무실로 찾아가 선생님께 <영혼의 모음>책을 빌려달라고 하였다. 몇 년 후 어떤 친구가 선생님께 제자 중에 한 학생이 출가했다고 하니, 선생님께서는 망설임도 없이 나를 지목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당시 책 내용은 기억나지 않고, 고교시절 법정스님의 책을 통해 불교적 사유를 넓혔고, 막연하게 출가에 대해 동경하였다. 이런 아련함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동시에 출가하게 된 동기가 되었다.
30여 년 전 스님 된지 얼마 안 된 친구 스님들과 겨울방학을 이용해 법정스님이 머물고 있던 송광사 불일암을 도반들과 찾아갔다. 승가대학[강원] 학생스님들 방학은 결제기간과 맞지 않는다. 우리가 불일암 도량에 들어서니, 폭설이 내려 도량은 멋진 설국이었고, 부엌에서는 장작불이 타고 있었다. 스님께서는 따뜻한 방안에서 몇몇 신도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밖에서 ‘스님!’하고 불렀더니, 스님께서 문을 벌컥 열면서 “승려가 공부 안하고, 결제기간에 돌아다니느냐?”고 꾸중하셨다. ‘학인들’이라고 했더니, 방에 들어오라고 하셨다.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는데, 스님 방에 관음보살과 성모 마리아 사진이 나란히 걸려있었다. 당시 젊은 내게 있어서는 매우 놀라웠고 잊히지 않는 모습이었다. 법정스님은 2000년 성북동 길상사 도량에 관음상을 모실 때도 천주교 신자 조각가에게 부탁하였다. 이 관음상은 성모마리아의 이미지를 닮았다. 또한 스님은 생전에 신부님이나 수녀님과 스스럼없이 친구가 되었고, 수녀님들에게는 명상하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했으며, 천주교 성당에 가서 진리를 설하기도 하였다. 대학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종교적인 편견을 갖지 말것.’을 강조하며 법정스님 이야기를 해주곤 한다.
필자의 지인 중 어떤 작가는 ‘스님들이 쓰는 글은 문서포교로 중요한 불사佛事’라고 하면서 법정스님 글을 예로 들곤 했다. 이 작가는 살면서 고통스럽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법정스님 책을 읽는다고 하였다. 나는 20년 가까이 글을 쓰면서 늘 법정스님을 염두에 두었다. 스님께서는 평소에 너무 어렵게 쓰는 글이나 중생들이 알지 못하는 경전은 팔만대장경이라도 빨래판에 불과하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는 분이었다. 필자도 이 점에 공감한다. 그래서 이 어른이 돌아가셨을 때는 가슴이 휑하여 한참이나 마음을 앓았다. 언제쯤이면 그 어른 같은 멋진 글쟁이가 될까? 오늘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