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가고파

가고파

by 김민정 박사 2019.01.28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오 그 잔잔한 고향 바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

어린 제 같이 놀던 그 동무들 그리워라.
어디 간들 잊으리오 그 뛰놀던 고향 동무
오늘은 다 무얼 하는고 보고파라 보고파.

그 물새 그 동무들 고향에 다 있는데
나는 왜 어이타가 떠나 살게 되었는고
온갖 것 다 뿌리치고 돌아갈까 돌아가.

가서 한데 얼려 옛날같이 살고지라
내 마음 색동옷 입혀 웃고웃고 지내고저
그 날 그 눈물 없던 때를 찾아가자 찾아가.
- 이은상, 「가고파」 일부

작년 가을 마산에서 거행된 노산시조문학상 수상식에 다녀왔다. 제3회 수상작품은 김연동 시조시인의 「노옹의 나라- 우포」였다. 행사장인 창신고등학교에 가기 위해 KTX를 탔고 마산역에 내리니 비 내리는 역광장에 사진으로만 보았던 이은상의 시조비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반가움에 얼른 그 앞에 다가가 사진부터 한 장 찍었다.
이 시조는 1932년 1월 8일 동아일보에 실린 작품이다. 이은상의 대표작 ‘가고파’는 김동진 작곡의 노랫말로 더 널리 알려졌다. ‘내 마음 가 있는 그 벗에게’라는 부제가 붙은 이 ‘가고파’ 작품은 쉽게 쓰였고 쉽게 읽히는 시조다.
이 시조의 주제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통한 고향에 대한 향수다. ‘내 고향 남쪽 바다’는 이은상의 고향인 마산을 뜻한다. 10수로 된 이 시조는 처음에 4수만 작곡돼 4수의 시조로 알고 있는 독자도 많다.
1926년 최남선의 ‘조선 국민문학으로서의 시조’라는 글이 ‘조선 문단 16호’에 발표됨으로써 시조부흥론이 일기 시작했다. 이은상은 1923년 ‘고향생각’이란 첫 시조를 발표했고, 시조부흥운동에 참여한 뒤로 시조의 현대화에 힘썼으며, 1930년대부터 양장 시조라는 것을 시도했다. 시조처럼 짧은 형식의 문학에서 3장은 너무 낭비라 생각해 중장을 생략하는 형식을 시도했다. 그는 현대시조를 서민의 삶에 밀착시키고 민족문학으로 발전시킴으로써 한국시조문학사와 맥을 함께하는 의의를 갖고 있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가고파’ 외에 ‘봄처녀’ ‘성불사의 밤’ ‘옛 동산에 올라’ ‘동무생각’ ‘금강에 살으리랏다’ 등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가곡으로 불렸다. 그 외 유명작품으로는 ‘고지가 바로 저긴데’ ‘천지송’ 등이 있다.
이은상(1903~1982)의 필명은 남천(南川), 호는 노산(蘆山)이다. 1918년 아버지가 세운 마산 창신학교 고등과를 졸업하고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다니다 그만뒀다. 창신학교 교원으로 근무하다, 일본에 건너가 1925년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사학과 공부, 일본에 잠시 머물며 ‘신생’의 편집 일을 도왔다. 귀국 후 1931~32년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를 지낸 뒤 ‘동아일보’ ‘조선일보’에서 근무했다.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에 연루돼 구금, 이듬해 풀려났으며, 1945년 사상범 예비 검속으로 광양경찰서에 갇혀 있다가 8·15 광복이 돼 풀려났다. 1950년 이후 청구대학·서울대학교 교수, 1954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충무공이순신장군 기념사업회장, 안중근의사숭모회장, 시조작가협회장, 한글학회 이사, 독립운동사 편찬위원장, 숙명여대재단이사장 등을 역임했고, 경희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