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하진 마세요
미안해하진 마세요
by 한희철 목사 2019.01.23
지난주 며칠 동안 필리핀의 딸락지역을 다녀왔습니다. 클라크 공항에서 40여 분 떨어진 지역입니다. 몇 년 전 정릉감리교회가 창립 60주년을 맞아 예배당 하나를 세운 아스투리아스가 포함된 지역으로, 장로님 내외분은 그 지역에 시니어 학생들(11~12학년)을 위해 학교건물을 봉헌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일을 계기로 의료봉사가 시작이 되어 해마다 찾았는데, 뭔가 동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비중 있게 해 온 일, 이유가 무엇인지를 이야기만 듣고 판단을 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싶어 의료팀과 동행을 했습니다.
치과 내과 외과 등으로 구성된 의료선교는 모두 3곳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허름하고 작긴 해도 동네에 있는 예배당에서 진료가 이루어졌는데, 깜짝 놀랐던 것은 그곳을 찾는 수많은 아이들이었습니다.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표현이 조심스럽지만 ‘깨알 쏟아지듯’이 몰려왔습니다. 허술한 집들이 모인 작은 동네에 저 많은 아이들이 어디에 있었을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헝클어진 머리와 허름한 옷, 새까만 발, 어린아이임에도 까맣게 변한 치아, 믿기 어려울 만큼의 어린 나이에 자식들을 안고 있는 엄마 등,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마주할 수 없는 모습들이었습니다. 특히 치과 진료가 쉴 틈이 없었는데, 끊임없이 썩은 이를 뽑아냈습니다. 나중에 물어보니 첫날 뽑은 치아만 46개라고 했습니다.
길지 않은 일정이었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일들이 이어졌습니다. 일정 중에서도 유독 마음에 남는 장면이 있습니다. 창가에 매달린 아이들입니다. 창가에 매달려 예배당 안에서 이루어지는 진료를 바라보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들어와서 진찰이나 치료를 받으면 치약이나 칫솔, 음료나 과자 등을 선물로 받을 수 있음에도 그들은 창문을 통해서만 안을 들여다볼 뿐이었고, 행여나 눈이 마주치면 얼른 숨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왜 선뜻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을까? 혹은 않았을까? 단순한 부끄러움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경계심이나 두려움일지도 모를 일이고, 어쩌면 자존심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창가에 매달린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거리감이 숙제처럼 마음에 남았습니다.
몇 가지 치료를 받고 약과 함께 몇 가지 선물을 받고 돌아섰던 아이들이든, 창가에 매달려 안을 들여다 볼 뿐 끝내 안으로 들어오지 않은 아이들이든, 내내 마음을 떠나지 않았던 생각은 내 어릴 적 모습도 저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들의 모습 속엔 우리들이 지나온 유년의 시간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하루 진료를 마치며 모인 사람들을 위해 인사말을 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이렇게 인사를 했습니다. “우리들의 수고를 고마워한다면 모를까, 미안해하진 마세요. 오래전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났을 때, 필리핀에서 찾아와 도와준 적이 있답니다. 여러분들도 나중에 누군가를 도와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말했던 것은 우리가 만난 아이들의 모습 속에 우리들의 옛 모습이 담겨 있다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일을 계기로 의료봉사가 시작이 되어 해마다 찾았는데, 뭔가 동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비중 있게 해 온 일, 이유가 무엇인지를 이야기만 듣고 판단을 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싶어 의료팀과 동행을 했습니다.
치과 내과 외과 등으로 구성된 의료선교는 모두 3곳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허름하고 작긴 해도 동네에 있는 예배당에서 진료가 이루어졌는데, 깜짝 놀랐던 것은 그곳을 찾는 수많은 아이들이었습니다.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표현이 조심스럽지만 ‘깨알 쏟아지듯’이 몰려왔습니다. 허술한 집들이 모인 작은 동네에 저 많은 아이들이 어디에 있었을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헝클어진 머리와 허름한 옷, 새까만 발, 어린아이임에도 까맣게 변한 치아, 믿기 어려울 만큼의 어린 나이에 자식들을 안고 있는 엄마 등,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마주할 수 없는 모습들이었습니다. 특히 치과 진료가 쉴 틈이 없었는데, 끊임없이 썩은 이를 뽑아냈습니다. 나중에 물어보니 첫날 뽑은 치아만 46개라고 했습니다.
길지 않은 일정이었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일들이 이어졌습니다. 일정 중에서도 유독 마음에 남는 장면이 있습니다. 창가에 매달린 아이들입니다. 창가에 매달려 예배당 안에서 이루어지는 진료를 바라보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들어와서 진찰이나 치료를 받으면 치약이나 칫솔, 음료나 과자 등을 선물로 받을 수 있음에도 그들은 창문을 통해서만 안을 들여다볼 뿐이었고, 행여나 눈이 마주치면 얼른 숨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왜 선뜻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을까? 혹은 않았을까? 단순한 부끄러움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경계심이나 두려움일지도 모를 일이고, 어쩌면 자존심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창가에 매달린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거리감이 숙제처럼 마음에 남았습니다.
몇 가지 치료를 받고 약과 함께 몇 가지 선물을 받고 돌아섰던 아이들이든, 창가에 매달려 안을 들여다 볼 뿐 끝내 안으로 들어오지 않은 아이들이든, 내내 마음을 떠나지 않았던 생각은 내 어릴 적 모습도 저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들의 모습 속엔 우리들이 지나온 유년의 시간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하루 진료를 마치며 모인 사람들을 위해 인사말을 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이렇게 인사를 했습니다. “우리들의 수고를 고마워한다면 모를까, 미안해하진 마세요. 오래전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났을 때, 필리핀에서 찾아와 도와준 적이 있답니다. 여러분들도 나중에 누군가를 도와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말했던 것은 우리가 만난 아이들의 모습 속에 우리들의 옛 모습이 담겨 있다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