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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도 계약 시대의 효

효도 계약 시대의 효

by 이규섭 시인 2018.11.30

전세계약서를 써보긴 했어도 근로계약서를 쓰고 근무한 기억은 없다. 갑과 을이 따지지도 묻지도 않고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근로관계가 이뤄졌다. 계약은 사람이나 조직체 사이에 서로 지켜야 할 의무를 작성하는 문서로 불신이 저변에 깔렸다. 법적 다툼이 생길 때를 대비한 보편화된 사회 규범이다.
부모와 자식이 서로 갑과 을이 돼 증여하고 그 대가로 효도를 약정하는 ‘효도 계약’ 시대가 됐다. 불신이 판치는 세상이다 보니 부모 자식 간에도 지켜야 할 약속을 법으로 정하게 됐으니 딱한 노릇이다. 윤리 규범인 효가 법과 계약이라는 현실 영역이 되어 씁쓸하다.
‘효도 계약’은 3년 전 대법원 판결이 계기가 됐다. 부모를 모신다는 조건으로 부동산을 물려받고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아들에게 재산을 돌려주라는 판결이 나왔다. 민법은 ‘증여한 재산은 반환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효도 계약이 증여 계약을 대체할 수 있는 ‘부담부증여(負擔附贈與)라고 유권해석을 내렸다. 재산을 물려받은 자식이 부모 부양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되돌려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부모와 자식이 부양 문제로 갈등하며 소송을 벌이는 사례는 10년 전 150여 건에서 지난해 255건으로 늘었다고 한다. 대부분 부모가 자식에게 재산을 증여했는데 모른 체 하거나 부양 의무를 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법적 대응을 하지 못하고 가슴앓이만 하는 부모도 부지기수일 것이다. 이런 다툼을 막으려고 ‘효도 계약’이 늘어나는 추세다.
효도 계약을 쓰려면 자녀의 방문 횟수, 부양비, 치료비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계약 내용을 지키지 않으면 재산을 반환한다는 내용은 꼭 넣으라는 게 법조인의 조언이다. 막연하게 쓰면 이행 여부를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려줄 재산이 없는 노인빈곤층은 효도 계약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으니 빈부격차의 상처만 깊어진다.
우리 민족 정신문화의 근간인 효가 사라지는 근본 원인은 가족공동체의 붕괴와 개인주의 영향이 크다. 노동집약적 가족 중심의 공동체는 20세기 후반까지 이어졌다. 어렸을 적 고향에서는 3대가 한 집에 사는 것은 예사였다. 가정엔 위계질서가 뚜렷했고 부모 공경은 기본이었다. 밥상머리에서도 어른이 수저를 먼저 들어야 따라 들었다. 부모 말을 거역하면 불효자 취급했다. 자식들은 입하나 줄이려 도시로 나가 산업현장에서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가족을 먼저 생각하고 희생하며 참았다.
자녀의 일방적 희생을 전제로 한 효 문화는 낡은 개념이 됐다. 삶의 방식도 자기중심적으로 변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물질적 정신적 유산을 갚기에는 벅차다. 앞가림하기도 힘들다. 부모의 노후보다 자신의 앞날이 더 걱정이다. 이기적이라고 나무랄 수 없는 노릇이다. 팍팍한 살림살이는 부모에게 용돈 드릴 여력이 없다. 어버이날 선물 보다 어린이날 장난감 챙기는 게 우선순위가 됐다. 시대가 변했으니 효 문화가 변하는 건 당연하다. 효도의 근본은 부모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는 것이다. 걱정 끼치지 않는 것만도 효도다. 부모를 찾아뵙기 어려우면 안부 전화라도 자주 하는 게 효도의 첩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