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 겪을수록 흔들리지 않는다
역경 겪을수록 흔들리지 않는다
by 이규섭 시인 2018.10.26
단풍을 만나러 남한산성에 올랐다. 단풍 구경이라도 해야 가을과의 짧은 만남이 아쉽지 않을 테니까. 수도권서 접근성이 쉽고 성안까지 노선버스가 운행된다. 지난 일요일 느긋하게 길을 나섰으나 만만찮게 밀린다. 산성종로로터리 주차장까지 거북이걸음이다. 옛날 시간을 알려주던 종각이 있어 종로로 불린다. 종로를 중심으로 산성에 오르는 길은 사방으로 열려있다. 둘레 길 5개 코스 가운데 제2 코스를 택했다. 행궁을 지나 수어장대로 올라 서문을 둘러보고 내려오는 가장 짧은 코스다. 산성종로 ‘침쾌정’ 부근 은행나무 잎은 샛노랗게 물들어 해맑게 웃는다. 작은 바람결에도 하르르 떨어져 부드러운 융단을 짠다.
남한산성 행궁은 유사시 한양도성의 궁궐을 대신할 피난처로 1626년(인조 4년)에 지었다. 그로부터 10년 뒤 병자호란 때(1636년) 인조는 이곳으로 피란 와 한 달 반을 버티다가 삼전도로 나아가 굴욕의 항복을 할 줄 예견이나 했을까? 왕의 침실이 있던 내행전과 정무를 보던 외행전, 종묘와 사직까지 갖췄다. 풍수지리에 문외한이지만 사방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천혜의 요새처럼 보인다.
일제강점기 때 남한산성에 의병이 모여들고 항일운동의 중심지로 떠오르자 일제는 행궁을 폭파해 없앴다. 지난 2000년 행궁 복원사업을 시작하여 2012년 마무리한 뒤 일반에 개방했다. 남한산성은 201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유서 깊은 유적이다.
행궁을 둘러보고 나와 솔숲 울창한 산길로 접어든다. 오른쪽 오솔길 옆 영월정(迎月亭)은 달맞이 명소다. 가파른 길이 아닌데도 호흡이 가빠진다. 나무 계단을 깡충깡충 뛰어내려오는 여자아이가 앙증맞다. “몇 살이야?” 물으니 “여섯 살이요”한다. 어린이도 오르내리는 무던한 길이다. 직장생활 땐 산악 동아리를 이끌며 다람쥐 소리도 들었는데, 이제는 늙은 달팽이처럼 등에 진 세월이 무겁다.
성곽 길에 접어들어 조금 더 가면 남한산성의 주봉 청량산(498m) 정상에 세운 ‘수어장대(守禦將臺)’다. 장수의 지휘소답게 위풍당당하다. 인조 때 지은 다섯 개의 장대 가운데 유일하게 남았다. 원래 단층이었으나 1751년(영조 27) 수어사 이기진이 2층으로 누각을 올렸다. ‘서장대’ 편액을 ‘수어장대’로 바꾸고 내부 편액은 무망루(無忘樓)라 이름 지었다. 병자호란의 치욕을 잊지 말자는 의미가 담겼다.
수어장대 담장 옆 노거수 단풍은 황금 색깔이다. 가을빛이 내려앉아 눈부시다. 산성 자락을 끼고 울긋불긋 펼친 단풍의 파노라마는 절창이다. 오색 색깔을 흩뿌려 놓은 단풍 물결에 가을 향기가 일렁인다.
올여름은 지구를 태양의 오븐에 올려놓은 듯 뜨거웠다. ‘아 저 악몽의 여름. 내 작업실은 오피스텔 맨 꼭대기 층인데 천장이 펄펄 끓어서 방안은 생선 굽는 오븐처럼 뜨거웠다. 에어컨은 켜 놓으면 골이 띵해지면서 뼈마디가 쑤셨고, 꺼놓으면 생선구이가 될 판이었다.’ ‘남한산성’의 김훈 작가가 최근 한 신문에 기고한 찜통더위는 처연하다. 모진 혹서를 견디고 초록이 지쳐 물든 단풍은 곱고 의연하다. 역경을 겪은 삶일수록 단단해져 흔들림 없듯이.
남한산성 행궁은 유사시 한양도성의 궁궐을 대신할 피난처로 1626년(인조 4년)에 지었다. 그로부터 10년 뒤 병자호란 때(1636년) 인조는 이곳으로 피란 와 한 달 반을 버티다가 삼전도로 나아가 굴욕의 항복을 할 줄 예견이나 했을까? 왕의 침실이 있던 내행전과 정무를 보던 외행전, 종묘와 사직까지 갖췄다. 풍수지리에 문외한이지만 사방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천혜의 요새처럼 보인다.
일제강점기 때 남한산성에 의병이 모여들고 항일운동의 중심지로 떠오르자 일제는 행궁을 폭파해 없앴다. 지난 2000년 행궁 복원사업을 시작하여 2012년 마무리한 뒤 일반에 개방했다. 남한산성은 201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유서 깊은 유적이다.
행궁을 둘러보고 나와 솔숲 울창한 산길로 접어든다. 오른쪽 오솔길 옆 영월정(迎月亭)은 달맞이 명소다. 가파른 길이 아닌데도 호흡이 가빠진다. 나무 계단을 깡충깡충 뛰어내려오는 여자아이가 앙증맞다. “몇 살이야?” 물으니 “여섯 살이요”한다. 어린이도 오르내리는 무던한 길이다. 직장생활 땐 산악 동아리를 이끌며 다람쥐 소리도 들었는데, 이제는 늙은 달팽이처럼 등에 진 세월이 무겁다.
성곽 길에 접어들어 조금 더 가면 남한산성의 주봉 청량산(498m) 정상에 세운 ‘수어장대(守禦將臺)’다. 장수의 지휘소답게 위풍당당하다. 인조 때 지은 다섯 개의 장대 가운데 유일하게 남았다. 원래 단층이었으나 1751년(영조 27) 수어사 이기진이 2층으로 누각을 올렸다. ‘서장대’ 편액을 ‘수어장대’로 바꾸고 내부 편액은 무망루(無忘樓)라 이름 지었다. 병자호란의 치욕을 잊지 말자는 의미가 담겼다.
수어장대 담장 옆 노거수 단풍은 황금 색깔이다. 가을빛이 내려앉아 눈부시다. 산성 자락을 끼고 울긋불긋 펼친 단풍의 파노라마는 절창이다. 오색 색깔을 흩뿌려 놓은 단풍 물결에 가을 향기가 일렁인다.
올여름은 지구를 태양의 오븐에 올려놓은 듯 뜨거웠다. ‘아 저 악몽의 여름. 내 작업실은 오피스텔 맨 꼭대기 층인데 천장이 펄펄 끓어서 방안은 생선 굽는 오븐처럼 뜨거웠다. 에어컨은 켜 놓으면 골이 띵해지면서 뼈마디가 쑤셨고, 꺼놓으면 생선구이가 될 판이었다.’ ‘남한산성’의 김훈 작가가 최근 한 신문에 기고한 찜통더위는 처연하다. 모진 혹서를 견디고 초록이 지쳐 물든 단풍은 곱고 의연하다. 역경을 겪은 삶일수록 단단해져 흔들림 없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