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 동화 두 편
가을날 동화 두 편
by 권영상 작가 2018.10.18
“오늘 이모할머니댁에 좀 갔다 오너라.”
일요일, 아버지가 이란 이모할머니댁 심부름을 내게 시켰다. 우산을 놓고 오셨다는 거다.
나는 그 말에 고개를 가로저을 뻔했다. 집에서 이모할머니댁까지 가려면 버스를 타고, 다시 기차로 갈아타는 먼 길이다.
“네. 아버지.” 나는 마음을 바꾸었다. 다녀온 적이 있었고, 무엇보다 나는 여덟 살이다. 나이가 어리긴 하지만 아버지는 늘 내가 남자답고 용기 있게 자라기를 바란다.
일요일 기차 안은 한산하다. 나는 의자에 무릎을 꿇고 올라앉아 창밖 풍경을 싫도록 본다. 감자 한 통을 팔고 돌아오는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기차가 터널 속으로 들어가자 창문에 어리는 자신의 얼굴을 만나고, 터널을 빠져나왔을 때 눈앞에 펼쳐지는 바다와 섬과 바다새들을 실컷 바라본다.
그리고 이란역에 내린 후, 나는 오래전 기억을 떠올리며 이모할머니댁을 찾아간다. 거기서 아버지가 두고 온 우산과 이모할머니가 주신 풋마늘 다섯 근을 메고 혼자 집으로 돌아온다.
타이완의 소설가이자 영화감독인 우 니엔찐의 동화 ‘여덟 살, 혼자 떠나는 여행’이다.
나는 고개를 들고, 나무 벤치 등걸이에 허리를 쭉 편다.
나는 가끔 벚나무길을 따라 여기 이 어린이놀이터에 와 책을 읽곤 한다. 놀이터 한 귀퉁이에 조그마한 ‘이동문고’가 있다. 어린이 놀이터니까 주로 그림책이거나 동화들이다.
공부를 쉬는 일요일이라 아이들이 꽤 여럿 나와 논다. 그네를 타거나, 시소를 타거나, 엄마가 지켜보는 앞에서 세발자전거를 타거나 하면서. 저 아이들도 이다음에 ‘여덟 살 아이’가 되겠다. 그러면 저 아이 아빠들도 동화 속 아버지처럼 공부 잘하는 아이보다 용기 있는 자식으로 키우기 위해 먼 친척 집까지 가는 심부름을 시키고 싶겠다.
학교 뒷산에 성자가 살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근데 그 산으로 소풍을 간다는 말을 듣고 나는 너무나 설렌다. 혹시 그분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소풍 가는 날, 선생님보다 먼저 산으로 올라간 아이들은 성자가 사는 오두막집을 발견한다. 그러나 성자는 거기에 없다. 어쩌면 이 소란을 피해 잠깐 숲에 들어갔을 거라 생각한 나는 홀로 숲길을 찾아들지만 길을 잃는다. 길을 찾아 헤매느라 목말랐던 나는 샘물을 만나고, 엎드려 맑은 샘물을 들이마신다. 갑자기 몸 안이 파랗게 살아오르는 듯 행복해진다.
나는 산길을 내려오며 생각한다.
‘내가 지금 행복한 건 성자가 샘물을 타고 내 몸에 들어왔기 때문인지 몰라.’
그렇게 마음속 깊은 곳에 성자를 받아들인 나는 그때의 그 행복을 기억하며 어른이 된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좀 힘들어도 행복하다.
이해인 수녀님이 옮기신 틱 낫한 스님의 ‘마음속의 샘물’이라는 동화다.
놀이터 아이들을 지켜보는 엄마들도 동화 속의 ‘나’처럼 자식들이 동심을 간직하며 자라고, 어렸을 적에 만난 행복을 오래오래 키워가길 바라겠다.
일요일, 아버지가 이란 이모할머니댁 심부름을 내게 시켰다. 우산을 놓고 오셨다는 거다.
나는 그 말에 고개를 가로저을 뻔했다. 집에서 이모할머니댁까지 가려면 버스를 타고, 다시 기차로 갈아타는 먼 길이다.
“네. 아버지.” 나는 마음을 바꾸었다. 다녀온 적이 있었고, 무엇보다 나는 여덟 살이다. 나이가 어리긴 하지만 아버지는 늘 내가 남자답고 용기 있게 자라기를 바란다.
일요일 기차 안은 한산하다. 나는 의자에 무릎을 꿇고 올라앉아 창밖 풍경을 싫도록 본다. 감자 한 통을 팔고 돌아오는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기차가 터널 속으로 들어가자 창문에 어리는 자신의 얼굴을 만나고, 터널을 빠져나왔을 때 눈앞에 펼쳐지는 바다와 섬과 바다새들을 실컷 바라본다.
그리고 이란역에 내린 후, 나는 오래전 기억을 떠올리며 이모할머니댁을 찾아간다. 거기서 아버지가 두고 온 우산과 이모할머니가 주신 풋마늘 다섯 근을 메고 혼자 집으로 돌아온다.
타이완의 소설가이자 영화감독인 우 니엔찐의 동화 ‘여덟 살, 혼자 떠나는 여행’이다.
나는 고개를 들고, 나무 벤치 등걸이에 허리를 쭉 편다.
나는 가끔 벚나무길을 따라 여기 이 어린이놀이터에 와 책을 읽곤 한다. 놀이터 한 귀퉁이에 조그마한 ‘이동문고’가 있다. 어린이 놀이터니까 주로 그림책이거나 동화들이다.
공부를 쉬는 일요일이라 아이들이 꽤 여럿 나와 논다. 그네를 타거나, 시소를 타거나, 엄마가 지켜보는 앞에서 세발자전거를 타거나 하면서. 저 아이들도 이다음에 ‘여덟 살 아이’가 되겠다. 그러면 저 아이 아빠들도 동화 속 아버지처럼 공부 잘하는 아이보다 용기 있는 자식으로 키우기 위해 먼 친척 집까지 가는 심부름을 시키고 싶겠다.
학교 뒷산에 성자가 살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근데 그 산으로 소풍을 간다는 말을 듣고 나는 너무나 설렌다. 혹시 그분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소풍 가는 날, 선생님보다 먼저 산으로 올라간 아이들은 성자가 사는 오두막집을 발견한다. 그러나 성자는 거기에 없다. 어쩌면 이 소란을 피해 잠깐 숲에 들어갔을 거라 생각한 나는 홀로 숲길을 찾아들지만 길을 잃는다. 길을 찾아 헤매느라 목말랐던 나는 샘물을 만나고, 엎드려 맑은 샘물을 들이마신다. 갑자기 몸 안이 파랗게 살아오르는 듯 행복해진다.
나는 산길을 내려오며 생각한다.
‘내가 지금 행복한 건 성자가 샘물을 타고 내 몸에 들어왔기 때문인지 몰라.’
그렇게 마음속 깊은 곳에 성자를 받아들인 나는 그때의 그 행복을 기억하며 어른이 된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좀 힘들어도 행복하다.
이해인 수녀님이 옮기신 틱 낫한 스님의 ‘마음속의 샘물’이라는 동화다.
놀이터 아이들을 지켜보는 엄마들도 동화 속의 ‘나’처럼 자식들이 동심을 간직하며 자라고, 어렸을 적에 만난 행복을 오래오래 키워가길 바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