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양조장 이야기
가을, 양조장 이야기
by 김재은 행복플랫폼 대표 2018.10.16
18세의 어여쁜 추알(공리 분)은 가난한 죄로 나귀 한 마리와 맞바뀌어 50이 넘도록 독신으로 있는 양조장 주인인 리 서방에게 팔려간다. 붉은 수수밭을 지나는 흔들거리는 가마 문틈으로 보이는 추알의 가죽신에 가마를 맨 유이찬아오는 눈을 뗄 줄 모른다. (이하 중략)
남편이 살해되는 바람에 과부가 된 추알이 혼자 힘으로 양조장을 재건한다. 친정에 가는 날 수수밭에서 그녀를 범한 유이찬아오는 그녀와 동침한 사실을 사람들에게 떠벌려 그녀를 괴롭히고 새로 빚은 고량주에 오줌을 누는 등 말썽을 피운다. 그런데 유이찬아오가 오줌을 눈 고량주는 어느 해보다 맛있는 고량주가 되어 18리 고량주라는 이름으로 인기를 얻게 된다.
이 가을에 문득 떠오르는 영화 ‘붉은 수수밭’ 이야기의 일부이다.
보편적인 인간 조건에 대한 신랄하고 설득력 있는 독창적인 묘사와 파악을 통해 지난 100년간 중국 역사의 잔혹성, 야만성과 부조리를 생생하고 깊이 있게 폭로하여 201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중국 작가 모옌의 ‘붉은 수수밭’을 장이머우 감독이 영화화 한 것이다.
뜬금없이 ‘붉은 수수밭’을 꺼내든 것은 술 이야기, 양조장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이다.
어릴 적 술에 대한 추억이 떠올려본다.
어른들 심부름으로 주막에서 술을 사 오다가 호기심에 조금씩 마시다가 취해버린 아이들, 힘이 셀 것 같은 커다란 화물 자전거에 술통을 여러 개 싣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주막 등에 술을 배달하던 그 아저씨 생각도 난다.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술도가에서 얻어온 술 찌기미를 먹고 취기에 얼굴이 빨개진 어린애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우리네 서글픈 풍경이었다.
하지만 시골 양조장은 대부분 사라지고 이야기가 있고 규모가 있는 몇 몇만 살아남았다.
1990년대 초 필자가 결혼을 하고 만난 양조장이 하나 있다. 양산 통도사 입구에 있는 ‘통도양조장’이다. 양조장 집이면 부자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저 먹고 살아가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정도였다. 주인인 장인어른은 1977년에 그 양조장을 인수하여 40년 넘게 장소를 옮겨가며 운영해왔다. 큰 글씨로 커다란 달력 뒷면에 월 매출과 사업 현황을 적어 관리하던 기억도 떠오른다.
그런데 수십년을 이어온 그 양조장이 세상의 변화를 못 이겨 문을 닫으려 하고 있다.
지난 추석 명절 때 이제 94세가 된 장인은 어쩔 수 없이 이젠 문을 닫아야 할 것 같다며 회한을 토로했다. 그래도 든든한 삶의 버팀목 역할을 해 온 고마운 곳이었는데 참 아쉽고 안타깝다. 이 또한 자연스러운 현상인지도 모르겠지만.
봄에 싹이 트고 땡볕 여름의 녹음을 지나서 오색의 가을 잎들을 거쳐 끝내 사라지는 자연의 변화를 보며 우리네 삶도 어찌 그 변화를 피해갈 수 있을까를 생각해본다.
그러니 가을은 상념의 계절이 맞는 것 같다. 소식이 끊긴 그리운 사람이 떠오르고, 문득 손편지를 적어 노란 은행나무가 있는 우체국의 빨간 우체통에 넣고 싶다.
그 우체국 옆에 양조장이 딸린 카페의 모습이 떠올리며.
아름다운 통도사 마을에 그런 곳이 있다면 이 눈부신 가을날 많은 이들이 찾지 않을까.
언젠가 당신도 그곳에서 만나길 기대하며….
남편이 살해되는 바람에 과부가 된 추알이 혼자 힘으로 양조장을 재건한다. 친정에 가는 날 수수밭에서 그녀를 범한 유이찬아오는 그녀와 동침한 사실을 사람들에게 떠벌려 그녀를 괴롭히고 새로 빚은 고량주에 오줌을 누는 등 말썽을 피운다. 그런데 유이찬아오가 오줌을 눈 고량주는 어느 해보다 맛있는 고량주가 되어 18리 고량주라는 이름으로 인기를 얻게 된다.
이 가을에 문득 떠오르는 영화 ‘붉은 수수밭’ 이야기의 일부이다.
보편적인 인간 조건에 대한 신랄하고 설득력 있는 독창적인 묘사와 파악을 통해 지난 100년간 중국 역사의 잔혹성, 야만성과 부조리를 생생하고 깊이 있게 폭로하여 201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중국 작가 모옌의 ‘붉은 수수밭’을 장이머우 감독이 영화화 한 것이다.
뜬금없이 ‘붉은 수수밭’을 꺼내든 것은 술 이야기, 양조장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이다.
어릴 적 술에 대한 추억이 떠올려본다.
어른들 심부름으로 주막에서 술을 사 오다가 호기심에 조금씩 마시다가 취해버린 아이들, 힘이 셀 것 같은 커다란 화물 자전거에 술통을 여러 개 싣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주막 등에 술을 배달하던 그 아저씨 생각도 난다.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술도가에서 얻어온 술 찌기미를 먹고 취기에 얼굴이 빨개진 어린애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우리네 서글픈 풍경이었다.
하지만 시골 양조장은 대부분 사라지고 이야기가 있고 규모가 있는 몇 몇만 살아남았다.
1990년대 초 필자가 결혼을 하고 만난 양조장이 하나 있다. 양산 통도사 입구에 있는 ‘통도양조장’이다. 양조장 집이면 부자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저 먹고 살아가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정도였다. 주인인 장인어른은 1977년에 그 양조장을 인수하여 40년 넘게 장소를 옮겨가며 운영해왔다. 큰 글씨로 커다란 달력 뒷면에 월 매출과 사업 현황을 적어 관리하던 기억도 떠오른다.
그런데 수십년을 이어온 그 양조장이 세상의 변화를 못 이겨 문을 닫으려 하고 있다.
지난 추석 명절 때 이제 94세가 된 장인은 어쩔 수 없이 이젠 문을 닫아야 할 것 같다며 회한을 토로했다. 그래도 든든한 삶의 버팀목 역할을 해 온 고마운 곳이었는데 참 아쉽고 안타깝다. 이 또한 자연스러운 현상인지도 모르겠지만.
봄에 싹이 트고 땡볕 여름의 녹음을 지나서 오색의 가을 잎들을 거쳐 끝내 사라지는 자연의 변화를 보며 우리네 삶도 어찌 그 변화를 피해갈 수 있을까를 생각해본다.
그러니 가을은 상념의 계절이 맞는 것 같다. 소식이 끊긴 그리운 사람이 떠오르고, 문득 손편지를 적어 노란 은행나무가 있는 우체국의 빨간 우체통에 넣고 싶다.
그 우체국 옆에 양조장이 딸린 카페의 모습이 떠올리며.
아름다운 통도사 마을에 그런 곳이 있다면 이 눈부신 가을날 많은 이들이 찾지 않을까.
언젠가 당신도 그곳에서 만나길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