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세미꽃집 고추밭
수세미꽃집 고추밭
by 권영상 작가 2018.10.11
길 건너편에 수세미꽃집이 있다. 담장을 기는 수세미 덩굴이 그 댁 대문을 송두리째 뒤덮었다. 가끔 그 수세미꽃집 할머니가 수세미꽃 대문을 비긋이 열고 나와 죽은 듯이 고요한 고추밭에게 말한다.
“점심요!”
그러면 고추밭이 “알았어요!” 한다. 고추밭과 소통이 되는 걸 알면 할머니는 “얼른요!” 하고 돌아선다. 고추밭도 그런 사정을 알겠지. “예!” 한다. 그제서야 할머니는 수세미꽃 가득 핀 대문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고추밭은 크다. 한 800여 평은 되지 싶다. 할머니 아드님이 고추밭에 들어서서 약을 칠 때에 보면 모자만 조금 보일락 말락. 고추들 키가 크다. 건너편 산에서 꿩이 꿩꿔거겅! 박장대소로 웃어젖힐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우리들은 간이 떨어져 콩알만 해지는 걸 느낀다. 산자락 아래 놓여있는 수세미꽃집 고추밭도 그렇다. 그 웃음소리에 놀라 껑충 날아올랐다가 털썩 주저앉는다. 그 바람에 고추밭이 정신을 깜물 놓쳤는지 뜬금없이 노래를 불러댄다.
‘야, 야, 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에 나이가 있나요. 마음은 하나요, 느낌도 하나요.’
하던 일을 놓고 고추밭을 건너다본다. 접촉 불량 오디오에 전원이 들어온 것처럼 마구마구 노래를 부른다. 들썩들썩 춤을 춘다. 더운 여름 한낮이 불끈거리며 일어서려 한다. 칸나가 꽃대를 세운다. 배추 모종을 하던 사람들 엉덩이가 들썩들썩 한다.
익은 고추 따는 9월쯤인가. 어느 더운 날 파라솔 한 대가 고추밭 이랑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대천 금천 해수욕장에 보란 듯 태양을 가리고 서 있던 그 파라솔이다. 사람 없는 고추밭에서 저 혼자 이쪽 밭머리에서 저쪽 밭머리로 파라솔이 이동하고 있을 때다.
“여보세요 여기 짜 두 개하고, 오시다가 막 하나 사다 주세요.”
고추밭이 어디다 전화를 건다. 짜 하나하고 막 하나를 부탁한다. 파라솔이 고추밭 머리쯤에서 멈출 때다. 짜 두 개가 달려온 모양이다. 고추밭이 탈탈탈 한다. 이윽고 향기로운 짜 냄새가 솔솔 풍겨온다. 그 짜가 다시 수세미꽃집 대문 안으로 달려 들어간다. 나올 때 보니 어깨와 머리 사이에 수세미 한 통을 끼고 있다. 짜에 달린 이동식 오디오가 ‘야, 야, 야, 내 나이가 어때서’를 열창하며 시골길 먼지를 풍기며 급히 사라진다.
근데 요 며칠 전이다.
오랜만에 수세미꽃집 할머니가 고추밭을 향해 ‘점심요!’ 했다. 뜻밖에도 낯선 할아버지 한 분이 고추밭에서 나왔다. 그 댁 아드님이 큰 병을 얻어 입원 중이라 했다.
오늘 안성에 내려와 보니 그 좋던 고추밭 고추가 다 시들었다. 푸른 빛 하나 없이 온통 누렇다. 아드님 손길을 못 받다 보니 고추밭도 살맛을 잃은 모양이다. 내 나이가 어떠냐며 노래하던 고추밭이 참 안 됐다. 수세미꽃집 수세미 꽃은 가을이 갈 때까지 피고 지고 피고 지고할 태세다. 그런데 고추밭 고추는 이미 끝났다.
수세미집 아드님이 얼른 퇴원하여 내년에도 씩씩한 고추밭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어느 추운 날 고깃국을 끓여 고추밭에 날라드리던 나의 기억이 생생하다.
“점심요!”
그러면 고추밭이 “알았어요!” 한다. 고추밭과 소통이 되는 걸 알면 할머니는 “얼른요!” 하고 돌아선다. 고추밭도 그런 사정을 알겠지. “예!” 한다. 그제서야 할머니는 수세미꽃 가득 핀 대문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고추밭은 크다. 한 800여 평은 되지 싶다. 할머니 아드님이 고추밭에 들어서서 약을 칠 때에 보면 모자만 조금 보일락 말락. 고추들 키가 크다. 건너편 산에서 꿩이 꿩꿔거겅! 박장대소로 웃어젖힐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우리들은 간이 떨어져 콩알만 해지는 걸 느낀다. 산자락 아래 놓여있는 수세미꽃집 고추밭도 그렇다. 그 웃음소리에 놀라 껑충 날아올랐다가 털썩 주저앉는다. 그 바람에 고추밭이 정신을 깜물 놓쳤는지 뜬금없이 노래를 불러댄다.
‘야, 야, 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에 나이가 있나요. 마음은 하나요, 느낌도 하나요.’
하던 일을 놓고 고추밭을 건너다본다. 접촉 불량 오디오에 전원이 들어온 것처럼 마구마구 노래를 부른다. 들썩들썩 춤을 춘다. 더운 여름 한낮이 불끈거리며 일어서려 한다. 칸나가 꽃대를 세운다. 배추 모종을 하던 사람들 엉덩이가 들썩들썩 한다.
익은 고추 따는 9월쯤인가. 어느 더운 날 파라솔 한 대가 고추밭 이랑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대천 금천 해수욕장에 보란 듯 태양을 가리고 서 있던 그 파라솔이다. 사람 없는 고추밭에서 저 혼자 이쪽 밭머리에서 저쪽 밭머리로 파라솔이 이동하고 있을 때다.
“여보세요 여기 짜 두 개하고, 오시다가 막 하나 사다 주세요.”
고추밭이 어디다 전화를 건다. 짜 하나하고 막 하나를 부탁한다. 파라솔이 고추밭 머리쯤에서 멈출 때다. 짜 두 개가 달려온 모양이다. 고추밭이 탈탈탈 한다. 이윽고 향기로운 짜 냄새가 솔솔 풍겨온다. 그 짜가 다시 수세미꽃집 대문 안으로 달려 들어간다. 나올 때 보니 어깨와 머리 사이에 수세미 한 통을 끼고 있다. 짜에 달린 이동식 오디오가 ‘야, 야, 야, 내 나이가 어때서’를 열창하며 시골길 먼지를 풍기며 급히 사라진다.
근데 요 며칠 전이다.
오랜만에 수세미꽃집 할머니가 고추밭을 향해 ‘점심요!’ 했다. 뜻밖에도 낯선 할아버지 한 분이 고추밭에서 나왔다. 그 댁 아드님이 큰 병을 얻어 입원 중이라 했다.
오늘 안성에 내려와 보니 그 좋던 고추밭 고추가 다 시들었다. 푸른 빛 하나 없이 온통 누렇다. 아드님 손길을 못 받다 보니 고추밭도 살맛을 잃은 모양이다. 내 나이가 어떠냐며 노래하던 고추밭이 참 안 됐다. 수세미꽃집 수세미 꽃은 가을이 갈 때까지 피고 지고 피고 지고할 태세다. 그런데 고추밭 고추는 이미 끝났다.
수세미집 아드님이 얼른 퇴원하여 내년에도 씩씩한 고추밭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어느 추운 날 고깃국을 끓여 고추밭에 날라드리던 나의 기억이 생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