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의 삶, 그늘의 마음
그림자의 삶, 그늘의 마음
by 김재은 행복플랫폼 대표 2018.09.28
얼마 전 산을 사랑하는 지인들과 경주 남산에 다녀온 적이 있다.
가는 도중 서로 소개 인사를 하는 시간, 한 사람이 ‘이맘때쯤 노랗게 익어가는 들판’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같다고 했다.
문득 눈에 보이는 것보다 봄부터 여름을 거쳐 수확을 앞둔 이때까지 흘린 땀방울이 떠올렸다. 그렇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 중의 하나가 땀을 흘리며 일을 하고 땀의 결과를 마주하고 있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민족의 명절 한가위가 지났다. 조선 후기 학자이자 문신인 김매순의 「열양세시기(冽陽歲時記)」를 보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가윗날만 같아라’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 또한 덥지도 춥지도 않은 즈음, 결실의 풍요와 함께 하는 시간들에 대한 예찬이라 하겠다. 하지만 ‘참 좋은’ 추석 한가위가 모두에게 그러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 시인은 말했다.
늙은 건축가는 설계할 때 집의 그림자까지 그려 넣는다고.
기쁨과 행복을 생각하기 전에 슬픔과 불행을 다독이는 마음이란다.
빛과 그림자는 늘 명콤비처럼 함께 어울린다. 빛이 있기에 그림자가 있는 법이다.
아니 존재가 있기에 그림자가 있는 지도 모르겠다. 더 나아가 내가 지금 거기에 있기에 그림자가 있다. 아니 어쩌면 그림자가 본래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기쁨과 행복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 슬픔과 불행이 뒤엉켜 돌고 돌아가는 게 인생살이다. 빛과 그림자가 함께 하듯이.
그래서 인생은 희노애락의 비빔밥이라고 하지 않던가.
지난 한가위 명절, 온 가족이 함께 하는 자리에 어디 즐거운 일만 있었겠는가.
내가 우리가 함께 하다 보면 반가운 만남 속에 즐거운 일도 언짢고 속상한 일도 생겼을 것이다.
그런데 즐겁고 넉넉해야 할 명절이 서로 마음 상하고 갈등하는 시간이 된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서로의 입장이 되어 그 마음을 헤아리는 ‘역지사지’가 필요한 것이 바로 그때일 것이다. 내가 먼저 상대의 삶에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이해하는 작은 배려가 필요하다.
말 한마디, 내가 먼저 솔선수범하는 작은 행동이 누군가의 ‘아픔의 그림자’의 크기를 줄여 줄 것이다. 사람들은 사소한 것 하나에 울고 웃고 하는 것이기에.
늙은 건축가가 집의 그림자까지 그려 넣듯이 지혜로운 사람은 슬픈 일, 화나는 일이 일어날 수 있음도 헤아린다. 좋은 일이 생긴다 하여 교만하거나 우쭐대지 않으며 내가 기뻐할 때 상대는 힘들어하고 슬퍼할 수 있음도 생각한다.
앞의 시인은 그 마음을 ‘그늘의 마음’이라고 했다. 존재의 본의(本意)라고 했다.
그렇다. 그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것, 내 앞의 이익과 안위만에 매몰되지 않고 상대를 배려하며 더불어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 진정 인생의 참맛이 아닐까 싶다.
그것이 바로 한가위 명절이 우리에게 준 선물, 빛과 그림자가 나에게 주는 가르침이었을 것이다. 거기에 고통, 슬픔의 깊이가 크다면 그것을 감내할 나의 삶이 크고 깊은 것이니 기꺼이 그림자의 삶을 즐기라는 것까지.
여물어가는 들판의 벼 이삭이 주는 따뜻한 삶의 이야기가 초가을 바람에 실려온다.
가는 도중 서로 소개 인사를 하는 시간, 한 사람이 ‘이맘때쯤 노랗게 익어가는 들판’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같다고 했다.
문득 눈에 보이는 것보다 봄부터 여름을 거쳐 수확을 앞둔 이때까지 흘린 땀방울이 떠올렸다. 그렇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 중의 하나가 땀을 흘리며 일을 하고 땀의 결과를 마주하고 있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민족의 명절 한가위가 지났다. 조선 후기 학자이자 문신인 김매순의 「열양세시기(冽陽歲時記)」를 보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가윗날만 같아라’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 또한 덥지도 춥지도 않은 즈음, 결실의 풍요와 함께 하는 시간들에 대한 예찬이라 하겠다. 하지만 ‘참 좋은’ 추석 한가위가 모두에게 그러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 시인은 말했다.
늙은 건축가는 설계할 때 집의 그림자까지 그려 넣는다고.
기쁨과 행복을 생각하기 전에 슬픔과 불행을 다독이는 마음이란다.
빛과 그림자는 늘 명콤비처럼 함께 어울린다. 빛이 있기에 그림자가 있는 법이다.
아니 존재가 있기에 그림자가 있는 지도 모르겠다. 더 나아가 내가 지금 거기에 있기에 그림자가 있다. 아니 어쩌면 그림자가 본래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기쁨과 행복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 슬픔과 불행이 뒤엉켜 돌고 돌아가는 게 인생살이다. 빛과 그림자가 함께 하듯이.
그래서 인생은 희노애락의 비빔밥이라고 하지 않던가.
지난 한가위 명절, 온 가족이 함께 하는 자리에 어디 즐거운 일만 있었겠는가.
내가 우리가 함께 하다 보면 반가운 만남 속에 즐거운 일도 언짢고 속상한 일도 생겼을 것이다.
그런데 즐겁고 넉넉해야 할 명절이 서로 마음 상하고 갈등하는 시간이 된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서로의 입장이 되어 그 마음을 헤아리는 ‘역지사지’가 필요한 것이 바로 그때일 것이다. 내가 먼저 상대의 삶에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이해하는 작은 배려가 필요하다.
말 한마디, 내가 먼저 솔선수범하는 작은 행동이 누군가의 ‘아픔의 그림자’의 크기를 줄여 줄 것이다. 사람들은 사소한 것 하나에 울고 웃고 하는 것이기에.
늙은 건축가가 집의 그림자까지 그려 넣듯이 지혜로운 사람은 슬픈 일, 화나는 일이 일어날 수 있음도 헤아린다. 좋은 일이 생긴다 하여 교만하거나 우쭐대지 않으며 내가 기뻐할 때 상대는 힘들어하고 슬퍼할 수 있음도 생각한다.
앞의 시인은 그 마음을 ‘그늘의 마음’이라고 했다. 존재의 본의(本意)라고 했다.
그렇다. 그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것, 내 앞의 이익과 안위만에 매몰되지 않고 상대를 배려하며 더불어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 진정 인생의 참맛이 아닐까 싶다.
그것이 바로 한가위 명절이 우리에게 준 선물, 빛과 그림자가 나에게 주는 가르침이었을 것이다. 거기에 고통, 슬픔의 깊이가 크다면 그것을 감내할 나의 삶이 크고 깊은 것이니 기꺼이 그림자의 삶을 즐기라는 것까지.
여물어가는 들판의 벼 이삭이 주는 따뜻한 삶의 이야기가 초가을 바람에 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