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만근(萬斤)인 줄 몰랐다

만근(萬斤)인 줄 몰랐다

by 김민정 박사 2018.09.10

거기 오래 당신 없어 고향집 쓰러질 듯
빈 집 애처로워 제값이라 팔았는데
이상한 거래도 다 있다 고향이 없어진

고향을 잃어버린 남의 동네 서먹하다
하늘과 바람이며 갯바위나 파도까지
덤으로 팔려버렸다 어이없이 밑진 장사

그게 그렇게 고향산천 떠받치는 줄 몰랐다
마당만 몇 평 값으로 팔았다 싶었는데
낡은 집 한 채 무게가 만근인 줄 몰랐다
- 김소해, 「만근(萬斤)인 줄 몰랐다」 전문

고향, 거기에 나의 연고가 없으면 다시 가면 낯설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고향집을 팔고 나니 그곳의 하늘과 바람이며 갯바위나 파도까지 팔려버렸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 시인의 말이 참 가슴에 와닿는다. 마당만 몇 평 값으로 판 줄 알았는데 아뿔싸, 고향 전체가 팔려버렸다. 그래서 뒤늦게 깨달은 것 ‘낡은 집 한 채 무게가 만근’이라는 말, 참 실감이 간다. 나도 며칠 전에 학생들을 인솔하여 지금은 관광지가 된 고향을 다녀왔다. 기차가 다니던 곳에 만들어진 관광열차, 레일바이크, 그리고 내가 다니던 ‘심포초등학교’가 있던 자리엔 심포초등학교가 있던 자리라는 안내판 하나 없이 ‘도계 유리마을’이란 건물이 우뚝 서 있었다. 유리의 조형들은 멋지고 볼만했으나, 마음 한구석은 참으로 쓸쓸했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港口)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뫼 끝에 홀로 오르니/ 흰 점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 정지용의 「고향」 전문
고향이란 ‘태어나고 자란’ 처소적 고향 외에도 형이상학적 고향이라고 볼 수 있는 정신적 뿌리, 정신적 유대감으로의 고향의식을 사람들은 갖고 있다. 최재서의 말처럼 “향수란 원래 고향에 대한 사모이지만, 그 고향이란 반드시 유형임을 요하지는 않는다.”라고 했을 때, 우리는 무형의 안식처로서 고향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훗설은 “고향세계는 모든 인간과 모든 인간공동체를 둘러싸고 있는 친척 및 이웃 같은 절친한 사람들과 아는 사람들의 영역이다. 이 영역은 개인과 공동체에 제각각 다르게 매우 광범위하고, 그러면서도 유한한 것이다. 고향의 의식적이고 형이상학적 측면을 볼 때 그 고향의 본질은 불변하고 또 그것은 영구적인 것이다. 또 그것은 자연적 공간만이 아닌 것이다.”라고 했다. 볼노프는 “고향은 인격이 태어나고 자라고 또 일반적으로 계속 집으로 가지고 있는 삶의 영역이다. 고향은 그에게서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 등과 같은 가족 내에서의 친밀한 인간관계들과 함께 시작된다. 이 요소 외에 고향은 마을과 같은 공간적인 차원과 또 전통 같은 시간적인 차원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하이덱거는 “인간의 현존은 고향상실의 현존이며, 존재망각의 현존이다. 고향은 고요하고 위험이 없는 세계지정에 대한 표현이다. 피투성(被投性)과 세계 내 존재성 가운데 있는 인간 현존은 그 본래성이 비본래성에 의해 은폐되어 그 본래성을 잃은 상태에 있다.”라고 현대인들의 고향상실을 말하고 있기도 하다.
고향, 그것은 인간에게 영원한 향수를 일으키는 어머니 같은 아늑한 존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