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나 너 좋아해, 현주야

나 너 좋아해, 현주야

by 권영상 작가 2018.09.06

베란다 화분에 물을 주려고 물뿌리개를 집어 들 때다. 거실에 둔 휴대폰 벨이 울렸다. 물뿌리개를 놓고 들어가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내 손에서 벨 소리가 뚝 끊겼다. 휴대폰을 놓고 다시 베란다로 나가는데 또 울렸다. 나는 일부러 한참을 기다린 뒤에 휴대폰 곁으로 갔다. 그러나 너무 늦었던 걸까. 집어 들기도 전에 벨 소리가 끊겼다.
물을 다 주고 방에 들어가 책상 앞에 앉자, 또 휴대폰 벨이 울렸다. 두 번이나 나를 놀리던 그 전화였다. 이번엔 적당한 시간 전에 전화를 받았다. 누굴까 싶어 ‘여보세요!’ 대신 휴대폰 저쪽 너머에 귀 기울였다. 약간의 소음과 혼자 더듬거리는 말소리와 희미한 웃음이 간간이 들렸다. 한참만에 그쪽에서 전화를 끊었다.
“별에서 걸려온 전활까!”
나도 전화를 끊고, 그 일을 잊고 말았다. 뭐 그 일이란 게 대단한 일도 아니고, 크게 신경 쓸 일도 아니었으니까 잊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잊었다.
창가로 노을이 뜨는 걸 보며 아내와 저녁을 먹고 있을 때다.
아내가 내 방 책상 위에 둔 휴대폰 문자 메시지 수신음을 들은 모양이다. ‘문자 왔다니까!’ 그래서 나도 알았다. 나는 휴대폰을 집어 아내에게 내밀었다. 아내가 그걸 왜 날 주냐며 다시 내 쪽으로 밀었다.
“대출받으라는 문자겠지 뭐.”
내 말에 아내가 스팸문자를 지우겠다며 내 휴대폰을 열었다. 아내가 방금 왔다는 메시지를 읽었다. “나 너를 좋아해, 현주야!” 아내가 읽어준 메시지를 보여주었다.
“아유, 귀여워. 나 너 좋아해라니!”
아내가 뭔가를 눈치챘는지 다시 웃었다.
아, 이제야 알겠다. 문자를 날린 이 애가 그 애다. 낮에 세 차례나 내게 전화를 건. 부끄러워 현주라는 애 이름을 부르지도 못하고, ‘나 너 좋아해’ 그 말 할 자신도 없었던 그 아이. 초등학교 2학년이거나 3학년쯤인 사내아이.
나는 아내에게 낮에 있었던 그 세 차례의 전화를 말했다.
아내는 첫 번에 알아봤다며 다람쥐 사랑이네 했다.
서로 강종강종 앞서거니 뒤서거니 뛰닫는 다람쥐 사랑.
이 애가 좋아한다는 현주는 누굴까. 같은 반 아이일까. 학원에서 만나는 아이일까. 현주라는 아이와 어떤 식으로든 연결하고 싶어 하루종일 애쓴 사내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답장을 기다리고 있을 그 애를 위해 얼른 문자를 보내주어야 할 것 같았다.
“현주가 아니라서 미안해요. 전화번호를 다시 확인해 보세요.”
나는 쓸데없이 친절해져 있었다.
그리고는 혹시나 돌아올 문자를 기다렸다. 저녁 식사를 마치도록 기척이 없었다. 텔레비전을 켜다가도 ‘나 너 좋아해, 현주야!’가 생각났다. 그 아이는 이 밤에 뭘하고 있을까. 문자 보낸 걸 후회하고 있을까. 혹시 현주라는 아이의 전화번호를 못 찾은 건 아닐까. 아니면 엄마 잔소리 들으며 학원 숙제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엄마라는 품을 떠나 다른 사랑을 찾아가려는 그 아이의 인생이 행복해 보인다. 오늘은 실수했지만 처음부터 척척 풀리는 일이란 이 세상에 없다. 모든 인생이 다 그렇다.
용기를 내렴! 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