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산비를 만나다
산에서 산비를 만나다
by 권영상 작가 2018.08.30
산굽이를 돌아서는 데 비 내린다.
길 옆 팥배나무에 기대어 그 비를 본다. 비는 골짜기 건너편 늠름한 잣나무 숲 위로 빗금을 그으며 쏟아진다. 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그것도 기나긴 폭염 끝에 만나는 비다. 비는 잣나무 숲 위로 고르게 내린다. 마을에서도 간간히 비는 내렸지만 산속에서 만나는 산비는 차고 무겁다.
숲이 모처럼만에 숲 본연의 그윽함으로 돌아간다. 비는 폭염에 들떠 영혼 없이 살던 마음을 가라앉혀준다. 한참을 나무에 기대어 서 있어도 마음이 크게 미동하지 않는다. 더위에 안달하고 조급해하던 마음을 눌러주는 건 구름의 어둑함과 비의 눅신함이다.
잣나무 둥치들이 비에 젖고 있다. 산비탈 큼직한 바위도 비에 젖고 있다. 오랫동안 건조해 있던 내 마음도 저렇게 지금 젖어가고 있겠다. 마른 나무둥치들이 비에 축축이 젖어가는, 마을에서 떨어진 이 산속에 와 있는 것이 좋다. 잣나무 잣 잎 끝에 뽀얗게 맺히는 빗방울과 청회색 숲의 빛깔은 암만 바라보아도 좋다.
비의 손길을 느끼는 건 잣나무뿐이 아니다. 갈증을 참지 못해 골짝으로 골짝으로 내려서던 나무들 중에 싸리나무가 있다. 그들도 천천히 내리는 이 반가운 비의 무게에 몸이 활처럼 구부러져있다. 오리나무, 산벚나무, 산복숭아나무 그리고 그 아래 가장 낮은 골짝 그늘에서 숨죽이며 비를 기다리던 물봉선, 달개비, 여뀌, 고마리. 그들 모두 요만한 비에 반짝이고, 요만한 빗방울에 몸을 통통거리며 춤춘다.
나는 잣나무 그늘에서 나와 비 내리는 하늘 아래 선다. 비 올 줄 알면서도 우산 없이 빈손으로 산에 오르는 내가 좋다. 산에서 산비를 만나면 그 비를 맞는다는 생각이 오래전부터 내 안에 자리하고 있다. 나도 이 숲의 나무들처럼 비를 맞고 선다. 옷을 적시는 비가 도무지 싫지 않다. 그것은 내가 나무들처럼 비의 무게를 느끼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내 몸의 무게를 되찾아주는 비가 고맙다. 나는 폭염에 지쳐 아무 일도 못할 때면 혼자 중얼거렸다.
‘폭염이 끝나면 그때에나 하지 지금은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아.’
그때 내 몸은 빈 껍질이 되어가고 있었다. 내 안에 들었던 내 시간과 내 의지와 내 사랑과 꿈이 다 말라버려 무게 없는 인간이 된 듯 허망했다. 근데 이 비가 지금, 한없이 가벼워진 내 삶의 무게를 되찾아주고 있다. 온열증에 시달리던 내 몸을 회복시키는 중이다.
나는 내 몸으로 내리는 비를 피하지 않고 다 맞는다.
저쪽에서 잣나무를 타고 내린 청설모가 꼬리를 치켜들고 내게로 슬금슬금 다가온다. 사람을 보면 강종강종 달아나 훌쩍 나무를 타던 청설모가 내 발 앞까지 오더니 슬몃 돌아간다. 나는 청설모가 간 길을 따라 비 내리는 산을 내려온다. 올 때는 산에서 마른 먼지내가 났는데 갈 때는 흙내가 나고 풀내가 비린 비내가 난다.
이제는 제 자리로 조용히 돌아가고 싶다. 더위는 더위만큼 비는 비만큼의 자리로 돌아가고, 사람의 욕심은 꼭 사람의 욕심만큼 본디의 자리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폭염이 그냥 올 리 없다. 사람의 지나친 욕심이 폭염을 부른 건 아닐까.
길 옆 팥배나무에 기대어 그 비를 본다. 비는 골짜기 건너편 늠름한 잣나무 숲 위로 빗금을 그으며 쏟아진다. 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그것도 기나긴 폭염 끝에 만나는 비다. 비는 잣나무 숲 위로 고르게 내린다. 마을에서도 간간히 비는 내렸지만 산속에서 만나는 산비는 차고 무겁다.
숲이 모처럼만에 숲 본연의 그윽함으로 돌아간다. 비는 폭염에 들떠 영혼 없이 살던 마음을 가라앉혀준다. 한참을 나무에 기대어 서 있어도 마음이 크게 미동하지 않는다. 더위에 안달하고 조급해하던 마음을 눌러주는 건 구름의 어둑함과 비의 눅신함이다.
잣나무 둥치들이 비에 젖고 있다. 산비탈 큼직한 바위도 비에 젖고 있다. 오랫동안 건조해 있던 내 마음도 저렇게 지금 젖어가고 있겠다. 마른 나무둥치들이 비에 축축이 젖어가는, 마을에서 떨어진 이 산속에 와 있는 것이 좋다. 잣나무 잣 잎 끝에 뽀얗게 맺히는 빗방울과 청회색 숲의 빛깔은 암만 바라보아도 좋다.
비의 손길을 느끼는 건 잣나무뿐이 아니다. 갈증을 참지 못해 골짝으로 골짝으로 내려서던 나무들 중에 싸리나무가 있다. 그들도 천천히 내리는 이 반가운 비의 무게에 몸이 활처럼 구부러져있다. 오리나무, 산벚나무, 산복숭아나무 그리고 그 아래 가장 낮은 골짝 그늘에서 숨죽이며 비를 기다리던 물봉선, 달개비, 여뀌, 고마리. 그들 모두 요만한 비에 반짝이고, 요만한 빗방울에 몸을 통통거리며 춤춘다.
나는 잣나무 그늘에서 나와 비 내리는 하늘 아래 선다. 비 올 줄 알면서도 우산 없이 빈손으로 산에 오르는 내가 좋다. 산에서 산비를 만나면 그 비를 맞는다는 생각이 오래전부터 내 안에 자리하고 있다. 나도 이 숲의 나무들처럼 비를 맞고 선다. 옷을 적시는 비가 도무지 싫지 않다. 그것은 내가 나무들처럼 비의 무게를 느끼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내 몸의 무게를 되찾아주는 비가 고맙다. 나는 폭염에 지쳐 아무 일도 못할 때면 혼자 중얼거렸다.
‘폭염이 끝나면 그때에나 하지 지금은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아.’
그때 내 몸은 빈 껍질이 되어가고 있었다. 내 안에 들었던 내 시간과 내 의지와 내 사랑과 꿈이 다 말라버려 무게 없는 인간이 된 듯 허망했다. 근데 이 비가 지금, 한없이 가벼워진 내 삶의 무게를 되찾아주고 있다. 온열증에 시달리던 내 몸을 회복시키는 중이다.
나는 내 몸으로 내리는 비를 피하지 않고 다 맞는다.
저쪽에서 잣나무를 타고 내린 청설모가 꼬리를 치켜들고 내게로 슬금슬금 다가온다. 사람을 보면 강종강종 달아나 훌쩍 나무를 타던 청설모가 내 발 앞까지 오더니 슬몃 돌아간다. 나는 청설모가 간 길을 따라 비 내리는 산을 내려온다. 올 때는 산에서 마른 먼지내가 났는데 갈 때는 흙내가 나고 풀내가 비린 비내가 난다.
이제는 제 자리로 조용히 돌아가고 싶다. 더위는 더위만큼 비는 비만큼의 자리로 돌아가고, 사람의 욕심은 꼭 사람의 욕심만큼 본디의 자리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폭염이 그냥 올 리 없다. 사람의 지나친 욕심이 폭염을 부른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