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에 사는 메아리
마음속에 사는 메아리
by 한희철 목사 2018.08.29
이 시대 우리들의 삶을 규정하는 특징 중의 하나가 메아리를 들을 수가 없다는 것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사방에 메아리가 살았다 싶거든요.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사라진 것 중에는 메아리가 있습니다.
뭔가 마음이 답답하거나 속상한 일이 있을 때면 느릿느릿 황소걸음으로, 아니면 숨이 멎을 듯이 뒷동산으로 한달음에 올라가 하늘을 향해, 어딘가 알 수 없는 꿈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먼 곳을 향해 소리를 지르면 그 마음 내가 알지, 힘을 내렴, 어깨를 두드리듯 들려왔던 메아리가 유년의 시절에는 있었습니다. 동네마다 메아리가 살고 있었고, 우리는 메아리와 함께 살았고요.
요즘은 메아리를 듣기가 어렵습니다. 어느새 마을마다 동산이 사라지고 사라진 동산 자리에 들어선 것은 빼곡한 아파트 단지, 그러다 보니 마음도 시멘트처럼 굳어가고, 이래저래 메아리가 살 수 없는 곳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 줄 알았는데, 메아리가 모두 사라진 줄 알았는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지난주였습니다. 낯선 편지가 한 통 배달이 되었습니다. 주소도, 발신인도 모두가 낯설었습니다. 조심스럽게 편지를 열자 손으로 정성스럽게 쓴 편지가 담겨 있었습니다.
경기도 군포에 사는 분이었습니다. 한 달 전쯤 <교차로> ‘아름다운 사회’란에 ‘시(詩) 한 줄만도 못한 시시한’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쓰면서, ‘매주 쓰는 소소한 칼럼도 누군가의 지친 삶을 향한 응원이 될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 그런 생각도 덤처럼 마음에 새기는 시간이었고요.’라고 글을 마친 일이 있습니다.
교차로 칼럼을 눈여겨 읽던 분이 그 글을 읽게 되었고, 그 글에 대해 답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편지를 쓴 계기였다고 했습니다. 혹시라도 바쁜 시간을 할애하는 누가 되는 것은 아닌지를 염려했지만, 결코 그런 일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글을 쓴 제게는 글을 쓰는 일이 무익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일러주는 더없이 반갑고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그 일이 더욱 고맙게 여겨졌던 것은 편지 내용 중에 적혀 있는 소개 때문이었습니다. 편지를 쓰신 분은 저와 종교가 달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에 귀감이 되는 좋은 글들은 종교의 영역을 초월한다’시며 편지를 주신 것이었으니, 그 마음의 품이 넓고 따뜻하다 싶어 고마웠습니다.
편지에는 또 한 가지 반가운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제가 새롭게 목회를 시작한 이곳 정릉이 편지를 쓴 분의 고향이었던 것입니다. 필자 이름 옆에 적힌 짧은 설명 중 정릉감리교회라는 말이 반가웠던 것은, 태어나서 결혼을 할 때까지 살았던 곳이 정릉인 데다가 정릉에 살면서 늘 보아왔던 교회가 정릉감리교회였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저 또한 손 글씨로 답장을 쓰면서 메아리가 아주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사라진 줄 알았던 메아리는 우리들 마음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뭔가 마음이 답답하거나 속상한 일이 있을 때면 느릿느릿 황소걸음으로, 아니면 숨이 멎을 듯이 뒷동산으로 한달음에 올라가 하늘을 향해, 어딘가 알 수 없는 꿈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먼 곳을 향해 소리를 지르면 그 마음 내가 알지, 힘을 내렴, 어깨를 두드리듯 들려왔던 메아리가 유년의 시절에는 있었습니다. 동네마다 메아리가 살고 있었고, 우리는 메아리와 함께 살았고요.
요즘은 메아리를 듣기가 어렵습니다. 어느새 마을마다 동산이 사라지고 사라진 동산 자리에 들어선 것은 빼곡한 아파트 단지, 그러다 보니 마음도 시멘트처럼 굳어가고, 이래저래 메아리가 살 수 없는 곳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 줄 알았는데, 메아리가 모두 사라진 줄 알았는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지난주였습니다. 낯선 편지가 한 통 배달이 되었습니다. 주소도, 발신인도 모두가 낯설었습니다. 조심스럽게 편지를 열자 손으로 정성스럽게 쓴 편지가 담겨 있었습니다.
경기도 군포에 사는 분이었습니다. 한 달 전쯤 <교차로> ‘아름다운 사회’란에 ‘시(詩) 한 줄만도 못한 시시한’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쓰면서, ‘매주 쓰는 소소한 칼럼도 누군가의 지친 삶을 향한 응원이 될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 그런 생각도 덤처럼 마음에 새기는 시간이었고요.’라고 글을 마친 일이 있습니다.
교차로 칼럼을 눈여겨 읽던 분이 그 글을 읽게 되었고, 그 글에 대해 답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편지를 쓴 계기였다고 했습니다. 혹시라도 바쁜 시간을 할애하는 누가 되는 것은 아닌지를 염려했지만, 결코 그런 일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글을 쓴 제게는 글을 쓰는 일이 무익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일러주는 더없이 반갑고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그 일이 더욱 고맙게 여겨졌던 것은 편지 내용 중에 적혀 있는 소개 때문이었습니다. 편지를 쓰신 분은 저와 종교가 달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에 귀감이 되는 좋은 글들은 종교의 영역을 초월한다’시며 편지를 주신 것이었으니, 그 마음의 품이 넓고 따뜻하다 싶어 고마웠습니다.
편지에는 또 한 가지 반가운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제가 새롭게 목회를 시작한 이곳 정릉이 편지를 쓴 분의 고향이었던 것입니다. 필자 이름 옆에 적힌 짧은 설명 중 정릉감리교회라는 말이 반가웠던 것은, 태어나서 결혼을 할 때까지 살았던 곳이 정릉인 데다가 정릉에 살면서 늘 보아왔던 교회가 정릉감리교회였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저 또한 손 글씨로 답장을 쓰면서 메아리가 아주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사라진 줄 알았던 메아리는 우리들 마음속에 살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