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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같은 도시로 떠나고 싶다

동화 같은 도시로 떠나고 싶다

by 이규섭 시인 2018.08.03

폭염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근린공원 느티나무 아래 평상에 앉았어도 바람 한 점 없다. 자지러질 듯 울어대는 매미 소리가 그나마 청량하게 들린다. 하늘은 맑고 흰 구름이 한가롭다. 불현듯 지난 초봄에 들렀던 벨기에의 브뤼헤가 떠오른다. 운하와 호수, 몽당연필 같은 집이 있는 동화 같은 도시다.
파리에서 이른 아침을 먹고 출발한 관광버스는 네 시간 가까이 걸려 브뤼헤에 도착했다. 주차장 옆으로 난 작은 길을 따라가니 우거진 숲 사이로 ‘사랑의 호수’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이곳에서 좋아하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소원을 빌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잔잔한 호수가로 숲과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사색하며 걷기 좋다. 힐링 여행 코스로 추천할만하다.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번진다.
사랑의 호수와 운하가 만나는 지점에 백조가 한가롭게 노닌다. 작은 무지개다리를 건너면 베긴회 수도원으로 가는 길, 베네딕트회 수녀들이 생활하는 곳이다. 수녀들은 한 땀 한 땀 손으로 레이스를 짜 생계를 돕는다. 노트르담 성당(성모마리아 성당)의 첨탑은 벽돌로 쌓은 게 색다르다. 성당 안 ‘성 모자상’은 미켈란젤로의 미완성 작품이다. 이탈리아 시에나 성당에 비치하려고 준비하던 작품을 1506년 벨기에 상인 두 사람이 구입하여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길은 도시의 중심 마르크트 광장으로 이어진다. 브뤼헤의 상징 벨포트가 위용을 뽐낸다. 1240년에 세운 종루의 높이는 83m. 366개의 나선형 계단을 올라 종루에서 시가지를 조망할 수 있다. 맞은편엔 창문의 모양과 색깔이 다채로운 길드하우스가 어깨를 나란히 도열해 있다. 옛날에는 협동조합 건물이었으나 지금은 고급 레스토랑과 숙소로 성업 중이다.
북쪽 사다리꼴 회색지붕에 붉은색 눈처럼 보이는 네오고딕양식의 지방법원도 독특하다. 마르크트광장 옆 부르크광장의 고딕양식 시청사 뾰족탑들은 조각품 같다. 광장 코너 회색빛 3층 건물은 ‘성혈교회’. 1150년 제2차 십자군전쟁 때 예루살렘에서 가져온 예수의 성혈을 모신 곳이다. 매일 오후 2∼3시 사이에만 공개한다는 데 시간이 맞지 않아 못 본 게 아쉽다.
두 광장은 중세 이후 다양한 건축 양식의 건물로 둘러싸인 야외 건축박물관이다. 광장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잔술을 파는 맥주 카페에 들렀다. 생맥주 한 잔 2유로. 부드럽고 상큼하다. 벨기에 맥주는 브랜드만 500여 개에 로컬 맥주를 더하면 25000여 가지가 넘는다니 맥주 천국답다. 브랜드 별 맥주 전용 머그잔을 파는 가게도 수두룩하다. 벨기에의 유명한 먹거리는 와플과 생감자 튀김. 평소 감자튀김을 좋아하지 않지만 맛이나 보려고 벨포트 앞 포장마차 앞에 줄을 서서 샀다. 갓 구워낸 튀김에 마요네즈를 발라먹으니 바삭하고 짭짤한 맛이 별미다.
삼각형 지붕의 앙증맞은 몽당연필 집들은 장난감처럼 정감이 간다. 레이스 달린 작은 창문을 열면 요정이 나올 것 같은 동화 같은 풍경이다. 벨포트 종소리는 매시 마다 잠든 영혼을 일깨우듯 울려 퍼진다. 브뤼헤는 스쳐가는 도시가 아니라 오래 머물고 싶은 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