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치열할 때가 아름답다

치열할 때가 아름답다

by 권영상 작가 2018.08.02

시골살이를 시작한 지 5년. 오랜 직장생활에 지친 나는 일찌감치 직장을 정리한 후 낯선 안성으로 혼자 내려왔다. 손바닥만 한 땅에 감자와 고추와 토마토를 심었다. 생땅을 갈아엎어 작물을 키우던 첫해, 나는 기대 이상의 수확에 스스로 감동했다. 마을 사람들까지 찾아와 내 실력에 감탄했다.
근데, 해마다 그랬는가? 아니다. 3년째 접어들면서 고추는 진딧물에 시달렸다. 좋다는 유기농 진딧물 약을 만들어 쳤지만 허사였다. 달린 것마저 비틀어지고 오그라들었다. 토마토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름시름 병을 달고 살다가 장마가 끝나자 흔적 없이 사라졌다. 다들 놀라던 내 농사 솜씨도 불과 이태만에 끝이 났다.
“그게 바로 연작 피해라는 거야.”
내 고충을 듣던 고향 친구가 전화로 귀띔해 주었다.
한 자리에 같은 작물을 연이어 심었을 때 오는 피해, 그게 연작 피해다. 연작 피해가 심한 작물은 고추 감자 토마토 가지 마늘 참깨 등이다. 암만 거름을 잘 해도 작물이 퇴화하거나 병해에 취약해져 수확이 절감하는 현상이다.
올해는 작물의 위치를 바꾸어주었다. 그 효과가 놀라웠다. 고추는 성큼성큼 크더니 내 가슴 높이까지 자라 올랐다. 토마토는 지난해 심은 자리와 그 옆자리에 28포기를 심었는데 그 경계가 명확했다. 지난해 심은 자리의 토마토는 아닌 때부터 병에 시달렸는데 새로 잡아준 자리의 토마토는 첫해처럼 왕성했다. 그러니까 5년 전 첫해, 그해 작황이 좋았던 건 내 경작 실력 때문이 아니었다. 생땅에 심은 첫 작물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도 같은 직장에 오래 근무하면 어느 때부턴가 지루함을 느낀다. 설레는 마음으로 출근하던 그 길이 시들해지고, 늘 하던 그 일이 도무지 신나지 않는다. 동료들과의 대화도 즐겁지 않다. 직장 일이란 것이 눈에 보이듯 뻔해 통 재미가 없다. 작물로 치자면 연작 피해 증상이 일어나는 거다.
지금 아내와 함께 살고 있는 집이 그렇다. 들어와 산 지 10년이 넘었다. 그 이전만 해도 이런저런 사정으로 1,2년에 한 번씩 이사를 했다. 그런 탓에 낯선 집과 동네에 익숙해지느라 어떻게 살았는지 모를 만큼 그 시절의 삶은 속도감이 있었다. 근데 지금은 가구는 물론 방 구석구석까지 너무 정이 들어 닳아버린 옷처럼 부드럽다 못해 너덜거린다. 부부가 오래 함께 살면 서로의 색깔을 잃고 닮아가듯 집도 주인을 닮아 팽팽한 맛이 없어진다.
참다못해 이사를 결심했다. 집을 보러 나섰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주저앉고 말았다. 우리가 본 낯선 집들은 교통이며 환경 모두가 불편투성이였다. 우리는 오래 안주하며 사는 동안 낯선 변화와 새로운 시작을 싫어하거나 두려워하는 타성에 젖어 있었다.
그 무렵 나는 빠르게 직장을 정리하고 안성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5년을 살며 배운 게 연작 피해다. 한 자리에 오래 눌러 사는 안주는 자기 표절을 생산하고 타성이라는 질병에 시달리게 한다. 암만 맛있는 비빔밥을 만들었다 하지만 역시 그 밥에 그 나물이다.
돌이켜 보면 전세비에 맞추어 수없이 이사를 다니던 젊은 시절이 아름다웠다. 지나간 과거라서가 아니라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애쓰던 내 몸의 치열함 때문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