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월악산 마애불

월악산 마애불

by 김민정 박사 2018.05.28

바위 속에 침묵하며 억겁을 사시다가
석수장이 손재간을 몸에다 두르시고
홀연히 문을 여시며 사바계로 나오신다.

감은 듯 뜨신 눈에 한 천년이 들어 앉아
어제는 시공時空을 사려 점 하나 찍더니만
오늘은 덕주사에서 반야경을 풀고 있다.

떨어지는 산새소리 묻어 있는 나뭇잎에
꽃이 된 금강경이 적막을 쌓는 나절
무너진 하늘 한쪽이 국사봉에 걸린다.
- 김흥열의 「월악산 마애불」 전문

며칠 전에 부처님 오신 날, ‘티벳에서의 7년’이란 영화를 보았다. 1989년에 노벨평화상을 받았던 티벳의 달라이 라마의 어린 시절을 조금 볼 수 있어 인상적이었다.
절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건, 아니 부처님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음에 안정이 오는 건 불교를 믿는 사람들만이 그럴까? 불교를 종교로 그렇게 깊이 믿지는 않지만, 불교철학이 좋고, 또 불상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모든 종교가 근본적으로 자신의 복과 평안을 비는 것이라 종교인이 아닌 입장에서 보면 그것조차 철저하게 이기주의로 보인다.
몇 년 전의 <기황후>란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역사적인 사실과는 많이 왜곡되었다고는 하지만, 배울 점도 많았다. 거기에서도 저마다 절에 가서 자신의 안위와 행복을 위해 기원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자신은 보호해 주고, 상대방은 멸해 주기를, 즉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세상이 돌아가게 해 달라고 비는 사람들, 부처님은 과연 누구의 편을 들어주실까?
지진, 홍수, 태풍 등 자연 앞의 인간은 한없이 나약하여 종교를 찾는다. 나약한 인간의 힘을 강하게 하는 것은 인격적 수양과 의지가 먼저일 것이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보면 자신의 힘이 세계 제일이라고 자랑하는 헤라클레스가 어느 날 아주 좁은 길을 가고 있었다. 그런데 한참을 가다 보니 길 한가운데에 사과 크기만 한 이상한 물건이 떨어져 있었다. “아니, 감히 천하에서 제일 힘센 헤라클레스의 앞길을 방해하다니. 에잇.” 그는 발로 그 동그란 것을 툭 하고 찼다. 그러자 사과만 한 그것이 어느새 수박처럼 커졌다. “어, 이게 뭐야. 나를 놀리네.” 흥분한 헤라클레스는 다시 그것을 발로 힘껏 찼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그것이 바위만큼 커져 버렸다. “그래, 천하의 헤라클레스를 이겨 보겠다고? 어림도 없다. 이놈.” 더욱 열이 오른 헤라클레스는 이번에는 자신이 들고 있던 커다란 쇠몽둥이로 그것을 휘둘렀다. 놀랍게도 그것은 아까보다 두 배나 더 커져 마침내 좁은 길을 막아버리고 말았다.
너무나 화가 난 그는 잔뜩 얼굴을 찡그린 채 웃옷을 벗어 던지고 한참 동안 그것을 들어 올려 집어던지려고 애썼다. 그럴수록 그의 얼굴은 더욱더 심하게 일그러져 보기 흉해졌고 덩달아 그것은 산더미만큼 커졌다. 그 앞에 아테네 여신이 나타났고, 그녀가 그 산더미만 한 물건에게 웃으며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주자 그것은 순식간에 작은 사과 크기가 되어 길 한 모퉁이에 툭 떨어졌다. 깜짝 놀라는 헤라클레스에게 아테네 여신이 웃으며 말해 주었다.
“그것을 더 이상 건드리지 마세요. 그것은 당신 마음속에 있는 화와 같아서 건드리지 않고 두면 작아지지만 건드릴수록 더 커지는 거랍니다. 화는 낼수록 더 커지는 법이지요. 조금만 참으면 곧 잊혀지는 것이 마음속의 화이니까요.”
스스로 평안을 얻는 인격적 수양과 의지를 갖는 것이 가장 강한 나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