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두나무와 이형
자두나무와 이형
by 권영상 작가 2018.04.26
뜰 안 자두꽃이 핀다. 4월은 꽃이 좋은 시절이다. 메이플이 피고, 뜰보리수가 피고, 모과꽃이 피고, 느릅나무 꽃 필 때에 자두꽃도 핀다. 연두빛에 가까운 하얀 꽃. 곱기로 한다면야 배꽃만큼 곱다.
6년 전이다. 어디 한적한 시골에 묻혀 홀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를 돌아보면 나라는 사람은 타인과 어울려사는 일에 적잖이 힘들어 하는 듯했다. 그런데도 다들 나를 마음씨 좋은 사람쯤으로 받아들였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아프지만 그들과 부대꼈다.
“이형, 가끔 호젓한 시골이 그리워.”
그때 내 곁에 이형이 있었다.
“나도 내가 나를 잘 알어. 그런 곳에 가면 지친 나도 좀 살아날 것 같어.”
이형의 생각도 나와 같았다. 이형이나 나나 호젓한 시골에서 외롭게 어린 시절을 보냈고, 어쩌어찌 도시로 흘러들어와 살면서 자신의 그릇이 조그마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니까 그 작은 그릇으로 분에 넘치는 일을 하며 이건 아니다 아니다 고개를 저으며 살았다. 모임에 나가 사람 사이에 섞이는 게 힘들었고, 타인의 힘에 휘둘리면서도 말 못하는 거며, 현실을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그마저 어려워하는 것도 닮았다.
그러던 어느 해, 나는 직장을 털고 일어섰고, 조그마한 오두막집도 하나 구했다. 누구보다 이형이 반가워했다.
“권형, 그 집에 가 볼 수 없어 미안한데 빈자리 있으면 자두나무 하나 심어줘요.”
그러며 묘목 값을 내놓았다. 한사코 만류했지만 못 이기는 척 그 호의를 받아들였다. 이형이 심어달라고 부탁한 자두나무가 오랫동안 우리의 우정을 이어줄 것이라는 예감이 있었다.
그때 묘목을 구해 심은 자리가 뜰보리수 곁이었다. 근데 자두나무라는 것이 성장 속도가 빨랐다. 미처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나무는 그 넓은 공간이 비좁을 만큼 자라 있었다. 지난해 봄, 뜰 안 배롱나무 곁에 넉넉하게 자리를 만들고 옮겨 심었다.
자두나무를 심은 지 6년. 자두꽃이 하얗게 피는 사이, 이형도 춘천으로 가는 김유정역 근처 산속 조용한 곳에 쉼터 하나를 마련했다. 한 달에 한 번 혼자 다녀온다고 했다. 처음 한 번을 다녀온 뒤 이형이 내게 말했다. 벌써 살 것 같어. 만신창이 된 몸이 그렇게 말하는 걸 뭐. 그러면서 산비탈 한 조각을 힘들게 힘들게 구한 이야기를 했다.
“거기 내 자두나무도 한 그루 심어줘요.”
이형의 바지 주머니에 나는 자두나무 묘목 값을 밀어 넣었다.
“아니, 이러면 안 돼!”
이형도 그 옛날의 나처럼 사양했지만 끝내 그 얼마 안 되는 나의 호의를 받아주었다.
밤이면 가끔 이형이 가곤 한다는 김유정역 어느 산 속을 생각한다. 그곳 어디에 이형과 동무하며 같이 밤을 보내고 있을 나의 자두나무는 잘 있는지…. 그 생각을 하려니 자두나무를 내게로 보낸 뒤 이형도 가끔은 내게로 온 이형의 자두나무를 생각했지 싶었다.
이형이나 나나 우리는 서로 자두나무를 닮았다. 서로의 땅에 와 서로를 조용히 지켜보는 것이 그렇다. 간간히 안부 문자를 보내거나 전화를 걸어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줄 아는 것이 같다. 이형을 만나면 그늘이 있는 나무처럼 편하다. 이 세상에 이형같이 마음에 와닿는 친구도 없다면 없다. 자두가 익을 때면 한 번은 이형을 불러 자두를 먹으며 밤늦도록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6년 전이다. 어디 한적한 시골에 묻혀 홀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를 돌아보면 나라는 사람은 타인과 어울려사는 일에 적잖이 힘들어 하는 듯했다. 그런데도 다들 나를 마음씨 좋은 사람쯤으로 받아들였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아프지만 그들과 부대꼈다.
“이형, 가끔 호젓한 시골이 그리워.”
그때 내 곁에 이형이 있었다.
“나도 내가 나를 잘 알어. 그런 곳에 가면 지친 나도 좀 살아날 것 같어.”
이형의 생각도 나와 같았다. 이형이나 나나 호젓한 시골에서 외롭게 어린 시절을 보냈고, 어쩌어찌 도시로 흘러들어와 살면서 자신의 그릇이 조그마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니까 그 작은 그릇으로 분에 넘치는 일을 하며 이건 아니다 아니다 고개를 저으며 살았다. 모임에 나가 사람 사이에 섞이는 게 힘들었고, 타인의 힘에 휘둘리면서도 말 못하는 거며, 현실을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그마저 어려워하는 것도 닮았다.
그러던 어느 해, 나는 직장을 털고 일어섰고, 조그마한 오두막집도 하나 구했다. 누구보다 이형이 반가워했다.
“권형, 그 집에 가 볼 수 없어 미안한데 빈자리 있으면 자두나무 하나 심어줘요.”
그러며 묘목 값을 내놓았다. 한사코 만류했지만 못 이기는 척 그 호의를 받아들였다. 이형이 심어달라고 부탁한 자두나무가 오랫동안 우리의 우정을 이어줄 것이라는 예감이 있었다.
그때 묘목을 구해 심은 자리가 뜰보리수 곁이었다. 근데 자두나무라는 것이 성장 속도가 빨랐다. 미처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나무는 그 넓은 공간이 비좁을 만큼 자라 있었다. 지난해 봄, 뜰 안 배롱나무 곁에 넉넉하게 자리를 만들고 옮겨 심었다.
자두나무를 심은 지 6년. 자두꽃이 하얗게 피는 사이, 이형도 춘천으로 가는 김유정역 근처 산속 조용한 곳에 쉼터 하나를 마련했다. 한 달에 한 번 혼자 다녀온다고 했다. 처음 한 번을 다녀온 뒤 이형이 내게 말했다. 벌써 살 것 같어. 만신창이 된 몸이 그렇게 말하는 걸 뭐. 그러면서 산비탈 한 조각을 힘들게 힘들게 구한 이야기를 했다.
“거기 내 자두나무도 한 그루 심어줘요.”
이형의 바지 주머니에 나는 자두나무 묘목 값을 밀어 넣었다.
“아니, 이러면 안 돼!”
이형도 그 옛날의 나처럼 사양했지만 끝내 그 얼마 안 되는 나의 호의를 받아주었다.
밤이면 가끔 이형이 가곤 한다는 김유정역 어느 산 속을 생각한다. 그곳 어디에 이형과 동무하며 같이 밤을 보내고 있을 나의 자두나무는 잘 있는지…. 그 생각을 하려니 자두나무를 내게로 보낸 뒤 이형도 가끔은 내게로 온 이형의 자두나무를 생각했지 싶었다.
이형이나 나나 우리는 서로 자두나무를 닮았다. 서로의 땅에 와 서로를 조용히 지켜보는 것이 그렇다. 간간히 안부 문자를 보내거나 전화를 걸어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줄 아는 것이 같다. 이형을 만나면 그늘이 있는 나무처럼 편하다. 이 세상에 이형같이 마음에 와닿는 친구도 없다면 없다. 자두가 익을 때면 한 번은 이형을 불러 자두를 먹으며 밤늦도록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