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봄이 잔인한 사월로
찬란한 봄이 잔인한 사월로
by 이규섭 시인 2018.04.06
송화(松花) 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산지기 외딴 집/ 눈 먼 처녀사문설주에 귀 대고/ 엿듣고 있다
사춘기 시절 즐겨 읊던 박목월 시 ‘윤사월’이다. 짧지만 울림은 깊다. 외딴 봉우리 산그늘 아래 외딴 집은 산촌에 갇힌 꿈 많은 소년의 외로움을 닮았다. 눈먼 처녀가 문설주에 기대어 엿듣고 싶은 것은 그리움이다. 문설주는 갇힌 공간과 열린 공간의 경계다. 넓은 세상을 향한 소년의 꿈은 갇힌 공간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다. 애잔한 정적을 흔들어 깨우는 노란 꾀꼬리의 울음소리는 송홧가루처럼 노랗다.
송홧가루는 잔칫날이나 먹을 수 있는 귀한 다식의 재료다. 꿀에 반죽하여 나무로 된 다식판에 찍어내면 예쁜 무늬가 새겨진 한과로 탄생한다. 혀끝을 감치는 은은한 솔 향과 달콤함은 노란빛깔 행복의 맛이었다.
귀한 송홧가루가 천덕꾸러기가 될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다. 4월이면 근린공원에서 날아온 송홧가루가 장독 뚜껑에 노랗게 내려앉는다. 황사에 미세먼지까지 덮쳐 장독 뚜껑을 열어놓는 날이 갈수록 드물어진다. 봄의 불청객 꽃가루는 성가신 존재가 됐고, 알레르기 질환자의 신경을 곤두서게 만든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는 낭만의 4월은 꽃가루와 황사, 미세먼지에 무참하게 무너져버린 지 오래다. 순백의 목련이 처연하게 떨어져 처연하게 짓밟히듯이. 미세먼지는 호흡기뿐 아니라 눈, 피부, 심장, 혈관 등 우리 몸 전체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마이더스의 손이다. 꽃 나들이 갈 화사한 봄날, 마스크로 중무장을 하고도 불안해한다. 4월부터 시작한 근린공원 에어로빅도 마스크를 낀 채 하는 사람이 눈에 띈다. 호흡이 가쁜 율동을 하면서 얼마나 불편할까.
날씨 정보를 확인할 땐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 여부를 확인하는 게 어느새 습관이 됐다. 웬만하면 마스크를 끼지 않는 성격인데도 미세먼지 비상 저감 조치가 발령되면 외출을 삼가거나 어쩔 수 없이 나가게 되면 챙기게 된다.
미세먼지가 삶의 방식까지 바꾸고 있다는 보도다. 호흡기가 약한 아이를 위해 공기 맑은 지방으로 이사하는 경우가 늘었다고 한다. 자녀교육을 위해 이사하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에 빗대 미세먼지 없는 곳을 찾아가는 ‘맹모삼천지미(孟母三遷之微)’라는 말이 등장해 쓴웃음 짓게 한다.
직장과 학교 때문에 현실적으로 이사하지 못하는 이들은 주말 동안 이용할 ‘세컨드 하우스’마련은 이해간다. 이민까지 고려한다는 건 지나친 반응이지 싶다. ‘미대촉’(미세먼지 대책을 촉구합니다) 인터넷 카페까지 등장하여 정보를 공유한다니 ‘찬란한 봄’이 잔인한 사월로 가파르게 추락한다. 마음껏 호흡할 수 있는 청정 하늘을 되찾을 방법은 영영 없는가. 진달래 먹고 물장구치던 그 시절로 세월을 되돌리고 싶다.
사춘기 시절 즐겨 읊던 박목월 시 ‘윤사월’이다. 짧지만 울림은 깊다. 외딴 봉우리 산그늘 아래 외딴 집은 산촌에 갇힌 꿈 많은 소년의 외로움을 닮았다. 눈먼 처녀가 문설주에 기대어 엿듣고 싶은 것은 그리움이다. 문설주는 갇힌 공간과 열린 공간의 경계다. 넓은 세상을 향한 소년의 꿈은 갇힌 공간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다. 애잔한 정적을 흔들어 깨우는 노란 꾀꼬리의 울음소리는 송홧가루처럼 노랗다.
송홧가루는 잔칫날이나 먹을 수 있는 귀한 다식의 재료다. 꿀에 반죽하여 나무로 된 다식판에 찍어내면 예쁜 무늬가 새겨진 한과로 탄생한다. 혀끝을 감치는 은은한 솔 향과 달콤함은 노란빛깔 행복의 맛이었다.
귀한 송홧가루가 천덕꾸러기가 될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다. 4월이면 근린공원에서 날아온 송홧가루가 장독 뚜껑에 노랗게 내려앉는다. 황사에 미세먼지까지 덮쳐 장독 뚜껑을 열어놓는 날이 갈수록 드물어진다. 봄의 불청객 꽃가루는 성가신 존재가 됐고, 알레르기 질환자의 신경을 곤두서게 만든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는 낭만의 4월은 꽃가루와 황사, 미세먼지에 무참하게 무너져버린 지 오래다. 순백의 목련이 처연하게 떨어져 처연하게 짓밟히듯이. 미세먼지는 호흡기뿐 아니라 눈, 피부, 심장, 혈관 등 우리 몸 전체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마이더스의 손이다. 꽃 나들이 갈 화사한 봄날, 마스크로 중무장을 하고도 불안해한다. 4월부터 시작한 근린공원 에어로빅도 마스크를 낀 채 하는 사람이 눈에 띈다. 호흡이 가쁜 율동을 하면서 얼마나 불편할까.
날씨 정보를 확인할 땐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 여부를 확인하는 게 어느새 습관이 됐다. 웬만하면 마스크를 끼지 않는 성격인데도 미세먼지 비상 저감 조치가 발령되면 외출을 삼가거나 어쩔 수 없이 나가게 되면 챙기게 된다.
미세먼지가 삶의 방식까지 바꾸고 있다는 보도다. 호흡기가 약한 아이를 위해 공기 맑은 지방으로 이사하는 경우가 늘었다고 한다. 자녀교육을 위해 이사하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에 빗대 미세먼지 없는 곳을 찾아가는 ‘맹모삼천지미(孟母三遷之微)’라는 말이 등장해 쓴웃음 짓게 한다.
직장과 학교 때문에 현실적으로 이사하지 못하는 이들은 주말 동안 이용할 ‘세컨드 하우스’마련은 이해간다. 이민까지 고려한다는 건 지나친 반응이지 싶다. ‘미대촉’(미세먼지 대책을 촉구합니다) 인터넷 카페까지 등장하여 정보를 공유한다니 ‘찬란한 봄’이 잔인한 사월로 가파르게 추락한다. 마음껏 호흡할 수 있는 청정 하늘을 되찾을 방법은 영영 없는가. 진달래 먹고 물장구치던 그 시절로 세월을 되돌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