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꽃가지 하나
매화 꽃가지 하나
by 권영상 작가 2018.04.05
그날 나는 강릉발 경주행 동해안 길에 들어섰지요. 굽이굽이 부드럽게 휘어지는 산모롱이를 돌면 숨겨놓은 바다가 불쑥불쑥 나타납니다. 바다는 마치 갓 날염한 실크처럼 새파랗게 펼쳐져 있네요. 4월 동해의 봄바다는 옥빛과 감청과 연청과 온통 연두지요.
이 길은 신라 성덕왕 시절 강릉 태수를 받은 순정공이 그의 아내 수로부인과 그리고 시종들과 함께 걸은 길입니다. 그때 그들은 경주에서 바닷길로 접어들어 강릉을 향하던 중에 병풍처럼 둘러친 벼랑 아래 볕 좋은 곳에서 점심을 들었지요. 그때도 지금의 4월처럼 바닷물색은 여전히 좋고, 해안의 봄빛도 눈부셨겠지요. 수로부인의 눈에 벼랑 위에 핀 고운 철쭉이 보였지요. 부인은 범할 수 없는 꽃을 탐해보지만 시종들은 고개를 젓습니다.
저곳은 가히 천 길은 되어 사람의 힘으로 오를 수 없다고 사양할 적에 그 곁을 지나던 한 노인이 있었지요. 이른바 견우 노인. 그가 절벽을 타고 올라 마침내 철쭉을 꺾어 부인에게 바쳤지요. ‘자줏빛 바윗가에/ 암소를 잡은 손 놓게 하시고/ 나를 부끄러워 않으시면/ 꽃을 꺾어 바치리다.’ 이 노래가 신라의 농염 가득한 헌화가지요. 해안가의 봄빛이 아름다우면 그 누구도 꽃을 탐하고 싶겠지요. 미색이 뛰어나고, 스스로의 미색을 아는 여인이라면 그쯤의 트집이거나, 앙탈이거라 탐심쯤이야 부려도 마땅히 아름다운 테지요.
그때가 신라로 볼 때는 국력이 꽃을 피우던 전성기였지요. 꿈꾸던 삼한 일통을 이루었고, 이래저래 내정을 간섭하던 당나라도 물러났지요. 백제의 부흥 세력도 제압했지요. 성덕왕은 중국의 정치제도를 수입하고 인재를 유학시켰지요. 왕은 스스로 무열왕 김춘추를 사모하였고, 김춘추의 든든한 우군 김유신이 그리워 그의 손자 김윤창을 관직에 앉혔으니 뭐 막힐 것 없이 행복한 봄날이었지요. 그런 무렵의 강릉 태수로 부임해 가는 순정공이나 그의 잘난 아내 수로부인이나 삶이 풍족하고 영혼이 막힌 데가 있을 리 없었겠지요.
그들 일행이 다시 밤낮을 가다가 삼척 임해정쯤에 다다랐을 때네요. 느닷없이 바다용이 나와 수로부인을 안고 바다 속으로 들어가 버리네요. 이 갑작스런 변고에 황망해할 때 또다시 노인 한 분이 나타나 말하기를 여럿이 노래 부른다면 아무리 거친 용도 여럿의 힘에 눌려 돌려보내 주리라 귀띔했지요. 이때 부른 노래가 ‘해가’인데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라./ 내지 않으면/ 구워먹으리라.’ 이지요. 노래를 마치자, 바다용은 부인을 떠받들고 나와 뭍에 내려놓고 가버렸는데, 부인의 몸에선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그윽한 향기가 나더라는 거지요. 황홀한 봄날, 봄빛에 취한 바다 풍경이 구름처럼 피어나는 이야깁니다.
그날, 나는 그들이 떠나온 경주에 차를 몰아 들어섰지요. 그때가 일몰의 시각. 황남대총 근방에 차를 두고 은행을 찾던 중에 붉은 일몰을 한 아름 안고 오는 할머니 한 분을 만났지요. 자세히 보니 그건 노을에 물든 매화꽃이었네요. 매화꽃을 안고 온 그 분이 날더러 ‘잡숴봐요.’하며 꽃 하나를 떼어 줍니다. 그 꽃을 입에 넣을 때 코를 쏘던 봄매화 향기를 동해가 아닌 경주 저잣거리에서 맛보았지요. 그 순간 꽃에 대한 탐심이 일었는데 내 마음을 알았는지 그분은 잘 핀 매화 한 가지를 주고 떠나갔습니다.
은행일을 다 보고 돌아 나올 때였지요. 매화나무가 여간 질긴 나무가 아닌데 노인께서 어떻게 가지를 꺾었을까.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그분이 예사분 같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신라 적 동햇가에서 수로부인이 만났던 그 4월 노인이었을까. 아니면 오래 나이를 먹은 수로부인의 다른 얼굴이었을까. 나는 괜히 그런 까마득한 옛일을 생각하며 하룻밤 묵을 경주의 숙소를 찾아 나섰습니다.
이 길은 신라 성덕왕 시절 강릉 태수를 받은 순정공이 그의 아내 수로부인과 그리고 시종들과 함께 걸은 길입니다. 그때 그들은 경주에서 바닷길로 접어들어 강릉을 향하던 중에 병풍처럼 둘러친 벼랑 아래 볕 좋은 곳에서 점심을 들었지요. 그때도 지금의 4월처럼 바닷물색은 여전히 좋고, 해안의 봄빛도 눈부셨겠지요. 수로부인의 눈에 벼랑 위에 핀 고운 철쭉이 보였지요. 부인은 범할 수 없는 꽃을 탐해보지만 시종들은 고개를 젓습니다.
저곳은 가히 천 길은 되어 사람의 힘으로 오를 수 없다고 사양할 적에 그 곁을 지나던 한 노인이 있었지요. 이른바 견우 노인. 그가 절벽을 타고 올라 마침내 철쭉을 꺾어 부인에게 바쳤지요. ‘자줏빛 바윗가에/ 암소를 잡은 손 놓게 하시고/ 나를 부끄러워 않으시면/ 꽃을 꺾어 바치리다.’ 이 노래가 신라의 농염 가득한 헌화가지요. 해안가의 봄빛이 아름다우면 그 누구도 꽃을 탐하고 싶겠지요. 미색이 뛰어나고, 스스로의 미색을 아는 여인이라면 그쯤의 트집이거나, 앙탈이거라 탐심쯤이야 부려도 마땅히 아름다운 테지요.
그때가 신라로 볼 때는 국력이 꽃을 피우던 전성기였지요. 꿈꾸던 삼한 일통을 이루었고, 이래저래 내정을 간섭하던 당나라도 물러났지요. 백제의 부흥 세력도 제압했지요. 성덕왕은 중국의 정치제도를 수입하고 인재를 유학시켰지요. 왕은 스스로 무열왕 김춘추를 사모하였고, 김춘추의 든든한 우군 김유신이 그리워 그의 손자 김윤창을 관직에 앉혔으니 뭐 막힐 것 없이 행복한 봄날이었지요. 그런 무렵의 강릉 태수로 부임해 가는 순정공이나 그의 잘난 아내 수로부인이나 삶이 풍족하고 영혼이 막힌 데가 있을 리 없었겠지요.
그들 일행이 다시 밤낮을 가다가 삼척 임해정쯤에 다다랐을 때네요. 느닷없이 바다용이 나와 수로부인을 안고 바다 속으로 들어가 버리네요. 이 갑작스런 변고에 황망해할 때 또다시 노인 한 분이 나타나 말하기를 여럿이 노래 부른다면 아무리 거친 용도 여럿의 힘에 눌려 돌려보내 주리라 귀띔했지요. 이때 부른 노래가 ‘해가’인데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라./ 내지 않으면/ 구워먹으리라.’ 이지요. 노래를 마치자, 바다용은 부인을 떠받들고 나와 뭍에 내려놓고 가버렸는데, 부인의 몸에선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그윽한 향기가 나더라는 거지요. 황홀한 봄날, 봄빛에 취한 바다 풍경이 구름처럼 피어나는 이야깁니다.
그날, 나는 그들이 떠나온 경주에 차를 몰아 들어섰지요. 그때가 일몰의 시각. 황남대총 근방에 차를 두고 은행을 찾던 중에 붉은 일몰을 한 아름 안고 오는 할머니 한 분을 만났지요. 자세히 보니 그건 노을에 물든 매화꽃이었네요. 매화꽃을 안고 온 그 분이 날더러 ‘잡숴봐요.’하며 꽃 하나를 떼어 줍니다. 그 꽃을 입에 넣을 때 코를 쏘던 봄매화 향기를 동해가 아닌 경주 저잣거리에서 맛보았지요. 그 순간 꽃에 대한 탐심이 일었는데 내 마음을 알았는지 그분은 잘 핀 매화 한 가지를 주고 떠나갔습니다.
은행일을 다 보고 돌아 나올 때였지요. 매화나무가 여간 질긴 나무가 아닌데 노인께서 어떻게 가지를 꺾었을까.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그분이 예사분 같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신라 적 동햇가에서 수로부인이 만났던 그 4월 노인이었을까. 아니면 오래 나이를 먹은 수로부인의 다른 얼굴이었을까. 나는 괜히 그런 까마득한 옛일을 생각하며 하룻밤 묵을 경주의 숙소를 찾아 나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