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의 밀밭
도심 속의 밀밭
by 권영상 작가 2018.03.29
가끔 가던 종로 5가 종묘가게가 사라지고 없다. 불현 마음이 허전해진다. 종묘가게가 들어있던 건물은 또 어떻게 바뀌고 말 건지, 신축공사용 가림막만 바람에 펄럭인다. 거기서 마 씨를 사고, 칸나며 토란, 백합과 이것저것 씨앗을 사고는 했다. 빈손으로 돌아오는 게 아쉬워 길에서 해바라기 씨앗 한 봉지를 사 들고 전철에 올랐다.
집 가까운 역에서 내려 평소에 다니던 길을 두고 햇빛 환한 이쪽 길을 택해 천천히 걸었다.
해바라기는 해마다 키우지만 해마다 씨앗 받을 시기를 놓친다. 새들이 나보다 먼저 손을 대기 때문이다. 곤줄박이, 박새, 멧새, 찌르레기가 그들이다. 그들은 나보다 해바라기 씨앗 여무는 일에 관심이 더 많다. 그러니 그들을 당할 재간이 없다.
오늘 이 해바라기 씨앗도 어쩌면 동네 새들에게 지어바칠 양식이 될지 모른다. 내가 심어 가꾼 것을 이렇게나마 그들에게 줄 수 있다는 게 고맙지 뭔가.
햇빛 드는 길을 걸어오다가 밀밭을 만났다. 이 번화한 도심에 밀밭이라니! 밀밭에 밀이 어느덧 파랗다. 삭막한 겨울 도시 풍경에 지친 내 눈이 싱그러워진다. 지난해 이 자리엔 여주가 주렁주렁 열었고, 보리가 패어 누렇게 익은 적이 있다. 이 자리란 한길 옆에 자리한 학습지 회사 고층 빌딩 마당이다. 그 넉넉한 마당에 대여섯 평짜리 밭이 있다. 검정 대리석을 쌓아올려 만든 일종의 화단 같은 밭이다.
“여어! 이 파란 밀 좀 보아!"
나 말고 지나가던 두 명의 사내가 성큼성큼 다가온다. 그들은 이 조그만 밀밭을 둘러보며 아득한 그 옛날의 이야기를 꺼낸다.
“김 부장님, 예전 어렸을 때 말이지요. 학교 갔다 오다 배고프면 밀이삭을 꺾어 손바닥으로 비며 입에 털어 넣곤 했잖아요.” 그러며 양손으로 밀이삭 비비는 모습을 지어 보인다.
그 말 끝으로 그 김 부장이란 이도 자신의 아련한 과거를 꺼낸다. “밀밭엔 종달새 집이 많았어. 종달새를 잡겠다고 실로 홀치기를 해 놓고 한나절을 기다렸던 적이 있지.” 그들이 이 조각보만 한 밀밭을 앞에 두고 그리움에 젖는다. 종달새를 잡겠다며 허리를 잔뜩 숙여 밀밭 이랑을 드나들던 일을, 이 도심의 빌딩 앞에서 문득 떠올린다.
그들은 휴대폰을 꺼내 밀이랑의 파란 밀을 찍고 떠난다. 밀이삭을 부벼 밀을 먹어봤다는 두 사내가 남부터미널역 방향으로 걸어간다. 그들은 지금 도회의 빌딩 그늘을 걷고 있지만 지금 그들의 마음은 그들이 두고 온 아늑한 고향 언덕이나 들판을 걷고 있을지도 모른다. 휴대폰 카메라에 찍어간 밀을 보며 저녁엔 자신의 아이들에게 그들의 고향 봄 언덕을 이야기해 줄지도 모른다.
나는 고개를 치켜들고 하늘을 쳐다본다. 푸른 하늘에 숨어있던 종달새가 곤두박질치듯 수직으로 날아내려올 것 같다. 어제 비가 내렸다. 예전 종달새가 살던 그 하늘처럼 지금 하늘이 파랗다. 그러나 지금은 종달새도 사라지고, 추억만 가물가물하다.
안성에 내려가면 오랍뜰 텃밭에 지난해처럼 빙 둘러가며 해바라기를 심어야겠다. 가끔 꽃들 대신 보리씨나 밀씨를 좀 심어봤으면 해도 이제는 그런 곡물 씨앗 구하기가 어렵다.
집 가까운 역에서 내려 평소에 다니던 길을 두고 햇빛 환한 이쪽 길을 택해 천천히 걸었다.
해바라기는 해마다 키우지만 해마다 씨앗 받을 시기를 놓친다. 새들이 나보다 먼저 손을 대기 때문이다. 곤줄박이, 박새, 멧새, 찌르레기가 그들이다. 그들은 나보다 해바라기 씨앗 여무는 일에 관심이 더 많다. 그러니 그들을 당할 재간이 없다.
오늘 이 해바라기 씨앗도 어쩌면 동네 새들에게 지어바칠 양식이 될지 모른다. 내가 심어 가꾼 것을 이렇게나마 그들에게 줄 수 있다는 게 고맙지 뭔가.
햇빛 드는 길을 걸어오다가 밀밭을 만났다. 이 번화한 도심에 밀밭이라니! 밀밭에 밀이 어느덧 파랗다. 삭막한 겨울 도시 풍경에 지친 내 눈이 싱그러워진다. 지난해 이 자리엔 여주가 주렁주렁 열었고, 보리가 패어 누렇게 익은 적이 있다. 이 자리란 한길 옆에 자리한 학습지 회사 고층 빌딩 마당이다. 그 넉넉한 마당에 대여섯 평짜리 밭이 있다. 검정 대리석을 쌓아올려 만든 일종의 화단 같은 밭이다.
“여어! 이 파란 밀 좀 보아!"
나 말고 지나가던 두 명의 사내가 성큼성큼 다가온다. 그들은 이 조그만 밀밭을 둘러보며 아득한 그 옛날의 이야기를 꺼낸다.
“김 부장님, 예전 어렸을 때 말이지요. 학교 갔다 오다 배고프면 밀이삭을 꺾어 손바닥으로 비며 입에 털어 넣곤 했잖아요.” 그러며 양손으로 밀이삭 비비는 모습을 지어 보인다.
그 말 끝으로 그 김 부장이란 이도 자신의 아련한 과거를 꺼낸다. “밀밭엔 종달새 집이 많았어. 종달새를 잡겠다고 실로 홀치기를 해 놓고 한나절을 기다렸던 적이 있지.” 그들이 이 조각보만 한 밀밭을 앞에 두고 그리움에 젖는다. 종달새를 잡겠다며 허리를 잔뜩 숙여 밀밭 이랑을 드나들던 일을, 이 도심의 빌딩 앞에서 문득 떠올린다.
그들은 휴대폰을 꺼내 밀이랑의 파란 밀을 찍고 떠난다. 밀이삭을 부벼 밀을 먹어봤다는 두 사내가 남부터미널역 방향으로 걸어간다. 그들은 지금 도회의 빌딩 그늘을 걷고 있지만 지금 그들의 마음은 그들이 두고 온 아늑한 고향 언덕이나 들판을 걷고 있을지도 모른다. 휴대폰 카메라에 찍어간 밀을 보며 저녁엔 자신의 아이들에게 그들의 고향 봄 언덕을 이야기해 줄지도 모른다.
나는 고개를 치켜들고 하늘을 쳐다본다. 푸른 하늘에 숨어있던 종달새가 곤두박질치듯 수직으로 날아내려올 것 같다. 어제 비가 내렸다. 예전 종달새가 살던 그 하늘처럼 지금 하늘이 파랗다. 그러나 지금은 종달새도 사라지고, 추억만 가물가물하다.
안성에 내려가면 오랍뜰 텃밭에 지난해처럼 빙 둘러가며 해바라기를 심어야겠다. 가끔 꽃들 대신 보리씨나 밀씨를 좀 심어봤으면 해도 이제는 그런 곡물 씨앗 구하기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