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체면치레 비용

체면치레 비용

by 이규섭 시인 2018.03.09

경조사비 때문에 아내와 다툰다. “받은 만큼 해야 한다”는 아내의 집요한 주장과 “현실에 맞게 조절해야 한다”는 나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 언성을 높이고 얼굴을 붉히게 된다. 몇 해 전 처제 아들 결혼식을 앞두고는 언쟁이 심했다. 김영란법 시행 전 아들 결혼식 때 처제로부터 받은 축의금은 경조사비 상한선의 몇 배가 된다. 개혼에다 퇴직한 것을 고려한 축의금으로 짐작된다. 몇 년이 흘렀다. “지금은 고정 수입도 없는 데 형편에 맞게 하면 안 되겠느냐”고 넌지시 의사를 타진했더니 “받은 만큼 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아서다.
자매지간에도 보이지 않는 자존심은 있게 마련이다. 더구나 언니 입장에서 더 보태 축의금을 내지 못할망정 줄여서는 안 된다는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받은 만큼 하는 게 관혼상제의 불문율이고 체면치레지만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다. 친인척 결혼식이 다가오면 비슷한 사례가 되풀이 되어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는다. 현직 때 받은 경조사비 금액만큼 은퇴 후에 빚 갚듯 되갚음 한다는 게 신경 쓰이고 부담스럽다.
퇴직한지 10여 년이 지났어도 전직 사우들의 경조사 문자 메시지를 수시로 받는다. 친교에 따라 참석 여부와 부조금을 결정하면 되니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가끔 평소 연락조차 없이 지내던 후배로부터 청첩장을 받으면 “참석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난감하다. 기억해주고 주소를 확인하여 청첩장을 보내 준 성의를 외면하긴 어렵다. 사우회에서 주소록을 챙겨 청첩장을 남발하는 경우도 있다. 오면 다행이고, 안 오면 그만이라는 얌체 근성이다. 어떤 이는 애경사 다 챙겨 부조금을 받은 뒤 사우회에 발길을 끊어 구설수에 오르기도 한다. 체면치레와는 거리가 먼 후안무치다.
고급호텔에서 호화롭게 하는 결혼식은 부담된다. 친인척과 가까운 지인들을 초대하여 축의금과 화환을 정중히 사양하는 사례는 흐뭇하다. 전화로 “몇 사람만 특별히 알려 드린다”고 하여 참석해보면 축의금 접수대가 있어 실망도 한다. 이런 경우 호텔 피로연 식사비는 무시하고 내 형편대로 낸다.
경조사비는 상부상조의 공동체 문화다. 목돈이 들어가는 경조사에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의미에서 십시일반으로 내는 부조는 면면히 이어온 미풍양속이다. 어릴 적 고향에서는 경조사 때 현금이 아니라 막걸리, 떡, 식혜, 고기 등 살림살이 형편에 맞게 성의를 표시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허례허식과 낭비가 따르다 보니 가정의례준칙을 법률로 제정하여 규제했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뿌리 깊은 유교적 관혼상제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부정청탁이나 금품수수를 막으려 만든 ‘김영란법’도 비현실적이란 논란 속에 시행 1년 만에 개정했으나 비현실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체면을 중시하는 고비용 혼례문화가 몇 년 새 가족 중심의 작은 결혼식으로 바뀌는 추세라 다행이다. 모바일 청첩장에 주례 없는 결혼식 등 절차도 많이 변하고 간소화됐다. 호화 결혼식이 행복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듯, 축의금 액수가 체면을 세워 주는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