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외로움 전염병’ 예방하려면

‘외로움 전염병’ 예방하려면

by 이규섭 시인 2018.01.26

나이 들면 기억력이 깜빡깜빡한다. ‘깜빡등’을 가동해도 잘 떠오르지 않을 때가 많다. 모임 날짜를 깜빡 잊거나 엉뚱한 곳에서 기다릴 때도 있다. 대안으로 떠오른 게 줄임말을 이용한 만남 요일 정하기다. ‘이금오’는 매월 두 번째 금요일 오후 다섯 시에 만난다. ‘삼목회’는 세 째 주 목요일 만나는 모임이다. ‘사월회’는 넷째 주 월요일이다. 기억하기 쉬워 잊지 않는다.
약속 장소도 헷갈림 방지를 위해 가능하면 변동하지 않는다. 옛 직장 부근이나 평소 잘 가는 도심 음식점으로 정한다. 회식비는 더치페이하니 부담이 적다. 소통하고 대화할 모임이 있어 외로움을 덜 타게 된다.
나이 들면 무관심이 무섭다. 세상으로부터 멀어지고 소외되는 것 같아 씁쓸해진다. 할 일이 없어지면 무기력해지고 우울증도 생긴다. 배우자와 사별하거나 자식들에게 외면 받아 홀로 사는 노인들의 외로움이야 오죽하겠는가. 경로당에서 어울려 있다가 귀가하여 텅 빈 방에 홀로 앉아 있으면 밀물져 오는 외로움에 겨울밤이 더 길게 느껴진다는 하소연도 들었다.
우리나라 독거노인은 133만 명(2017년)이다. 외로움과 가난을 견디지 못해 자살하거나 사회에 대한 분노가 범죄로 이어지기도 한다. 더욱 끔찍한 것은 해마다 늘어나는 고독사다. 지난 연말 오피스텔에서 혼자 살던 여배우가 사망한지 2주 만에 발견된 것은 고독사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다.
사별과 이혼으로 홀로 사는 이들이 많아 ‘단신(單身)사회’로 불리는 일본에는 안부전화 걸어주는 기업과 유품정리 회사가 성업 중이라고 한다. 독거노인이 모여 사는 ‘노인 홈’ 분양 광고가 신문을 장식한다. 고독사 보험상품도 나왔다. 복지공무원을 포함한 우편·신문배달원, 가스점검원이 고독사 징후를 확인하면 신고하도록 제도화한지 오래됐다.
현대사회의 전염병 같은 외로움은 영국도 예외는 아닌가보다. 외로움은 하루 담배 15개비 흡연만큼 해롭다는 보고서를 낸 것도 영국이다. 적십자사 조사 결과 인구 6500만 명 가운데 900만 명이 외로움을 느낀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약 20만 명의 노인들이 한 달 이상 친구나 친척과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노인 300만 명은 텔레비전을 가장 친한 동반자로 꼽았다. 외로움 증후군이 늘자 메이저 총리는 최근 외로움 담당 장관을 신설했다.
체육·시민사회장관이 외로움 문제 담당 장관을 겸직토록 임명했다. 외로움 담당 장관은 무슨 일 할지 궁금하다. 2016년 6월 극우 성향의 남성에게 살해당한 조 콕스 의원이 생전에 주도해온 외로움 대처 방안을 정책으로 연계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회적 고립을 겪는 이들의 실태를 살피고, 외로움 관련 전략을 마련하는 역할을 맡는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속마음을 털어놓는 모바일 앱 등 외로움 관리 사업이 떠오르는 추세다. 감정을 치료해주는 로봇이 등장했다. 홀로 사는 노인들의 안부를 확인하는 시스템만 제대로 구축해도 고독사는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그들과 소통할 다양한 대화 채널을 늘리면 노후의 외로움 전염병 예방에 큰 도움이 될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