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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년 개띠 인생2막

58년 개띠 인생2막

by 이규섭 시인 2018.01.12

‘죽음도 물에 빠지면 한번 더 살고 싶다/ 바닥은 끝이라는데 파면 또 바닥이다/ 한강을 건너왔는데 부레가 없어졌다 씹다 뱉은 욕들이 밥컵 속에 붙어 있다/ 눈알이 쓰라린데 소화제를 사먹는다/ 위장은 자꾸 작아지고 눈꺼풀은 이미 없다 안부를 고르라는 전화를 또 받는다/ 안쪽을 물었는데 자꾸 밖이 보인다/ 옆줄을 볼펜으로 찍었다 적절하지 않았다’
올해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조성국 씨의 ‘노량진’이다. 1958년 서울 출생. 前 국민일보 기자. 두 행의 짧은 약력과 이름, 눈에 익은 얼굴이 잉크 냄새와 함께 신선하게 다가온다. “환갑 나이에 일을 냈군” 속으로 중얼거리며 찬찬히 읽는다. ‘바닥은 끝이라는데 파면 또 바닥’이고 ‘부레가 없어졌다’는 노량진 학원가 취준생들의 처연함이 ‘씹다 뱉은 욕’처럼 심상에 와 닫는다. 심사를 맡은 정수자 시조시인은 ‘포장된 희망보다 바닥을 파는 치열함’을 높게 평가했다. ‘대구(對句)의 독특한 구사도 주목된다’고 추켜세웠다.
문장의 대구와 반어(反語)가 (신문)쟁이 출신답다. 기사 제목도 대구와 반어는 독자에게 강하게 어필된다. 김수환 추기경이 소천 했을 때 ‘사람은 가도 사랑은 남아’ 제목은 지금도 기억에 뚜렷하다. 최근 합당 내분을 겪는 야권 기사 제목을 ‘하여가 VS 단심가’로 고시조를 인용한 제목이 눈길을 끄는 것도 마찬가지다.
조성국 씨의 당선소감은 겉치레가 추억의 책갈피 속에서 꺼낸 아릿한 기억이 정겹고 짠하다. 가을운동회 때 ‘포장마차 문 닫고 응원 나온 어무니 아부지, 맨 앞줄에서 국수가락 같은 손가락 정신 사납게 흔드는데 아이는 꼴찌로 달립니다’는 가을동화 같다. 부끄러운 건 아니지만 자랑스러울 것도 가족사가 진솔하게 묻어난다. ‘자빠져 무릎 깨지지 않아 괜찮다 괜찮다’하며 짜장면과 탕수육을 사줬다. 그 꼴찌가 늘그막에 결승점 구경이나 할 수 있을까 했던 마라톤에서 1등을 했다고 자랑하며 ‘어무니 아부지, 조금 더 달리다가 찾아뵙겠습니다. 짬뽕에 유산슬 사주세요.’ 응석을 부릴만하다.
그는 이미 문예지를 통해 시조시인으로 등단한 기성 문인이다. 탄탄한 문장력을 바탕으로 현장 취재 때도 두각을 드러냈다. 언론계를 떠나 논술학원을 운영하며 글쓰기를 업으로 삼았다. 축하 전화를 걸었다. “당선작 ‘노량진’의 울림이 크다. 당선소감도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고 덕담을 건넸다. “선배, 쑥스럽게 해 그러세요” 겸양해 한다. “여전히 학원을 운영하느냐?” 물었더니 “나이도 있고 그만뒀다”고 한다. “선배 개띠 앞에 나이타령이냐”고 했더니 “아니 벌써∼, 지팡이 짚고 다니시겠네∼”능청스레 받아넘긴다. 환갑나이에 스스로를 재평가 해보려는 도전정신이 아름답고 결과가 빛난다.
58년 개띠는 시대의 아이콘이다. 베이비붐 세대의 상징이자 ‘3저 호황’의 혜택을 누리고 IMF 직격탄을 맞는 등 부침이 심했다. 신산스러운 세월의 격랑을 헤치고 살아온 지혜와 저력을 바탕으로 100세 시대 인생2막도 알차게 채워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