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이 사람을 키우는 것은 어떤 경우인가?!
동물이 사람을 키우는 것은 어떤 경우인가?!
by 정운 스님 2018.01.09
필자는 형제가 5형제다. 내가 어렸을 당시는 대부분 형제들이 4~5명은 되었다. 그 이전 세대에는 10명의 자식을 낳은 분들도 적지 않았다. ‘사람은 자기 먹을 복은 다 갖고 태어나는 법’이라는 우리나라 옛말에 있을 정도로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다 살아가게 되어 있다는 말이다. 옛날 부모들은 그렇게 많은 자식을 낳고 키우면서도 자식들에게 올인했다. 물론 사회적으로 물질적으로 시대가 그러했겠지만, 부모가 자식을 낳았으니 당연히 희생하는 것을 우리 조상들은 숙명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숙명을 거스르는 일이 근자에 자주 발생한다. 매년 6~7살 아이들이 친부나 친모에 의해, 혹은 의붓 부모들에 의해 혹독한 고통을 겪은 뒤 끝내 죽임을 당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뉴스를 접하면서 ‘인간이 왜 저렇게 사악할까?’라는 의문점이 들 정도이다. 물론 지나치게 자기 자식을 사랑해서 남의 자식을 함부로 대하는 경우도 욕먹을 일이지만, 그래도 이런 점은 억지로나마 이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부부가 이혼하면서 부모로부터 어린아이가 겪는 고통은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거니와 그런 부모는 인간이기를 거부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그렇지 않은 부모와 의붓 부모가 있는데, 그분들에게 죄송하다).
TV에서 동물의 생활을 보면, 특이한 동물들이 있다. 언젠가 기묘한 방송을 본 적이 있다. 호랑이 어미가 갑자기 죽자, 어미 개가 다섯 마리 새끼 호랑이들을 기르는 내용이다. 어미 개가 새끼 호랑이들을 자기 숙소로 물어서 데려가는 도중 한 마리는 다리 건너다가 물에 빠져 익사하였지만, 나머지 새끼 호랑이 네 마리가 오랫동안 개에 의해서 길러졌다. 또 동물 프로그램에서 어미 고양이가 강아지에게 젖을 먹이며 자기 새끼처럼 보살피는 내용이었다. 사람들이 다가가 강아지를 보려고 하면, 고양이는 강아지를 보호하려고 예민한 반응을 보이기도 하였다. 또 수십여 년 전에는 해외에서 늑대나 원숭이가 소녀를 키운 경우도 있었다. 또 호랑이가 5년간 소녀를 키웠는데, 사냥꾼이 발견하여 세상에 나왔고, 그녀는 가정을 갖고 생활하고 있다. 그녀는 훗날 이라는 책을 출판하기도 하였다.
불교 경전 <육방예경>에 이런 내용이 있다. “부모는 자식을 이렇게 사랑해야 한다. 자식의 악한 행동을 막는 것이고, 훈육하며, 그 사랑이 뼈 속까지 스며들게 하고, 자식을 위해 좋은 배필을 구해주는 것이며, 꼭 필요한 때에 경제적인 뒷받침이 되어주는 것이다.”
위의 문구는 경전이 아닌 일반적으로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다. 그런데 왜 종교 경전에 이런 문구가 있을까? 동물보다 못한 인간이 있기 때문이다. 동물도 자기 새끼를 함부로 하지 않거니와 축생도 측은지심이 있어 자신과 다른 종의 동물을 보살피기도 한다.
모든 생명은 소중한 것이요, 아이는 아이 대접을 받으며 응석받이로 커야 한다. 매질이나 학대로 공포에 떨다 죽게 하는 일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도 서양처럼 주변 사람들이 고발조치를 취하는 것도 괜찮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남의 자식이라고 할 것이 아니라 아이는 ‘우리 모두의 자식’이라는 생각으로 서로서로 보살펴주면 어떨까? 간절히 이러기를 발원한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숙명을 거스르는 일이 근자에 자주 발생한다. 매년 6~7살 아이들이 친부나 친모에 의해, 혹은 의붓 부모들에 의해 혹독한 고통을 겪은 뒤 끝내 죽임을 당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뉴스를 접하면서 ‘인간이 왜 저렇게 사악할까?’라는 의문점이 들 정도이다. 물론 지나치게 자기 자식을 사랑해서 남의 자식을 함부로 대하는 경우도 욕먹을 일이지만, 그래도 이런 점은 억지로나마 이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부부가 이혼하면서 부모로부터 어린아이가 겪는 고통은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거니와 그런 부모는 인간이기를 거부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그렇지 않은 부모와 의붓 부모가 있는데, 그분들에게 죄송하다).
TV에서 동물의 생활을 보면, 특이한 동물들이 있다. 언젠가 기묘한 방송을 본 적이 있다. 호랑이 어미가 갑자기 죽자, 어미 개가 다섯 마리 새끼 호랑이들을 기르는 내용이다. 어미 개가 새끼 호랑이들을 자기 숙소로 물어서 데려가는 도중 한 마리는 다리 건너다가 물에 빠져 익사하였지만, 나머지 새끼 호랑이 네 마리가 오랫동안 개에 의해서 길러졌다. 또 동물 프로그램에서 어미 고양이가 강아지에게 젖을 먹이며 자기 새끼처럼 보살피는 내용이었다. 사람들이 다가가 강아지를 보려고 하면, 고양이는 강아지를 보호하려고 예민한 반응을 보이기도 하였다. 또 수십여 년 전에는 해외에서 늑대나 원숭이가 소녀를 키운 경우도 있었다. 또 호랑이가 5년간 소녀를 키웠는데, 사냥꾼이 발견하여 세상에 나왔고, 그녀는 가정을 갖고 생활하고 있다. 그녀는 훗날 이라는 책을 출판하기도 하였다.
불교 경전 <육방예경>에 이런 내용이 있다. “부모는 자식을 이렇게 사랑해야 한다. 자식의 악한 행동을 막는 것이고, 훈육하며, 그 사랑이 뼈 속까지 스며들게 하고, 자식을 위해 좋은 배필을 구해주는 것이며, 꼭 필요한 때에 경제적인 뒷받침이 되어주는 것이다.”
위의 문구는 경전이 아닌 일반적으로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다. 그런데 왜 종교 경전에 이런 문구가 있을까? 동물보다 못한 인간이 있기 때문이다. 동물도 자기 새끼를 함부로 하지 않거니와 축생도 측은지심이 있어 자신과 다른 종의 동물을 보살피기도 한다.
모든 생명은 소중한 것이요, 아이는 아이 대접을 받으며 응석받이로 커야 한다. 매질이나 학대로 공포에 떨다 죽게 하는 일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도 서양처럼 주변 사람들이 고발조치를 취하는 것도 괜찮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남의 자식이라고 할 것이 아니라 아이는 ‘우리 모두의 자식’이라는 생각으로 서로서로 보살펴주면 어떨까? 간절히 이러기를 발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