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나무 사이

나무 사이

by 강판권 교수 2018.01.08

갈잎나무의 겨울 모습은 ‘사이[間]’의 철학을 담고 있다. ‘사이’는 여러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사이는 ‘틈’을 의미한다. 틈은 ‘사이가 좋다’ ‘사이가 좋지 않다’는 표현에서 보듯이 상황에 따라 좋을 수도 있고, 좋지 않을 수도 있다. 틈은 간격이다. 간격은 떨어져 있거나 막혔다는 뜻이다. 떨어져 있거나 막히면 좋을 수도 있고, 좋지 않을 수도 있다. 틈을 의미하는 ‘간’은 큰 문 사이로 빛이 들어오는 글자다. 빛이 들어오면 좋을 수도 있지만 좋지 않을 수도 있다. 문제는 틈을 바라보는 사람의 생각에 달렸다. 어떤 사람은 누군가 떨어져 있고 싶지만 어떤 사람은 떨어져 있는 것을 싫어한다. 어떤 경우에는 빛이 들어와야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빛이 들어오지 말아야 한다. 사이는 ‘이간질’을 뜻한다. 친밀한 관계를 떼어놓는 것이 이간질이다.
겨울의 갈잎나무는 틈의 긍정적인 측면을 보여준다. 잎이 떨어지면 갈잎나무는 사이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갈잎나무의 틈은 가지와 가지다. 물론 나무는 처음부터 가지와 가지 사이를 만든다. 그래야만 잎을 만들고, 잎을 만들어야 광합성을 해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잎이 떨어지면 가지와 가지 사이를 통해 다른 존재까지 볼 수 있다. 예컨대 느티나무의 경우 잎이 무성하면 가지와 가지 사이를 정확하게 볼 수도 없거니와 가지 사이를 통해 다른 나무를 볼 수 없다.
틈은 여유다. 여유는 다른 것과 떨어져야 얻을 수 있다. 떨어지면 외롭다. 그러나 외롭지 않으면 자신을 만날 시간이 부족하다. 갈잎나무의 겨울은 자신과 만나는 시간이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홀로 서 있는 모습은 무척 외로워 보이지만 성장을 위한 수행과정이다. 사람에게 여유가 필요한 것도 성장을 위한 시간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성장은 키나 몸무게의 변화만이 아니라 내면의 성숙을 의미한다. 내면의 성숙이 중요한 것은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내면의 성숙은 자신에 대한 만족도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틈이 부족한 삶에 익숙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한다. 틈은 기본적으로 나무의 삶에서 보듯이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상대방이 주는 틈은 언제나 한계가 있다. 물론 국가와 사회에서도 개인에게 틈을 줘야만 한다. 그러나 여유는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전적으로 상대방에게 기대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여유는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자만이 진정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문 사이로 들어온 햇살이 어둠과 습기를 걷어내듯이, 자신에게도 틈을 줘야 새로운 한 해로 만들 수 있다. 언제나 새해는 찾아오지만 스스로 여유를 만들지 못하면 새롭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