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 카드 다섯 장
송년 카드 다섯 장
by 권영상 작가 2017.12.14
잠결인 듯 눈 가래질 소리에 깨었다. 아파트 마당에 펑펑 눈 내린다. 그 눈을 내다보고 있으려니 잠잠하던 가슴이 뛴다. 올겨울은 시작부터 눈이 많다. 목도리를 하고 눈 내리는 바깥에 나선다. 옷에 눈 떨어지는 소리가 털썩털썩한다.
눈 내리는 소나무 숲길에 들어서니 먼데 있는 사람들이 그립다. 만나지는 못해도 인편으로 소식을 듣는, 나이를 먹어도 잊혀지지 않는 그들이 생각난다. 한 바퀴 산을 돌아오는 길에 초등학교 앞 문방구에 들렀다. 그 집 주인이 가게 앞 눈을 치운다. 아이들이 쓰는 두꺼운 도화지를 한 장 샀다. 카드를 만들 건데 빈 봉투를 살 수 있느냐고 물었다.
“요즘 그런 거 만드는 사람 없잖아요.”
그런다. 괜히 조금 부끄럽다. 나는 문방구에 진열해 놓은 크리스마스카드를 살펴보다가 돌아섰다. 돌아오며 카드의 크기며 그려 넣을 그림이며 글귀를 생각했다. 이 일이 잘 되든 안 되든 한번 저질러 보는 일은 즐겁다. 카드 크기는 집에 한 묶음이나 있는 봉함편지 봉투 크기에 맞추기로 했다. 그림은 집에 들어설 때쯤에야 생각났는데 눈이 또록또록한 참새 둘, 그리고 붉은 모란 한 송이. 계절에 맞지 않기는 해도 바지런을 떠는 참새와 넉넉한 모란이 좋을 것 같았다.
집에 오는 대로 종이를 잘랐다. 다섯 장! 보내드릴 사람을 다섯 분으로 정했다. 아내의 그림물감과 붓을 빌려 서툴지만 아침을 쪼아 물어오는 참새 두 마리와 탐스러운 모란을 그렸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소재가 그런대로, 그 엉성함과 그 어눌함으로 인하여 서로 잘 맞았다. 가는 붓에 물감을 묻혀 메리 크리스마스니 근하신년이라는 표제 대신 ‘지난해를 감사히 쓰고 새해를 소중히 받으며’라고 썼다. 그리고는 그 안쪽 속지에 받는 분들의 하시는 일을 축원하고 그분들의 건강을 기원하는 글을 썼다. 모두 넉 장. 써놓고 보아도 악필인 내 글씨가 그리 밉지 않다.
나는 마지막으로 남은 한 장을 집 밖에 나가 사는 딸아이에게 보내기로 했다. 공부를 한다고 벌써 여러 해를 바람 부는 객지에서 살고 있다. 나는 딸아이에게 자상하지 못한 아빠다. 말은 많이 하는 편이지만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말을 못한다. 아빠 노릇을 하려고만 하지 정작 은근한 말로 용기를 불어 넣어주는 부드럽고 잔잔한 아빠 노릇은 못해 왔다.
좀은 부끄러웠지만 나는 내 모습 그대로의 글 몇 줄을 썼다. 써놓고 보니 또 말만 많아졌지 여전히 내가 바라던 자상한 아빠의 글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거기서 글을 마쳤다. 지금 내가 다 하지 못한 그 모자라는 부분은 딸아이가 미루어 짐작하며 읽기를 바랄 뿐이다.
카드에 그린 물감이 마를 때를 기다리며 편지봉투에 받는 이의 이름과 주소를 찾아 적고, 컴퓨터를 켜 우편번호를 찾고, 우표를 꺼내 붙였다. 카드를 봉투에 넣었다. 아직도 남은 한 가지가 더 있다. 편지를 넣으러 우체국에 가는 일이다. 이 모든 일이 번거롭다면 번거롭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번거롭기를 자청했으니 이 일이 즐겁다.
한때는 쉰 여장씩 카드를 만들어 보내던 이 즐거움도 잊으며 살아온 지 오래다. 그동안 나의 인생도 그만큼 심심해졌을지 모른다. 지난 새해에 받은 삼백서른 날을 감사히 잘 썼다. 그리고 내게 올 그 누구도 손대지 않은 깨끗한 삼백서른 날을 경건히 기다린다.
눈 내리는 소나무 숲길에 들어서니 먼데 있는 사람들이 그립다. 만나지는 못해도 인편으로 소식을 듣는, 나이를 먹어도 잊혀지지 않는 그들이 생각난다. 한 바퀴 산을 돌아오는 길에 초등학교 앞 문방구에 들렀다. 그 집 주인이 가게 앞 눈을 치운다. 아이들이 쓰는 두꺼운 도화지를 한 장 샀다. 카드를 만들 건데 빈 봉투를 살 수 있느냐고 물었다.
“요즘 그런 거 만드는 사람 없잖아요.”
그런다. 괜히 조금 부끄럽다. 나는 문방구에 진열해 놓은 크리스마스카드를 살펴보다가 돌아섰다. 돌아오며 카드의 크기며 그려 넣을 그림이며 글귀를 생각했다. 이 일이 잘 되든 안 되든 한번 저질러 보는 일은 즐겁다. 카드 크기는 집에 한 묶음이나 있는 봉함편지 봉투 크기에 맞추기로 했다. 그림은 집에 들어설 때쯤에야 생각났는데 눈이 또록또록한 참새 둘, 그리고 붉은 모란 한 송이. 계절에 맞지 않기는 해도 바지런을 떠는 참새와 넉넉한 모란이 좋을 것 같았다.
집에 오는 대로 종이를 잘랐다. 다섯 장! 보내드릴 사람을 다섯 분으로 정했다. 아내의 그림물감과 붓을 빌려 서툴지만 아침을 쪼아 물어오는 참새 두 마리와 탐스러운 모란을 그렸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소재가 그런대로, 그 엉성함과 그 어눌함으로 인하여 서로 잘 맞았다. 가는 붓에 물감을 묻혀 메리 크리스마스니 근하신년이라는 표제 대신 ‘지난해를 감사히 쓰고 새해를 소중히 받으며’라고 썼다. 그리고는 그 안쪽 속지에 받는 분들의 하시는 일을 축원하고 그분들의 건강을 기원하는 글을 썼다. 모두 넉 장. 써놓고 보아도 악필인 내 글씨가 그리 밉지 않다.
나는 마지막으로 남은 한 장을 집 밖에 나가 사는 딸아이에게 보내기로 했다. 공부를 한다고 벌써 여러 해를 바람 부는 객지에서 살고 있다. 나는 딸아이에게 자상하지 못한 아빠다. 말은 많이 하는 편이지만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말을 못한다. 아빠 노릇을 하려고만 하지 정작 은근한 말로 용기를 불어 넣어주는 부드럽고 잔잔한 아빠 노릇은 못해 왔다.
좀은 부끄러웠지만 나는 내 모습 그대로의 글 몇 줄을 썼다. 써놓고 보니 또 말만 많아졌지 여전히 내가 바라던 자상한 아빠의 글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거기서 글을 마쳤다. 지금 내가 다 하지 못한 그 모자라는 부분은 딸아이가 미루어 짐작하며 읽기를 바랄 뿐이다.
카드에 그린 물감이 마를 때를 기다리며 편지봉투에 받는 이의 이름과 주소를 찾아 적고, 컴퓨터를 켜 우편번호를 찾고, 우표를 꺼내 붙였다. 카드를 봉투에 넣었다. 아직도 남은 한 가지가 더 있다. 편지를 넣으러 우체국에 가는 일이다. 이 모든 일이 번거롭다면 번거롭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번거롭기를 자청했으니 이 일이 즐겁다.
한때는 쉰 여장씩 카드를 만들어 보내던 이 즐거움도 잊으며 살아온 지 오래다. 그동안 나의 인생도 그만큼 심심해졌을지 모른다. 지난 새해에 받은 삼백서른 날을 감사히 잘 썼다. 그리고 내게 올 그 누구도 손대지 않은 깨끗한 삼백서른 날을 경건히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