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부모의 홀로서기

부모의 홀로서기

by 이규섭 시인 2017.11.24

여자의 적은 여자이고, 시어머니 시집살이가 맵다 해도 홀시아버지 모시기가 더 힘들다고 한다. 아내는 맨손으로 벼랑박 타기보다 어렵다는 홀시아버지를 20년 가까이 모셨다. 시아버지가 까탈스럽진 않아도 끼니를 챙기고 수발한다는 것은 녹록지 않다. 눈치 빠른 아버지는 점심은 경로당에서 가끔씩 해결하고 며느리 눈에 거슬리는 언행은 자제했다. 아들은 직장생활에 바쁘다는 핑계로 살갑게 대하지 못하고 데면데면했다. 아파트로 이사 갈 기회가 있었으나 아버지가 불편할까 봐 단독 주택을 고수했다.
말년엔 뇌졸중으로 한쪽 다리가 불편하여 화장실 출입마저 버거웠다. 병원서 돌아가시면 객사(客死)라 하여 집에서 병수발을 했다. 서둘러 퇴근한 춘삼월 어느 날 초저녁, 아버지는 “물 좀 달라”신다. 보리차를 몇 숟가락 떠 넣어 드렸더니 입술을 축이고 자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 여든여섯 해로 이승의 삶을 마감했다. 장례도 집에서 유교 관례로 치렀다. 장의차로 고향까지 간 뒤 마을 어귀에서 장지까지 꽃상여로 운구하여 어머니 무덤 옆에 모셨다.
자식이 노후의 부모를 모시는 것은 당연한 의무로 여겼다. 전통적인 부양의 대물림이 무너지면서 부모 부양은 가족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의 책임으로 보는 인식이 점차 확산되고 있어 세태의 변화를 실감한다.
노부모는 자식이 모셔야 한다는 인식이 1998년에는 10명 중 9명이었으나 2016년에는 10명 중 3명으로 줄었다. 20년이 채 안 되는 사이 부모 부양에 대한 인식이 크게 변했다. 최근 보건사회연구원의 ‘사회변화에 따른 가족 부양환경과 정책과제 보고서’에 드러난 현상이다. 소가족화, 핵가족화로 가족주의가 약화된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면서 부모 모시기가 어렵다. 복지정책 확대 등 사회규범이 변한 영향도 있다. 정부도 ‘부양의무자 기준’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는 계획이다.
자식이 부모 모시기를 꺼리듯 고령자 77.8%는 자녀와 같이 살고 싶지 않다고 응답했다. 69.4%는 자녀와 따로 살고 있다. 자식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고, 함께 사는 것은 서로가 불편하기 때문일 것이다. 자식 뒷바라지하느라 노후준비를 못 한 60세 이상 부부 10명 중 7명은 생활비를 직접 벌어야 하는 처지다. 5명 중 1명(20.2%)은 자녀나 친척이 생활비를 보탠다. 노인 10명 가운데 1명(9.9%)은 정부나 사회단체에 의존하여 고단한 삶을 산다.
자식의 역할을 대체할 공공의 역할은 사회적 합의는커녕 법적, 제도적 뒷받침은 전혀 안 된 상태여서 갈 길은 멀다. 자식이 부모 모시기를 꺼려하고 국가와 사회에 부양책임을 떠넘기려면 복지 세금을 더 많이 부담하는 게 원칙이다. 그래야 선진국처럼 노후 복지혜택을 누리며 자식에게 의탁하지 않고 살 수 있다.
부모와 자식의 역할도 당연히 변해야 한다. 지금처럼 자식들 대학 등록금에 결혼자금까지 지원하는 문화는 지양돼야 한다. 자식들도 20세가 넘으면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 경제적 독립을 선언하고 부모에게 손 벌리지 않아야 공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