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1313일의 기다림

1313일의 기다림

by 한희철 목사 2017.11.22

1313일이면 얼마나 되는 시간일까요? 일 년이 365일이니 그것을 기준으로 셈을 하면 1313일이 몇 년 몇 개월쯤 되는 것인지 계산이야 금방 나오겠지만, 1313일이라 하니 그 시간이 막막하여 도무지 짐작이 되질 않습니다.
‘1313일의 기다림, 이제 가슴에 묻겠습니다’라는, 세월호 미수습자 5인 가족들이 목포신항에서 눈물의 기자회견을 하며 전한 말은 벌겋게 달군 인두로 가슴을 지지는 것처럼 고통스럽게 다가옵니다. 살아 돌아오기를 기다렸던 실낱같은 희망을 버린 지는 벌써 오래전, 사랑하는 가족의 뼈 하나만이라도 수습하기를 기대했던 마지막 기대마저 접고 이제는 기다림의 자리를 떠나겠다고 밝힌 것입니다.
더 이상 남아 있는 게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고, 어마어마한 세금이 들었는데 또 해달라는 게 이기적인 것 같다고, 처음 철수 이야기가 나왔을 때만 해도 야속한 마음이 들어 못 간다고 버텼지만 나 때문에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생하겠느냐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바꿨다고, 이제는 수색을 계속해 가족을 찾겠다는 마음을 접는 게 도리라는 생각이 든다고,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들은 회견을 하며 뜨거운 눈물을 쏟았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세월호 희생자들이 발견되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때마다 안타까움은 물론 부러움이 섞인 마음으로 서로를 위로해왔던 미수습자 가족들이었습니다. 세월호 선체를 인양한 뒤 가족의 유해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8개월째 가족을 찾지 못하자 마침내 가족들은 고통스럽기 그지없는 선택을 한 것입니다.
“남현철 학생, 박영인 학생, 양승진 선생님, 권재근 님, 권혁규 군, 이 다섯 사람을 영원히 잊지 말고 기억해 주십시오.” 비록 더 기다리지 못하고 기다림의 자리를 떠나지만 그럴수록 끝내 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잊지 말고 기억해 달라고, 미수습자 가족들이 목포신항을 떠나며 남긴 부탁이 아프게 다가옵니다.
단원고 2학년 6반이던 남현철 군은 ‘사랑하는 그대여’라는 노래의 가사를 작사할 정도로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학생이었습니다. 같은 반이었던 박영인 군은 어린 시절부터 축구와 야구 등을 좋아했던 만능 스포츠맨이었습니다.
양승진 선생님은 정말 고마운, 선생님다운 선생님이었습니다. 사고가 나던 순간 선체가 기울자 자신이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제자에게 벗어주고 다른 학생이 있는 배 안으로 향하던 모습이 선생님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권재근 씨와 아들 혁규 군은 가족과 제주도로 이사를 가던 길에 변을 당했습니다. 당시 6살 혁규 군은 한 살 어린 여동생에게 구명조끼를 입혀주며 탈출을 도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참으로 의젓하고 훌륭한 오빠였습니다.
고통스러운 기다림을 접고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는 가족들, 끝내 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잊지 않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다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