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피의 법칙을 넘어서
머피의 법칙을 넘어서
by 김재은 행복플랫폼 대표 2017.11.07
어느 날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일로 아침에 아내와 말다툼을 했다. 기분이 상했고 성격이 급하고 소심한 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집을 나서는 중 현관문 손잡이에 손가락을 부딪쳤다.
그리고 운전을 하기 위해 차의 시동을 걸려 하니 아뿔사 방전이 되어있는 것이 아닌가.
어쩔 수 없이 차는 포기하고 지하철을 타러 가는 중에 잘 살피지 못해 앞에서 오는 사람과 부딪혀 가슴에 약간의 통증이 왔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계속해서 일어나는 것일까, 영 기분이 좋지 않았음은 물론이었다.
이처럼 사람들은 일이 잘 풀리지 않고 오히려 꼬이는 일이 이어질 때 ‘머피의 법칙’이란 말을 사용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머피의 법칙을 관통하는 하나의 무엇이 있었으니 바로 ‘감정의 격앙 상태’였다.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에 자신도 모르게 빠진 나머지 시야가 좁아지면서 주위를 살피지 못하게 되고, 그 기운이 상대나 주위에 전해져 좋지 않은 일들이 연이어 일어났던 것이다. 그러니 머피의 법칙은 주체하지 못했던 나의 감정이 낳은 부산물들이다.
그나저나 나도 사람이지만 사람들은 참 이상하다.
툭하면 무슨 무슨 법칙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자신의 인생을 집어넣어 희로애락을 자초한다.
그게 사는 재미라면 할 말이 없다. 다만 소중한 인생이 이러한 법칙 놀음으로 인해 즐거움을 잃어간다면 이것은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인생은 희로애락의 비빔밥이라고 하는데 머피의 법칙은 ‘다만 그 시간에 나에게 노(怒)와 애(哀)가 왔을 뿐’이라는 것, 그러니 견디고 지켜보다 보면 희(喜)와 락(樂)이 곧 다가올 수 있음을.
성인이 말한 보왕삼매론의 ‘세상살이에 곤란 없기를 바라지 마라’는 구절도 머피의 법칙에 지친 삶에 작은 위안이 될 수도 있겠다.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생기기 쉽나니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
어쨌거나 머피의 법칙은 한마디로 삶이 내 마음처럼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런 일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한자어로 이야기하면 설상가상(雪上加霜)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인생이 내 마음처럼 된 적이 얼마나 있었는지.
꼬였다 풀렸다 하는 게 삶인데도 잘 안 된다는데 방점을 찍어버리니 어찌 잘 될 수가 있겠는가.
만약에 일이 꼬인다면 오히려 이때를 성실과 겸손을 배우고, 삶의 내공을 키워갈 수 있는 기회로 삼으면 어떨까. 또한, 내가 힘든 이때 나를 응원해주는 좋은 친구를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인생은 언제나 머피의 법칙과 그 반대인 샐리의 법칙이 공존해 왔다. 내가 어떤 마음과 자세로 살아가느냐에 따라 법칙은 수시로 바뀐다. ‘머피’가 친구가 되든 ‘샐리’가 친구가 되든 상관없이 내가 얼마든지 만들어 갈 수 있다. 그래서 내가 삶의 주인이 되는 나만의 법칙(I’s Law)인 행복의 법칙, 행운의 법칙 하나쯤 스스로 챙겨나가면 좋겠다.
이제 기분이 안 좋은 일이 나에게 다가올 때 무조건 콧노래를 불러보자. 그 후 어떤 일이 생기는지 살펴보자. 이때 바로 ‘행복의 법칙’을 그대로 경험하게 될 터이니.
아무것도 아닌 일로 아침에 아내와 말다툼을 했다. 기분이 상했고 성격이 급하고 소심한 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집을 나서는 중 현관문 손잡이에 손가락을 부딪쳤다.
그리고 운전을 하기 위해 차의 시동을 걸려 하니 아뿔사 방전이 되어있는 것이 아닌가.
어쩔 수 없이 차는 포기하고 지하철을 타러 가는 중에 잘 살피지 못해 앞에서 오는 사람과 부딪혀 가슴에 약간의 통증이 왔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계속해서 일어나는 것일까, 영 기분이 좋지 않았음은 물론이었다.
이처럼 사람들은 일이 잘 풀리지 않고 오히려 꼬이는 일이 이어질 때 ‘머피의 법칙’이란 말을 사용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머피의 법칙을 관통하는 하나의 무엇이 있었으니 바로 ‘감정의 격앙 상태’였다.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에 자신도 모르게 빠진 나머지 시야가 좁아지면서 주위를 살피지 못하게 되고, 그 기운이 상대나 주위에 전해져 좋지 않은 일들이 연이어 일어났던 것이다. 그러니 머피의 법칙은 주체하지 못했던 나의 감정이 낳은 부산물들이다.
그나저나 나도 사람이지만 사람들은 참 이상하다.
툭하면 무슨 무슨 법칙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자신의 인생을 집어넣어 희로애락을 자초한다.
그게 사는 재미라면 할 말이 없다. 다만 소중한 인생이 이러한 법칙 놀음으로 인해 즐거움을 잃어간다면 이것은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인생은 희로애락의 비빔밥이라고 하는데 머피의 법칙은 ‘다만 그 시간에 나에게 노(怒)와 애(哀)가 왔을 뿐’이라는 것, 그러니 견디고 지켜보다 보면 희(喜)와 락(樂)이 곧 다가올 수 있음을.
성인이 말한 보왕삼매론의 ‘세상살이에 곤란 없기를 바라지 마라’는 구절도 머피의 법칙에 지친 삶에 작은 위안이 될 수도 있겠다. 세상살이에 곤란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생기기 쉽나니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
어쨌거나 머피의 법칙은 한마디로 삶이 내 마음처럼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런 일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한자어로 이야기하면 설상가상(雪上加霜)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인생이 내 마음처럼 된 적이 얼마나 있었는지.
꼬였다 풀렸다 하는 게 삶인데도 잘 안 된다는데 방점을 찍어버리니 어찌 잘 될 수가 있겠는가.
만약에 일이 꼬인다면 오히려 이때를 성실과 겸손을 배우고, 삶의 내공을 키워갈 수 있는 기회로 삼으면 어떨까. 또한, 내가 힘든 이때 나를 응원해주는 좋은 친구를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인생은 언제나 머피의 법칙과 그 반대인 샐리의 법칙이 공존해 왔다. 내가 어떤 마음과 자세로 살아가느냐에 따라 법칙은 수시로 바뀐다. ‘머피’가 친구가 되든 ‘샐리’가 친구가 되든 상관없이 내가 얼마든지 만들어 갈 수 있다. 그래서 내가 삶의 주인이 되는 나만의 법칙(I’s Law)인 행복의 법칙, 행운의 법칙 하나쯤 스스로 챙겨나가면 좋겠다.
이제 기분이 안 좋은 일이 나에게 다가올 때 무조건 콧노래를 불러보자. 그 후 어떤 일이 생기는지 살펴보자. 이때 바로 ‘행복의 법칙’을 그대로 경험하게 될 터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