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계륵이 된 카톡

계륵이 된 카톡

by 이규섭 시인 2017.11.03

‘카톡∼’. 이른 아침 어김없이 카톡 알림이 울린다. 옛 직장 동료가 10여 년 넘게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보낸다. 초창기엔 여명이 눈뜨기 전에 왔다. 새벽 단잠을 깨운다는 수신인들의 빗발치는 항의(?)에 시간을 조금 늦췄다. 건강 수칙, 아침을 여는 좋은 글, 풍경과 노래가 담긴 동영상 등 어디서 어떻게 수집하는지 꼬박꼬박 보내는 열성이 대단하다.
카톡을 꾸준히 보내는 이는 서너 명 된다. 이념적인 내용도 있으나 대부분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좋은 말씀들이다. 받는 즉시 열어보는 경우는 드물다. 이동 시간이나 한가할 때 열어본다. 새로운 버전의 유머는 강의 시간에 활용하거나 술자리서 써먹는다. 단체로 정보를 주고받거나 공지 사항을 전하는 단톡도 몇 개 된다. 소통의 플랫폼 역할을 톡톡히 한다.
카톡은 실시간 대화가 가능하고 공짜로 동영상 통화를 할 수 있으니 화수분이다. 카톡의 확산은 노인들의 공중 공해를 줄이는 데 크게 기여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시도 때도 없이 큰 소리로 전화하는 게 귀에 거슬리는데 말풍선 대화로 대체되어 소음이 줄었다. 부탁을 하거나 거절을 할 때도 대면이나 전화 통화보다 문자로 의사를 타진하는 게 덜 부담스럽다. 카톡은 택시 호출부터 은행 업무까지 우리 생활 깊숙이 파고들었다.
카톡의 확산으로 대면 대화는 줄고 손가락 대화가 늘었다. 안부도 카톡, 약속도 카톡이다. 연말연시나 명절 때 전화로 안부를 전하던 친구들도 모바일 인스턴트 메신저로 갈아 탄 지 오래다. 목소리에 실리던 정감은 사라지고 상투적 인사만 남았다.
카톡은 세대 간 인식 차이로 갈등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신혼여행 간 아들이 자정 넘어 카톡으로 “잘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은 지인은 불쾌했다고 털어놓는다. 귀국 후 나무랐더니 자정 넘은 시간이라 잠을 깨울까 봐 그랬다니 쓴웃음 삼키고 말았다고 한다.
직장인들은 카톡으로 소통하면 시간도 절약되고 기록으로 남게 되니 나중에 내용을 찾아보기 쉽다는 긍정론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 근로자들은 퇴근 후나 주말 스마트 기기를 이용해 업무 지시를 받으면 스트레스가 쌓인다고 불평한다. 퇴근 후 회사로부터 단절돼 온전히 여가를 즐길 수 있도록 법으로 보장한 선진국도 있다.
우리나라도 근로시간 외에 각종 통신 수단을 이용하여 업무 지시를 내리는 것을 금지하는 ‘카톡 금지 법안’을 발의한 의원이 세 명 된다. 한 의원은 SNS를 통한 직접적인 업무지시뿐 아니라 단체 채팅방을 통한 간접적인 업무 지시까지 제한 대상에 넣었다. 업무 지시의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 연장 근로로 인정하여 통상임금의 50% 이상을 가산해 지급하도록 하는 등 구체적이다.
법적 규제가 능사는 아니다. 회사와 업종에 따라 근무 형태가 다른 데다 일률적으로 규제하면 또 다른 사회갈등 요인이 될 수 있다. 발등에 떨어진 불똥이 아니라면 퇴근 후 업무 연락을 삼가는 건 상식이다. 노사가 자율적으로 풀어가는 게 더 효율적이다. 일상을 점령해 버린 카톡은 계륵 같은 존재다. 카톡이 주는 편리함을 무시할 수 없고, 피하자니 인적 네트워크에서 소외될까 봐 불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