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개가 사람을 무는 까닭

개가 사람을 무는 까닭

by 권영상 작가 2017.11.02

동네 산에서 있었던 일이다. 산비탈을 오를 때다. 개 한 마리가 길 위쪽에서 나를 굽어보고 있었다. 제법 덩치 큰 개였다. 불과 4, 5미터를 사이에 두고 개와 마주 섰다. 함부로 물지야 않겠지만 본능적으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눈길을 피하지 말라는 말이 떠올라 개를 주시했다. 개 역시 내게서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피할 길이 없었다. 나는 가만히 몸을 낮추어 길옆 마른 나뭇가지를 집어 들었다. 그거라도 들고 을러메어 보여야 할 것 같았다. 그때였다.
“우리 개 안 물어요!”
등 뒤에서 여자 목소리가 났다. 순간, 나는 긴장했다. 이 개가 지금 제 주인이 보는 앞에서 나와 마주하고 있다는 것이 두려웠다. 개는 혼자일 때는 공격하지 않는다. 주인이 있어야 주인을 배경 삼아 달려든다.
그러는 사이 주인이 내 곁까지 왔다. 그제야 나는 손에 잡았던 나뭇가지를 놓았다. ‘우리 개 안 무는 데...’ 주인은 내가 버리는 나뭇가지를 보며 오히려 나를 못마땅해 했다.
몇 년 전 이른 가을이었다.
아파트 뒤 느티나무 오솔길을 운동 삼아 가만가만 뛰고 있을 때다. 길옆 그늘에 자리를 펴고 앉은 가족인 듯 보이는 사람들 틈에서 갑자기 조그마한 강아지 한 마리가 날카롭게 짖으며 달려들었다. 강아지가 내 바짓가랑이를 물고 늘어졌다. 이 황망한 일에 강아지로부터 벗어나려고 나는 온 힘을 다해 겅중거렸다. 내가 생각해도 겁 많은 내 모습이 요란했을 테다. 80kg에 182cm 키의 내가 꼬맹이 강아지한테 물려 버둥대는 모습이라니!
한참 만에 강아지는 제 가족 품으로 돌아갔고, 그들은 순한 강아지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며 미안해했다. 나도 부끄러워 얼른 자리를 비켰지만, 그때 내가 얻은 게 있다. 개가 사람을 무는 까닭은 충성심의 표현이라는 거다. 달리 말하면 ‘나 이런 개야! 이만큼 용맹한 개야!’를 주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실수(?)다. 주인 없는 개는 사람이 공격하기 전엔 물지 않는다. 개도 짐승이라 저보다 덩치 큰 사람에게 덤빌 수 없다. 그런데 이 작은 강아지가 내게 덤빈 것은 뛰어가는 내 모습이 제가 무서워 달아나는 거라 판단했고, 온 가족이 보고 있는 이때야말로 저의 용맹성이나 충성심을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여겼기 때문이다.
물고 싶어하는 개는 사람을 문다는 모 신문에 난 어느 애완견 전문가의 말은 옳지 않다. 투견이나 사냥개를 제외하고는 물고 싶은 개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모든 개는 그런 상황, 상대가 자기보다 약자라고 여겨지거나 자신을 두려워한다고 판단되면 달려가 문다. 그것도 주인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럴 가능성이 높다.
요즘, 개에 물려 다치거나 목숨을 잃는 기사를 연일 만난다. 사람을 다치게 한 그 개들은 한결같이 ‘우리 개는 안 무는 개들’이다. 하지만 사랑을 먹고 사는 애완견은 자신이 사랑받기에 충분한 개임을 보여주기 위해 늘 사고 칠 기회를 엿본다.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크는 자식이 종종 사고를 치는 까닭도 몰라 그렇지 그 자식의 입장에선 부모에게 보여주는 일종의 존재감의 표현이다. 애완견의 심리 또한 그와 다르지 않다.
바보 개가 아닌 이상 개는 사람을 물지 않는다. 주인이 있어야 주인에게 존재감을 보여주기 위해 문다. 주인과 함께 있는 개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