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파와 눈물

파와 눈물

by 강판권 교수 2017.10.30

나는 파를 무척 좋아한다. 어릴 적부터 고향에서 파를 즐겨 먹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 인간의 음식 습관은 부모에게 받거나 어릴 때 어떤 음식을 먹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나는 요즘도 집에서 파를 즐겨 먹지만 사는 곳의 식당에 가서 고기를 먹으면 파를 내놓지 않고 상추를 내놓는다. 반면 고향의 식당에 가서 고기를 먹으면 어김없이 파가 나온다. 백합과의 파는 주로 아시아에서 먹는 식물이다. 한자는 총(蔥)이다.
파를 먹기 위해서는 껍질을 벗겨야 한다. 그런데 껍질을 벗기면 거의 예외 없이 눈물을 흘려야만 한다. 파에는 고추와 양파처럼 눈물을 자극하는 요소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파 속의 매운 성분은 파의 생존 본능이다. 파의 껍질을 벗기는 것은 파의 입장에서는 절체절명의 위기다. 그래서 누군가 껍질을 벗기는 순간 매운 성분을 밖으로 품어서 공격하는 것이다.
눈물을 자극하는 파의 매운 성분은 껍질을 벗기는 사람들을 간혹 당황스럽게 만들지만, 눈물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든다. 눈물은 인간의 감정을 드러내는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눈물은 슬플 때, 기쁠 때, 아플 때, 감동할 때 나오는 몸의 반응이다. 이 같은 현상의 공통점은 ‘극적인 반응’이라는 점이다. 눈물을 흘리는 동기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나는 감동할 때 자주 눈물을 흘린다. 나는 내가 자주 감동의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데 감사한다. 왜냐하면 감동의 눈물은 곧 행복 지수와 비례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파의 껍질을 벗기면서 흘리는 눈물은 파의 상처로 생기는 것이지만, 맛있는 음식을 상상하는 수단이라는 점에서는 감동의 눈물에 속한다. 인간의 삶은 감동의 눈물을 어느 정도 흘리느냐에 따라 행복한 삶이 결정된다. 행복의 원천은 셀 수 없이 많지만 결국 인간 삶의 목적은 행복이기 때문이다. 내가 파의 껍질을 벗기면서 눈물의 의미를 생각하는 것은 일상의 감동이 곧 행복의 원천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음식에서 자주 등장하는 것 중에서 파처럼 눈물을 자극하는 것은 마늘과 고추 등 몇 종류를 제외하면 많지 않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파의 껍질을 벗기면서 흘리는 눈물을 싫어한다. 그러한 태도는 굳이 흘리지 말아야 하는 눈물을 흘린다는 안타까움 때문이겠지만, 살면서 감동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어떤 생명체든 감동의 눈물을 흘릴 자격을 갖고 있지만, 스스로 그런 기회를 만드는 사람은 드물다. 대부분 영화나 연극, 그리고 각종 드라마와 음악 등 다른 사람이 만든 감동에 눈물을 흘린다. 파의 껍질을 벗기면서 흘리는 눈물은 스스로 감동의 순간을 만다는 행위다. 파를 벗기면서 흘리는 눈물은 약간의 고통이 따르지만, 감동의 눈물은 언제나 고통의 거름을 통해 잉태한다. 다른 사람들이 선사하는 감동도 고통의 산물이다. 새 생명이 엄청난 감동을 주는 것도 탄생할 때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심한 고통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