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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愛 영화 세 편

시월愛 영화 세 편

by 이규섭 시인 2017.10.27

문화가 흐르고 축제가 출렁이는 시월, 세 편의 영화와 만났다. 세 작품 모두 중국과 연관된 내용이라 기분은 묘하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 ‘상애상친(Love Education)’은 각 세대를 대표하는 중국 근현대 세 여성의 삶을 그렸다. ‘남한산성’은 병자호란(丙子胡亂)을 배경으로 굴욕의 역사를 담았다. 다큐 영화 ‘다시 태어나도 우리’는 인도 최북단 라다크 마을의 동자승이 ‘린포체’(환생한 티베트불교 고승)로 인정받지만, 전생의 사원은 중국의 탄압을 받는 티베트에 있어 소통의 길이 막혔다.
부산 ‘영화의 전당’ 야외극장에서 열린 폐막식이 끝난 뒤 ‘상애상친’의 주연 겸 감독인 실비아 창 감독은 무대인사에서 “사람들은 환경 변화가 일어나면 문제에 직면한다. 그 해결 방법으로 영화 속에서 화해하고 사랑으로 치유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소개했다. 약속된 스케줄이 있어 영화는 못 보고 티엔 주앙주앙 등 출연 배우들만 봤다.
‘남한산성’과 다큐 ‘다시…’의 또 다른 공통점은 설경이다. ‘1936년 12월 청(淸)의 대군이 압록강을 건너 서울로 들이닥쳤다. 인조와 신하들은 강화도로 가는 길이 막히자 남한산성으로 몸을 피했다. 그해 겨울은 추웠고 눈이 많이 내렸다.’ ‘남한산성’의 첫 자막처럼 엄동설한의 삭풍이 휘몰아친다. 굶주린 병사들은 설한풍을 가마니로 감싸며 버티지만, 군마의 여물로 빼앗겨 말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다.
만년설을 머리에 인 히말라야산맥, 순백의 설원 위를 걸어가는 천진난만한 동자승 앙뚜와 그를 린포체로 극진히 모시는 노승 우르갼의 모습은 세대를 초월한 끈끈한 인간애다. 삭막한 세태에 던지는 울림이 크다.
같은 눈이라도 이미지는 다르다. ‘남한산성’의 예조판서는 어가(御駕)를 안내한 늙은 뱃사공이 행여 적군에게 길 안내를 해줄까 봐 염려되어 목을 친다. 하얀 눈 위에 낭자한 선혈은 섬뜩하다. 어린 손녀 나루가 나루터에서 할아버지를 기다리는 눈동자에 아득한 슬픔이 고여 슬프다.
노승은 설원에서 동자승의 얼어붙은 양말을 벗긴다. 뽀얀 발이 앙증맞게 드러난다. 간지럼을 타며 해맑게 웃는다. 동자승의 발을 입김으로 호호 불어 녹이는 모습은 순백의 눈꽃으로 피어 눈부시다. 코끝이 찡하게 아려온다.
남한산성은 설경의 적요함과는 달리 삶과 죽음의 주제가 물먹은 눈처럼 칙칙하고 무겁다. 임금이 오랑캐 우두머리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이마를 조아리는 ‘삼배 구고두(三拜 九叩頭)를 하는 삼전도의 치욕은 380년이 지났지만, 사드 보복 등 한반도 정세에 오버랩 되면서 기분이 더럽다. 흥행 요소를 고루 갖췄으면서 흥행이 저조한 이유 중 하나다.
어렵게 상영관을 찾아가서 본 다큐 ‘다시…’의 문창용 감독은 프리랜서 PD로 돈이 좀 모일 때마다 라다크로 날아가 꼬박 7년 동안 촬영에 매달렸다고 한다. 못 먹고 못 씻고 동상과 고산병에 시달리며 눈보라를 헤쳤다. 800시간 분량을 찍어 96분짜리 영화로 압축하는 편집에 1년이 걸렸다니 열정과 인내가 고스란히 스크린에 묻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