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사회

가을 숲 사람의 숲

가을 숲 사람의 숲

by 김재은 행복플랫폼 대표 2017.10.26

누가 뭐라 해도 가을은 색의 계절이다.
혹한의 겨울을 견딘 가지 위에 봄에 잎이 돋고 연둣빛의 잎들은 녹빛 여름을 지나 마침내 가을에 이르면 온갖 색의 향연을 펼친다.
그러고 보니 가을의 잎들은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준비한 아이들의 학예회 같다.
아이들의 수고로움이 깃든 학예회처럼 가을날의 눈부신 빛깔들은 겨울과 봄, 여름이 긴 시간 땀 흘려 빚어낸 역작임이 틀림없다. 그러기에 가을만의 색은 없다.
다만 가을이라는 시공간에서 색의 잔치가 벌어지고 있을 뿐이다.
지난 주말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오대산 선재길을 다녀왔다.
월정사에서 상원사에 이르는 아기자기한 길이다.
계곡물이 차갑게 흘러내리고 오색의 가을잎들은 절정에 이르러 무르익은 청춘남녀의 사랑처럼 곱고 아름다웠다.
누군가 이야기했던가.
진짜 가을을 만나려면 가을 숲으로 가라고.
그랬다. 가을은 거기에 오롯이 온전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단지 빛나는 색깔의 향연만이 아니었다. 이미 떨어져 뒹구는 낙엽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 도토리 껍질 등이 숲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찬란한 색에 기대어 자만이나 교만하지 않고 가을바람에 길을 내어주느라 기꺼이 낙엽이 되어 흩날리고 있는 예쁜 녀석이 거기에 있었다.
반듯한 전나무나 가문비나무, 조금 휘어졌지만 어디에도 비굴함이나 열등감을 찾아볼 수 있는 참나무나 소나무, 자작나무 등이 함께 어우러져 가을을 빚어내고 있었다.
비교하거나 시기, 질투하지 않고 저마다의 모양과 빛깔로 알록달록한 화음을 내는 오케스트라가 거기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중국 4대 미인 중의 하나인, 수화(羞花)미인 양귀비가 왔다면 아마도 그 아름다움에 눈이 부셔 눈을 감지 않았을까.
아하, 그러고 보니 내 나이가 이제 가을쯤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가을이 주는 이런저런 이야기와 깨달음을 느낄 때가 된 것은 아닐까. 돌아보니 아직 갈 길이 멀다.
저마다의 나무들이 어우러져 이룬 가을 숲을 보노라니 순간 사람의 숲이 생각났다.
가을 숲이 진짜 가을을 느끼게 한다면 인생의 참맛을 느끼려면 당연히 사람의 숲으로 가야 하기에. 지구별엔 서로 다른 수십억의 사람들이 거대한 사람의 숲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세상은 조화로운 가을 숲과는 달리 보기에 부끄럽고 귀에 거슬리며 온갖 고통에 힘들어하는 비명들로 가득하다. 시기와 질투, 탐욕과 이전투구가 끝없이 이어져 숲의 고요함 대신 비난과 욕설, 고함과 소란함이 우리네 삶을 아프고 슬프게 파고든다.
이제 그 거친 걸음을 멈추고 가을의 숲으로 뚜벅뚜벅 걸어가 보자.
비난과 평가, 비교와 판단대신 이해와 배려, 관용의 바람을 그 숲에서 느껴보자.
욕심을 내려놓고 뒹구는 낙엽이 전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그래서 한 그루 한 그루의 나무들이 자신만의 모습으로 가을 숲을 이루고 가을 숲을 지키듯이 우리도 사람의 숲을 이루는 건강하고 듬직한 나무가 되어보면 어떨까.
그 무엇도 끝내 흩어지고 사라지고 만다.
탐욕도 성냄도 돈도 권력도 명예도, 심지어 저 눈부신 가을 숲까지도. 하지만 눈부신 가을, 가을 숲이 내게로 왔다. 난 오늘도 사람의 숲으로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