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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루냐인 카스티야인

카탈루냐인 카스티야인

by 이규섭 시인 2017.10.20

해외여행 때 가이드를 잘 만나면 여행의 즐거움이 더해진다. 몇 해 전 스페인여행 때 해박한 지식에 열정까지 갖춘 현지 가이드가 기억에 오래 남는다. 50대 여성으로 딱딱한 역사와 신화, 종교와 예술을 스토리텔링으로 쉽게 풀어 공감을 이끌어낸다. 구수한 입담에 시의적절한 유머를 구사하며 여행지와 관련된 영상자료와 음악으로 지루한 버스 이동시간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마드리드에서 포르투갈과 모로코를 거쳐 스페인 안달루시아지방을 경유하여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는데 가이드가 바뀐다. 열나흘 일정에 이틀 남겨두고 바뀌는 게 의아했다. 일행들이 아쉬워하자 “저보다 훌륭하신 분”이라고 짧게 응답한다. 뉘앙스에 자존심이 걸린 것 같아 물어보진 않았으나 지역 간 가이드 역할 분담이 분명해 보인다.
바르셀로나는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카탈루냐의 주도(主都)다. 게르만족의 문화를 유지한 카탈루냐는 이슬람 문화가 섞인 스페인의 주류인 카스티야인과 민족과 문화가 다르고 고유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 독립왕국이었다가 편입된 15세기 이후에도 전통을 지키며 스페인 주류와 반목을 거듭하며 불편한 동거를 해왔다. 1640년과 1705년 두 차례 독립전쟁을 벌였으나 실패했다. 1936년 스페인 내전 때는 독재자 프랑코 총통에 맞섰으나 패배의 아픔을 겪었다. 카탈루냐 자치 정부가 2014년 분리·독립을 묻는 비공식 투표를 실시한 결과 81% 찬성으로 스페인 탈퇴의 불을 지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카탈루냐는 중세시대부터 지중해 무역을 통해 상업이 발전한 부유한 지역이고, 스페인 내륙의 카스티야인들은 농업 위주로 경제가 낙후됐다. 카탈루냐는 스페인 영토의 6%이고 인구는 16%(750만 명)지만 국내총생산(GDP)의 19%를 차지한다. 세금을 가장 많이 내면서도 중앙정부로부터 받는 교부금은 9.5%에 불과해 피해의식이 크다.
분리·독립의 표면적 이유는 카스티야인들과 문화, 역사, 언어가 다르다는 것이지만 결정적 이유는 경제력이다. “왜 우리가 스페인 전체를 먹여 살리냐”는 심리가 깔렸다. 명문 축구클럽 FC 바르셀로나가 레알 마드리드를 숙적으로 여기는 것도 이런 역사적 배경 영향이다. 카탈루냐인에게 스페인 사람이냐고 묻는 건 실례라고 한다.
이탈리아 제2도시 밀라노가 독립을 주장하는 이유 역시 경제력이다. 경제도시답게 패션, 금융, 자동차, 철도가 시민들의 소득을 끌어올린다. 이탈리아 1인당 GDP는 3만 294달러(2016년 기준)지만, 밀라노는 5만 달러 웃돈다. 나폴리, 시칠리아 등 남부도시는 1만 6000달러에 불과해 남과 북의 빈부 격차가 심하다. 밀라노 시민들은 게으른 남부 사람들을 먹여 살리느니 차라리 독립해버리자고 목청을 높인다. ‘독립’ 선거공약이 나왔는가 하면 한때 ‘파다니아 공화국’ 독립준비위원회까지 발족했었다는 점도 비슷하다.
카탈루냐 자치 정부는 지난 1일 주민투표 결과 90%의 압도적 찬성률을 내세워 분리·독립을 선언하려다 잠정 중단을 선포했다. 스페인 정부의 강경 입장과 국제사회의 외면, 기업 이탈이 발목을 잡은 것으로 풀이된다. 자치권 확대를 얻어내려는 ‘1보 후퇴’ 포석이지만 분쟁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