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산업혁명이 어디에 있다고?
4차산업혁명이 어디에 있다고?
by 김재은 행복플랫폼 대표 2017.10.07
사람들은 이름짓기를 좋아한다.
경쟁사회를 살아가다 보니 ‘나를 보아달라’며 여기요, 여기요 하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이름 하나로는 부족한 듯 이런저런 호칭이나 브랜드를 붙여 사람을 끌어들이고 돈을 끌어들인다. 시장엔 수많은 상품 아니 브랜드로 넘쳐난다.
그런데 나를, 내 상품을 드러내고 싶어 ‘이름(브랜드)’을 지었는데 이름의 홍수 속에서 ‘나’는 존재감이 오히려 더 떨어지는 결과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다시 다른 이름으로 도전하며 끝없는 경쟁의 늪에 빠져든다.
대형마트에 가보면 수많은 지역에서 온 쌀이 고객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경기도의 경우만 보면 이천쌀, 여주쌀, 김포쌀, 안성쌀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의 ‘브랜드’들이 현란한 포장으로 자신만이 제일이라며 아우성을 치고 있다. 그런데 고객 입장에서 보면 도무지 어느 것이 더 나은지 알 수가 없다. 차라리 옛날 고향의 쌀처럼 짚으로 엮은 가마니에 이름 없이 놓인 쌀이 더 눈에 띄어 선택하고 싶은 마음이 날지 모르겠다.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였을까.
요즘 어디를 가나 전문가로 넘쳐나며 가을 낙엽처럼 포도에 뒹구는 ‘4차산업혁명’ 이야기다.
검색을 해보니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모바일 등 첨단 정보통신기술이 경제·사회 전반에 융합되어 혁신적인 변화가 나타나는 차세대 산업혁명’이라고 되어있다.
제4차 산업혁명은 초연결(hyperconnectivity)과 초지능(superintelligence)을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기존 산업혁명에 비해 더 넓은 범위(scope)에 더 빠른 속도(velocity)로 크게 영향(impact)을 끼친다며 엄포를 놓는다.
얼마 전 바둑왕 이세돌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세기의 대결을 통해 ‘4차산업혁명’이 우리 곁에 오고 있다며 언론들은 거품을 물었다. 자율주행차가 곧 우리네 일상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오고 있다. 분명 세상은 변화하고 있고, 그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하루가 다르게 가고 있음을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말이다. 뭔가 허전하고 씁쓸한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50여 년의 압축성장을 통해 세계의 경제 강국으로 우뚝 선 우리 입장에서는 ‘4차산업혁명’이 또 하나의 기회일 수도 있다. 그런데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 거대한 흐름의 이면에는 독점이 아닌 ‘개방성’과 ‘상생’의 더 큰 물결, 문화가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구글과 네이버를 비교하지 않아도 이제는 열린 생태계가 아니면 미래를 담보하기 어려운 시대로 가고 있다.
‘나만’ 살겠다고 나서는 순간 ‘생즉사(生卽死)’가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더욱 ‘기본’이 중요해지고 있고, 이런 첨단 기술이나 초연결을 통해 가치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품성이나 철학이 결국 ‘4차산업혁명’의 성패를 가름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4차산업혁명의 결과물을 노리는 독점적 이익만이 판을 치고 사람이 소외된다면 이는 인류가 몰락의 길로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찌하든 이왕 ‘4차산업혁명’이라는 말이 나왔으니 이를 어떻게 하면 세상에 잘 구현하여 상생과 행복의 길로 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구글이나 페이스북이 지향하는 정신만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이익만을 좇아가는 일시적인 ‘치고 빠지기’ 가 아닌 ‘기본’과 ‘정신’, ‘철학’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보면 좋겠다. 그 중심에 열린 마음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적 정신이 있어야 함은 물론일터.
이런 지향을 놓치지 않을 때 여기저기서 떠들어대는 4차산업혁명이 우리 곁에서 진정 꽃피우지 않을까. 참 좋은 시절, 상달인 10월이다. 시절만 좋은 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도 좋아지길 기원한다.
경쟁사회를 살아가다 보니 ‘나를 보아달라’며 여기요, 여기요 하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이름 하나로는 부족한 듯 이런저런 호칭이나 브랜드를 붙여 사람을 끌어들이고 돈을 끌어들인다. 시장엔 수많은 상품 아니 브랜드로 넘쳐난다.
그런데 나를, 내 상품을 드러내고 싶어 ‘이름(브랜드)’을 지었는데 이름의 홍수 속에서 ‘나’는 존재감이 오히려 더 떨어지는 결과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다시 다른 이름으로 도전하며 끝없는 경쟁의 늪에 빠져든다.
대형마트에 가보면 수많은 지역에서 온 쌀이 고객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경기도의 경우만 보면 이천쌀, 여주쌀, 김포쌀, 안성쌀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의 ‘브랜드’들이 현란한 포장으로 자신만이 제일이라며 아우성을 치고 있다. 그런데 고객 입장에서 보면 도무지 어느 것이 더 나은지 알 수가 없다. 차라리 옛날 고향의 쌀처럼 짚으로 엮은 가마니에 이름 없이 놓인 쌀이 더 눈에 띄어 선택하고 싶은 마음이 날지 모르겠다.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였을까.
요즘 어디를 가나 전문가로 넘쳐나며 가을 낙엽처럼 포도에 뒹구는 ‘4차산업혁명’ 이야기다.
검색을 해보니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모바일 등 첨단 정보통신기술이 경제·사회 전반에 융합되어 혁신적인 변화가 나타나는 차세대 산업혁명’이라고 되어있다.
제4차 산업혁명은 초연결(hyperconnectivity)과 초지능(superintelligence)을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기존 산업혁명에 비해 더 넓은 범위(scope)에 더 빠른 속도(velocity)로 크게 영향(impact)을 끼친다며 엄포를 놓는다.
얼마 전 바둑왕 이세돌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세기의 대결을 통해 ‘4차산업혁명’이 우리 곁에 오고 있다며 언론들은 거품을 물었다. 자율주행차가 곧 우리네 일상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오고 있다. 분명 세상은 변화하고 있고, 그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하루가 다르게 가고 있음을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말이다. 뭔가 허전하고 씁쓸한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50여 년의 압축성장을 통해 세계의 경제 강국으로 우뚝 선 우리 입장에서는 ‘4차산업혁명’이 또 하나의 기회일 수도 있다. 그런데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 거대한 흐름의 이면에는 독점이 아닌 ‘개방성’과 ‘상생’의 더 큰 물결, 문화가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구글과 네이버를 비교하지 않아도 이제는 열린 생태계가 아니면 미래를 담보하기 어려운 시대로 가고 있다.
‘나만’ 살겠다고 나서는 순간 ‘생즉사(生卽死)’가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더욱 ‘기본’이 중요해지고 있고, 이런 첨단 기술이나 초연결을 통해 가치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품성이나 철학이 결국 ‘4차산업혁명’의 성패를 가름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4차산업혁명의 결과물을 노리는 독점적 이익만이 판을 치고 사람이 소외된다면 이는 인류가 몰락의 길로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찌하든 이왕 ‘4차산업혁명’이라는 말이 나왔으니 이를 어떻게 하면 세상에 잘 구현하여 상생과 행복의 길로 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구글이나 페이스북이 지향하는 정신만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이익만을 좇아가는 일시적인 ‘치고 빠지기’ 가 아닌 ‘기본’과 ‘정신’, ‘철학’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보면 좋겠다. 그 중심에 열린 마음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적 정신이 있어야 함은 물론일터.
이런 지향을 놓치지 않을 때 여기저기서 떠들어대는 4차산업혁명이 우리 곁에서 진정 꽃피우지 않을까. 참 좋은 시절, 상달인 10월이다. 시절만 좋은 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도 좋아지길 기원한다.